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칼럼](6)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칼럼](6)토요 詩 창작 강좌
  • 뉴스N제주
  • 승인 2018.10.12 16:51
  • 댓글 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어산 시인/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6)

 □시 쓰기와 바람피우기

이어산 시인.
이어산 시인/평론가

시 이론을 공부하면 시를 잘 쓸 수 있을까?
시 이론을 몰라도 얼마든지 시를 쓸 수는 있다. 시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거나 해명하는 작업이 때로는 부질없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물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파악해야하는 시에서는 획일적인 논리와 법칙이 오히려 시를 망칠 수도 있다. 그러나 시(詩시)와 비시(非詩)는 분명히 있다. 시와 비시를 구분할 줄 모르면 시라고 내어놓는 것이 시가 아닐 가능성이 있기에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 얼마간의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를 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시론(詩論)을 집대성한 저서인 시학(詩學/Poetics)을 펴낸 이후 유구한 세월에 걸쳐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시(詩)와 비시(非詩)를 가려낼 수는 있게 됐다. 이런 노력은 최적화 된 시론으로 정리되어 내려오고 있지만 이것도 또 다른 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시론(詩論)은 백인백색(百人百色)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가 무엇으로 정의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하지 않으면 시라는 거대담론의 일부분이라도 제대로 알기 어렵게 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세상의 온갖 것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이고 선한 인간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인간에 대한 심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옹호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공부하는 길에 들어선 사람이다.” 이것이 필자의 시론이다.

오늘은 시 짓기의 여러 방법 중에서 다음과 같은 방법을 권해 보기로 했다.

△시인은 바람을 피워야 한다.

당신은 시의 바람을 피워 본적이 있는가?
가장 진솔한 시는 내가 잘 모르던 대상과 뜨겁게 바람을 피워봐야 쓸 수 있다. 남녀 간의 그런 통속적인 사랑이 아니라 세상 사물들과의 비밀스런 만남, 자꾸 그리워하고, 밀어를 주고받고, 밤이나 낮이나 시간만 되면 생각나고, 느끼고 싶고, 그립고, 만나고 싶은 그런 깊은 향유의 바람을 피워볼 대상을 만들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사랑의 감정이 깊어져서 마침내 교접의 시간이 오면 '은유'라는 정자와 '상징'이라는 난자가 만나게 된다. 이렇게 시가 잉태되면 임부는 그 시의 생명이 모태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정성을 쏟아야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시가 육화(肉化/몸 바꾸기)되는 과정인 것이다.

제대로 된 시를 탄생시키는 일에는 출산에 따른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고통의 과정을 거친 시가 세상에 나오면 그 시는 자기의 가정을 갖게 된다. 시의 일가를 이루었다는 것은 제대로 된 시를 쓰는 반열에 들어섰다는 것이고 시의 영토를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나이가 많거나 적음에 관계없이 시에 대한 사랑이 있고 그리움이 있는 한 시의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자기의 영토를 소유할 수 있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개척되지 않은 광활한 시의 땅이 펼쳐져 있다. 그 땅을 차지하도록 바람피우러 가자.

△당신은 과잉친절이 몸에 베여있는가?

초보시인들이 걱정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기가 쓴 글을 독자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까봐 친절하게 설명하거나 쉽게 시를 쓴다. 그리고 시가 가지고 있는 상징까지도 정성을 다하여 설명해 준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시는 은유이고 상징이고 비유인데 과잉친절은 시를 형편없이 재미없게 만드는 주범이다. 독자가 스스로 깨닫게 하라. 하이데거의 '시간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스스로 말하고 있다. 내가 사물대신 말하지 말라. 사물이나 상황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고 설파했다.

설명하지 않으면 독자들이 못 알아들을까봐 우리의 편협한 시각과 감정으로 다 설명해 버리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설명을 하면 그 순수함과 객관성이 사라져서 자신의 넋두리, 하소연, 교훈적인 관념시, 또는 추상적인 시가 되기 쉽다.

△당신의 시에는 주제와 목적이 있는가?

시를 왜 쓰려는지, 무엇을 쓰려는지, 어떻게 쓰려는지 그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그냥 쓰다가 보니 그렇게 됐다는 사람을 가끔 본다. 이것은 설계도 없이 집을 지으려는 목수와도 같다. 물론 목적과 주제를 정해놓고 쓴다고 하더라도 완성된 시가 그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목적에서 썼는지도 모를 시가 되면 이것은 아무리 좋은 말을 늘어놓았다 할지라도 실패한 시다. 목적에 맞는 통일성을 유지하라. 그리고 시에서는 객관적 타당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다의적인 접근을 통하여 정서의 울림을 탄주하는 작업인 것이다.

즉 시는 지식이 아니라 정서적 지혜를 요구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 최고의 표현 방법이다. 그래서 T.B매콜리는 "시란, 어휘를 사용 하여 상상력 위에서 하나의 환상을 산출해 내는 예술이다"라 했다.

-이어산, <생명 시 운동>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