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쌍방향 문학"
이어산 "시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쌍방향 문학"
  • 뉴스N제주
  • 승인 2019.05.11 01:03
  • 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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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36)토요 시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36)

□달콤한 시와 적정성이 담보된 시

"잘된 시는 인간의 완벽한 발언"이라고 한 영국의 매슈 아널드의 말이나 "시를 알지 못하고는 말을 안다고 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 "는 공자의 말은 일맥상통하다.

이 말은 시란 언어의 정수이기 때문에 시를 이해하는 일이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며 언어의 품격과 인품을 높이는 것이라는 뜻일 게다.

그런데 요즘은 시를 가볍게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조금만 복잡해도 시가 지닌 깊은 뜻 하나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면서 달콤한 시를 좋은 시라고 쫒아가면서 자기가 시를 잘 아는듯이 말한다. 

흡사 이빨이 다 썩어서 시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현상과도 같다. 시와 비시(非詩), 좋은시와 그렇지 못한 시를 가려낼 능력이 안 되니 이해가 쉬운 것만 쫒다가 생긴 일이다.

너무 친숙하면 경멸을 낳는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지나치게 흉허물이 없으면 존경이나 존엄을 무시하게 된다. 시에서는 이 말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시의 언어 중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말을 가져오면 경멸을 받게 된다. 신선감이 없는 시는 죽은 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생소한 느낌의 문장이나 뜻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뜬구름 잡는식의 이상한 말을 늘어 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적정성이 담보된 참신한 언어를 말한다.

   손에 쥐어준 대본은 없다
   상황이나 상대역도 모른 채
   주어진 역할만 있을 뿐
   언제나 살얼음판 위의 실전
   연습은 처음부터 금기된 사항이다.
   쉴 틈 없는 시간의 표정은 수시로 바뀌고
   달콤한 휴식은 혀를 널름거린다
   해와 달,
   눈 밖에 나면
   세기를 빛낸 명연기라 해도
   조명 없는 무대 위에 걸려 있어
   영정 사진에 불과하다
  
   오감(五感)을 총동원해도
   아직도 서툰 내 연극

   하루의 문은 또 열린다
             - 이금주, <일일 드라마>전문

위 시는 시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에겐 해석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찬찬히 읽어보면 우리의 인생 이야기로 전이 된다.

그렇다. 우리의 인생에는 대본도 없고 상황이나 상대역도 모른체 오직 내게 주어진 역할만 있다. 오감을 총 동원해도 서툰 연극이다. 명연기를 했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이 조명이 꺼진 무대에 걸려 있으므로 영정사진 같다. 이것이 우리 삶의 일일 드라마라고 한다.
이처럼 시는 새롭거나 재해석 되는 작업이다.
시 한 편 더 보자.


   어머니가 어린 나에게 했던 것처름
   내가 어머니를 씻겨드린다
   "아퍼, 아퍼" 하는 소리는
   내 어릴 때 소리 같다
   오랜 병석에서 굳어진
   어머니의 몸은
   잘 풀리지 않는 숙제다
   걸음마 배우는 아이처럼
   자꾸 어긋나기만 하는데
   놓쳐버린 시간의 거리만큼
   세상을 깜빡거린다
   물가의 아이처럼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자꾸 흘러내리는 어머니를
   내 지렛대로 받쳐 보는데
   열탕에 몸 담그자
   어머니는 알전구처럼 환하게 켜진다
      - 김은덕, <목욕> 전문

시란 이런 것이다. 우리가 흔히 겪는 일들을 이야기로 쓰되 시적 표현을 하면 시가 된다. 시적 표현이란 별게 아니다. 비틀거나 새롭게 해석하되 빼어도 뜻이 통하는 범위 내에서 필요없는 가지를 다 잘라내고 말의 덩어리, 즉 축약된 뜻만 남기는 것이다.

화자는 어릴 때 자기에게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어머니를 씻겨 드리고 있다. 여기에서 "자꾸 흘러내리는 어머니를/내 지렛대로  받쳐 보는데"에서 짠한 시적 표현의 백미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화자의 거울 같은 어머니의 모습이 애처롭게 다가 온다.

시란 누구에게 훈계하거나 설교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터득하고 이해하여 내가 썼지만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쌍방향 문학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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