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리듬, 의미, 이미지의 삼박자가 잘 된 시는 눈부시다"
이어산 "리듬, 의미, 이미지의 삼박자가 잘 된 시는 눈부시다"
  • 뉴스N제주
  • 승인 2019.04.2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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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33)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33)

□시의 행과 연을 나누기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시의 구조는 행(行/line)과 연(聯/stanza)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나눠야 한다'는 법칙이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다. 정형시는 갖춰진 형태에 맞추는 것이고 자유시나 산문시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김춘수 시인은 리듬의 단락, 의미의 단락, 이미지의 단락으로 나눠야 한다고 했는데 필자도 이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다음의 시 한 편을 보자.


   머리가 마늘쪽같이 생긴 고향의 소녀와
   한여름을 알몸으로 사는 고향의 소년과
   같이 낯이 설어도 사랑스러운 들길이 있다.
     
   그 길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
   제비가 날 듯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
   그렇게

   天然히

   울타리 밖에서도 花草를 심는 마을이 있다
   오래오래 殘光이 부신 마을이 있다
   밤이면 더 많이 별이 뜨는 마을이 있다

      - 박용래,  <울타리 밖> 전문

위 시는 눈물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박용래 선생의 대표적인 시다. 첫 연은 마늘쪽 같이 생긴 건강한 소녀와 한여름을 알몸으로 살아도 될 만큼 건강한 소년이 등장한다.

고향의 소녀와 소년의 이미지가 어울리게 묶었다. 두 번째 연은 ~피듯, ~타듯, ~날 듯, ~흐르듯 하나의 리듬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는 '天然(천연)히'라는 한 행은 한 연이 되도록 배치했는데, 이것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3행에 걸쳐 '~花草(화초)를 가꾸는 마을이 있다' '殘光(잔광)이 눈부신 마을이 있다' '별이 뜨는 마을이 있다'와 같이 동질적 속성을 부각 시킨 이미지로 묶기도 했다.
 
두 편 더 보자.

   외로울 적에
   마음 답답할 적에
   뒷산에 올라가 마음을 벗는다
   나무마다 하나씩 마음을 걸어두고
   노을을 받으며 드러눞는 그림자
   돌아갈 것이 없는 빈 몸이다.
   뒷산은 뒷산은 내 몸이다.

      - 신달자, <뒷산> 전문


   저처럼
   종종걸음으로
   나도
   누군가를
   찾아나서고
   싶다......

      - 황인숙, <비> 전문

위 두 편의 시는 감각적 이미지를 살린 한 연으로 이루어진 시다. 이미지란 시적 대상을 축어적으로 암시하거나 직유나 은유를 동원하여 그 특성을 의미적으로 드러내는 것인데 신달자 시인의 시에는 '마음을 걸어두고'와 '드러 눕는'라는 두 개의 특성을 감각적 이미지로 잘 살리고 있다.

그리고 제목이기도 하고 원관념이기도 한 황인숙 시인의 시도 '종종 걸음으로'나 '찾아나서고/싶다'고 이미지를 동원하여 적절하게 표현함으로써 장소와 시간을 옮겨가면서 내리는 비의 특성과 맞아떨어진다.

이처럼 특별한 이미지를 창출하여 리듬과 강조하고 싶은 단락을 행과 연에 잘 배치하여 어색한 부분이 없도록 하는 것이 보기 좋고 읽기  좋은 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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