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내 관점보다 시적대상(詩的對象) 중심돼야 새로운 詩 탄생"
이어산 "내 관점보다 시적대상(詩的對象) 중심돼야 새로운 詩 탄생"
  • 현달환 기자
  • 승인 2019.03.01 22:15
  • 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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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26)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26)

▲나의 관점 버리기와 시의 주인공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지난 강의에서 시에서의 주인공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속의 주인공인 화자(話者)라고 했었다. 이 시작법(詩作法)은 매우 중요하기에 다시 한 번 강조 한다.

따라서 시를 쓸 때 나의 관점을 버리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나의 관점을 버리라니?” “그렇다! 버려야 한다.” 이 말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적대상(詩的對象)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중심 대상을 의인화 시켜서 보게 하고, 말하게 하고, 숨겨진 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시가 더욱 풍부해지고 새로운 의미의 시가 탄생하게 된다.

   버티고 서 있다고 어찌 다 기둥이랴
   흔들려도 떨지 말고 푸르게 일어서야지
   당신께 등을 기대면 무지개가 보였습니다

   하지만 내 넋의 들창 무시로 드나들던
   바람과 함께 뒹군 막다른 벼랑에서야
   함부로 눈발에 버려진 당신을 보았습니다

   부끄럽지 않으려고 경전을 읽었는지
   굽어도 굽지 않은 성자처럼 서 있지만
   무엇을 기다리는지 차마 묻지 못했습니다

   이제 더는 아버지, 당신께만 기댈 수 없어
   나를 일으키는 동안 내 등도 이미 굽어
   꽃보다 향기가 슬픈 옹이 하나 안습니다

      - 민병도 「소나무」 전문

위 시의 중심 대상은 ‘소나무’다 그러나 그 소나무의 특성과 모양새는 어느 듯 희생과 자식 사랑의 아버지 모습으로 중첩된다.

“버티고 서 있다고 어찌 다 기둥이랴”는 고백은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데 대한 자탄이지만 그러나 곧 “흔들려도 떨지 말고 푸르게 일어서야지”라고 용기를 낸다.

그런 아버지의 고통을 모르는 자식들은 등을 기대고 무지개를 보지만 그 자식도 세월이 흘러 온갖 어려움을 겪고 벼랑에 서서 보니 “함부로 눈발에 버려진” 아버지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아버지는 이미 등이 굽은 늙은이가 되었지만 자식들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성자처럼’ 버티고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자식은 차마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묻지를 못한다.

자신도 아버지처럼 나이가 들어 등도 굽고 ‘옹이’로 표현된 삶의 고통을 안고 있는 소나무가 되었다는 고백이다.

기본적으로 화자는 시를 쓴 사람인 경우가 많으나 시적 대상의 특질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것에 기대어서 화자가 고백하는 형태로 시를 끌고 가야한다.

보통의 경우, 묘사하는 단계와 비유의 단계, 화자의 진술(고백), 그리고 그것을 조감도적(鳥瞰圖的)으로 통찰하는 마무리가 어우러져야 공감과 울림을 독자에게 선사할 수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스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봄」 전문

이 시에서 먼저 공부하는 뜻으로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문장 부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그동안 될수 있는대로 문장부호를 쓰지 말라고 했다. 현대시에서는 문장 부호를 잘 쓰지 않는다.

쉼표나 마침표, 느낌표나 물음표 등을 쓰지 말라는 이유는 숨을 쉬거나 느끼거나 결론을 내는 일을 독자에게 맡겨서 생각할 여백을 주자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법칙은 아니다. 꼭 필요할 때에는 시의 일부로 표현 되기도 한다.

위 시에는 화자(話者/말하는 사람)가 있고 화자의 말을 듣고 있는 ‘너’ 즉, 청자(聽者)가 있다.

제목이 ‘봄’이지만 내용에서 연상되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나면 이 시는 무릎을 치면서 다시 읽어보게 된다.

봄에 빗댄 ‘민주화’ 또는 ‘자유’ ‘평등’등의 중층적 관념을 ‘너’라는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3.1절에 이 시가 생각났다. 봄이라는 계절이 반드시 오듯 반드시 오고야 마는 ‘너’ 당신도 노력하면 반드시 기다리는 그대의 봄이 오고야 말리라.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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