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칼럼](12)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칼럼](12)토요 詩 창작 강좌
  • 뉴스N제주
  • 승인 2018.11.2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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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

□시안(詩眼)이 열리게 하는 연습

그동안 필자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몇 가지 시론을 펼쳤지만 몇 번 말했지만 시의 정답이란 없다. 다만 현대시가 추구하는 몇 가지 방법이 회자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가장 으뜸자리에 놓이는 시를 함부로 쓸 수는 없다. 그래서 시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시에 대한 철학과 얼마간의 시간을 투자해야만 자기만의 향기가 나는 시를 쓸 수 있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시도 모방에서 시작한다. 다른 시인의 시를 읽고 좋은 시를 자꾸 모방해 보는 것이다. 그것을 내 것이라고 발표하지 않는다면 공부를 위한 자기만의 모방은 문제될 게 없다. 이때 다른 시인의 시에서 중요하게 공부해야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시인의 응시”다.

그 시에서 시인은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시의 의미성’인데 한 편의 시 속에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깊은 속뜻이 내포되어 있는 시가 시다운 것이다. 너무 드러나 버리면 산문이 된다.

시 전체에 담겨있는 정서와 사상을 직접적이거나 추상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배후에 숨어있는 이미지가 암시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떠오르도록 하는 데 시선이 머물고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것을 찾아내는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시안(詩眼)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처음 시를 쓰려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시를 아름답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대상을 응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호라티우스(로마시대의 뛰어난 서정시인)는 그의 시론에서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란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필요가 있고 독자의 영혼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는데 지금도 이 시론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 주제가 분명해야만 시 전체의 흐름이 명확해 진다. 이것은 순서를 매길 필요가 없이 모든 시에 해당되는 말이기도 한데 시의 주제는 시의 중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어서 시인의 인생관과 깊은 인과관계가 있다. 또한 주제와 소재를 혼돈하는 현상이 습작을 하는 초보 시인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서 '된장국'을 맛있게 요리하려면 소재인 양념을 잘 해야 하지만 '된장'이라는 상징을 무시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목적 불명의 시가 된다.

소재는 시를 시답게 하는 재료이지만 주제는 시의 전체를 아우르는 뼈대 같은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 내용의 맥이 잡히고 그것을 맛있게 하는 소재를 잘 활용해야 전체 시의 구성이 단단해진다는 말이다.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
   내가 당신을 만진다면
   흙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놀라지 않겠지

   느리지만
   한 번 움켜쥐면
   죽어도 놓지 않는 사랑

   - 전영관, <분갈이> 전문


위 시의 제목이 ‘분갈이’다. 그러나 시인이 바라본 것은 ‘사랑’이다. 분갈이를 하면서 중층적이고 입체적인 해석이 가능한 이미지 시를 내어 놓았다.
다시 말하거니와 다른이의 시를 읽을 때 시인의 응시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훈련을 자꾸 하다보면 내 시를 제대로 쓸 수 있다.
  
   그들은 만재도에 와서 재미를 못 보았다고 한다
   낚싯대와 얼음통을 지고 배를 타기 직전 까지도
   그 말만 되풀이 했다
   날보고 재미봤냐고 묻기에
   나는 낚시꾼이 아니고 시인이라고 했더니
   시는 어디에서 잘 잡히느냐고 물었다
   등대쪽이라고 했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그리로 갔다

   - 이생진,<낚시꾼과 시인> 전문


우리나라 섬 중에서 가보지 않은 섬이 없다고 할 만큼 섬에 대한 애정이 깊은 제주도 명예도민 이생진 선생의 시다. 이 시는 지극히 평범한 낚시꾼과의 대화에서 “어디에서 시가 잘 잡히느냐”고 묻는 부분을 포착했기에 시가 되었다.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냥 우스갯소리를 옮긴 것일까? 바다에서 시를 건져올리는 시인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바다에 관한 시가 많은 이생진 시인의 등대는 시를 건져 올리는 좋은 자리였나 보다. 그러나 이 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낚시꾼의 시각과 시인의 생각차이를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좋은 시를 쓰는 사람
시만 잘 썼다고 좋은 시가 아니다. 이것을 심리적 시인과 사회적 시인으로 나누어서 소개한 적이 있는데 선천적으로 시적 감성이 풍부한 사람을 심리적 시인으로, 후천적으로 공부하여서 시를 쓰는 사람을 사회적 시인이라고 했다.

어느 경우든 자기가 쓴 시에 못 미치는 삶을 살면서 겉모습만 좋아 보이는 것은 '짝퉁'이라는 생각을 하기 바란다. 거짓 시는 자기가 썼어도 자기 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삶과 같이 가거나 그 시를 이끌어가는 생활의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 쓴 시가 살아있는 ‘생명시’이기 때문이다.

△품격있는 언어와 시인
시는 드높은 언어 관습이다. 언어를 함부로 내뱉는 사람을 무례한 사람이라고 한다. 저급한 말을 시에 자꾸 차용하면 저급한 시인으로 각인된다. 될 수 있으면 말글의 진폭이 넓고 다채롭게 하되 진지하고 품격 있는 말글을 찾아내야 한다.

시를 쓰는 사람이 말글에 미숙하다면 치명적이다. 시는 끝까지 말글로 겨루어서 다른 익숙한 말글을 이기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오래 기억되는 시는 짧게 말하면서 품격 있는 말놀이가 담겨 있어야 독자의 시선이 머물게 된다. 그런 시는 재미있거나 품위가 있어서 독자의 관심도 끌지만 시인의 품격도 높여준다.

△시인의 능력과 고정관념 버리기
시의 자질은 낯설게 하기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다고 이미 여러 번 말했다. 좋은 시란 적어도 손쉬운 고정관념으로부터 떠나는 일이다. 누구나 표현 할 수 있는 예사롭거나 일상적인 말, 흔한 소재, 통속적 사랑이나 그리움을 다룬 이야기, 결론과 내용이 드러난 시는 실패한다.

즉 한 번에 그 뜻이 잡히지 않게 하고 자기가 쓴 시를 독자가 읽어내지 못할까봐서 설명하려고 하지 말라. 독자에게 시의 여운을 이어가도록 여백을 두라. 유명 시들을 보면 다 말하지 않고 반만 말하는 간결성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친절한 설명은 시를 벗겨 놓고 죽이는 것이다.

시인은 시의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단아하되 단출하고 화려하지 않되 품위 있는 옷을 입혀서 또 다른 의미를 감춰놓은 맛이 있어야 좋은 시가 된다. 고정 관념에서 과감히 떠나지 못하면 십리도 갈 수 없고 발병만 난다.

-이어산, <생명 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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