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 창작 강좌

□시인의 역할과 화자(話者)의 역할

우리가 시를 쓸 때 자기가 시를 쓴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시는 시인 대신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 즉 화자(話者)가 시의 주인공이 되어야 자기의 느낌이나 상황 등을 더욱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시인은 화자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다는 생각으로 시를 쓰도록 연습하라. 화자(話者)를 '퍼소나(persona)' 라고 하는데 '가상의 인물'이라는 뜻이다.

시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 시인의 시적 생각이나 서정적 자아, 혹은 시적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드러내거나 전달할 수 있도록 시를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는 마치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그 소설을 이끌어 가듯 시도 화자가 주인공이 되어 시를 이끌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많은 시인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직접 고백하는 형태를 취하거나 시인과 화자를 동일시하는 언술 방식으로 시를 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시에서는 시를 쓴 사람과 시에 등장하는 화자는 구분 되어야 한다.

나대신 말하고 행동하는 '아바타'를 시에 배치하라.

반드시 그래야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에 등장하는 화자의 입장을 철저히 이해하고 그 의미를 진술하는 연습은 시 쓰기에서 꼭 익혀야할 기법이기에 그렇다. 비록 그것이 동물이나 사물이라고 할지라도 화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한결같은 망각 속에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서운 것이 내게 없다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고 한다

- 김윤성 <나무> 부분

위 시의 화자는 나무다. 나무의 속성에 인격을 부여하여 전치시킨 기법이다. 나무의 입장, 나무의 말을 '나무'라는 화자가 하고 있다.

박산,
자네는 날 보면 '선생님' 하고 허리를 굽히는데
자판기는 한 번도 허리를 굽힌 적이 없어
용돈은 꼬박꼬박 챙기면서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지
자판기에 1000원 짜리 지폐를 넣고 400원 짜리 커피를
뽑았는데 이것이 500원 짜리 동전만 내놓고
나머지 100원은 내놓을 생각이 없는 거야
그래 비상벨을 누르듯 반환배꼽을 누르고
주먹다짐까지 했다니까
창피한 일이지
결국 내가 지고 말았어

오늘도 그 시간에 자판기 앞에 앉았는데
피해의식이 그대로 작용하는 거야
자판기는 전혀 모른 체하고

사흘 후 또 그 자판기 앞에 앉았는데 자판기 주인이 와서
자판기 문을 활짝 열어놓고 동전을 담고 있기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100원을 돌려 주더군 그 돈을 받아 가지고 오는데
자판기가 큰 소리로 욕하는 거야
'저래가지고 무슨 시를 쓰느냐'고
실은 내가 매일 그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아놓고
시를 썼거든

이제 부끄러워
시를 못 쓰겠어

- 이생진 <나의 인격> 전문

이 시의 화자는 시를 쓴 사람이 아니라 시속에 등장하는 시인이다. 자판기 이야기를 화자의 독백적 진술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의인화된 자판기가 큰 소리로 욕하는 부분이 핵심이다. 소인배적인 시인임을 고백하는 반성적 자아이다.

이처럼 시인 자신의 이야기라도 시의 화자는 '시인'이라는 아바타가 말을 하도록 하라. 화자(話者)라는 말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만 화자의 이야기가 명징하게 드러나도록 하란 말이다.

오 아니예요
우리가 둘이서 빵에 바르는
이 쨈은 쨈이 아니라 과수원이예요
우리는 과수원 하나씩을
빵에 얹어 먹어요

- 전봉건 <과수원과 꿈과 바다이야기> 부분

위 시도 연상작용을 하도록 장치한 쨈을 발라먹는 화자의 이야기다. 이렇게 예리한 관찰을 통한 상상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화자의 역할이 잘 드러나도록 시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