이어산 "'시인은 열심히 詩 쓰는 사람 아닌 열심히 사는 사람"
이어산 "'시인은 열심히 詩 쓰는 사람 아닌 열심히 사는 사람"
  • 현달환 기자
  • 승인 2019.02.16 07:49
  • 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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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24)토요 詩 창작 강좌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24)

 □시 짓기와 겸손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쒱, 하고 가로질러 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있는 백미러로
   지나는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브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 고영민, 「앵두」 전문

오늘은 ‘앵두’라는 작은 대상에서 발견하는 입체적 사유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고영민 시인의 시를 먼저 보았다.

이처럼 자세히 보면 삼라만상이 이야기꺼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자세를 낮춘다는 것이고 이는 겸손과도 연결된다.

거만한 상람은 자세히 보지 않으려는 특성이 있다 제 잘난 맛에 뻣뻣하기 때문에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굽혀 자세히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 유일의 계관시인(桂冠詩人) 김남조 시인은 ''시인은, 열심히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했다. 즉 사람과 시가 같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시인의 자격이 없다"라는 말과도 같다. 필자의 시인론인 "시인은 벼슬이 아니라 겸손하게 삼라만상의 방언을 해석하고 통역하는 사람"이라는 말과도 뜻이 통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이 바로 '겸손'이다. 사람다운 사람은 교만하지 않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배웠다고 해도 '편협한 시각과 좁쌀만한 지식'이라는 생각으로 시를 써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겸손해진다. 세상은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

시도 겸손한 것이 사랑 받는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던 것을 찾아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며 말라비틀어져 가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시를 쓰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글이 폭력적이면 시적 대상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독자에게도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시를 읽고 행복해지거나 공감되어지지 않는 시는 시로서의 가치가 없거나 시인의 감정 배설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겸손은 다른 사람의 시를 평하는 일에도 해당된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제자라도   꾸중을 하면서 가르치기 힘든 세상이다. 하물며 얼굴도 성향도 제대로 모르는 상대방에게 좋은 뜻이라도 가르치듯, 훈계하듯 잘못 지적하면 문제가 생긴다. 어떤 이는 비평 자체를 기분 나빠한다.

그러나 비평과 비난을 구분할 줄 모르면 시를 쓸 자격도 없다. 비난이 아닌 비평은 시를 키우는 자양분이고 글에 대한 큰 관심의 표현이다.

시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동안 자연스레 형성된 기초 작법이 있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림 그리기의 기초를 익혀야 하듯 시도 시 짓기의 기초를 무시하면 시가 안 되거나 시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기초 이론을 알고 시를 쓰면 시가 한결 간결해지고 독자의 공감을 얻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기초가 단단한 사람, 철저히 준비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앞설 수 밖에 없다.

중견 시인이 되고 시력이 붙으면 뒤집어서 써도 시가 되지만 아직 시의 기초 개념조차 익히지 못한 사람이 겉멋이 들어서 기성시인의 흉내나 낸다면 제대로된 시인으로 성장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서양의 시학에서 시(詩)라는 말에는 본래 '무엇인가를 최초로 만들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최초의 시를 성경의 시편(詩篇)이나 아가서(雅歌書) 등을 꼽는데 성경 헬라어 원전에는 시를 가리켜 '포이에마(Poiema)'라고 했다. 이것은 '최초로 만들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시는 '새로운 말글'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한 것과는 그 본질이 다르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시적대상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 창작' 이란 말보다는 세상에 널려있는 소재로 새로운 말글을 완성하는 행위이므로 '시 짓기'란 말이 시 정신(poetry)에 가깝다.

우리 주변에 이미 널려있는 유, 무형의 소재로 시를 짓는 것이므로 시 짓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새롭게 하기'다.

이것의 핵심 포인트는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다. '무엇을 보는 것'은 산문이고 '어떻게 보는 것'은 시 이므로 '무엇'과 '어떻게'는 시와 산문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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