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칼럼](11)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칼럼](11)토요 詩 창작 강좌
  • 뉴스N제주
  • 승인 2018.11.16 18:15
  • 댓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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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시인. 평론가
"시를 미치도록 좋아하지 않고 시를 쓰려는 것은 미친 짓"
이어산 시인.
이어산 시인

■ 토요 詩 창작 강좌(11)

□ 시가 안 될 때의 해결 법

오늘은 짧은 시 두 편을 먼저 소개 한다.


   보글보글 냄비 속
   바지락조개

   “말 시키지 마세요
   볼이 터질 것 같아요“

   옹알옹알 몸으로 말하는
   아기 바지락

   “소풍인 줄 알고
   진흙 도시락
   싸 왔단 말이에요“

   - 이정록, <입 다물고 말하기> 전문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 나희덕, <부패의 힘> 부분

위 두 시는 우리의 평범한 생각에 펀치를 날리는 역발상이다.

이정록 시인은 냄비 속 조개와 나를 일체화 하면서 “입 다물고 말하기”로 치환 시키고 있다. 동화적 상상력도 재미있지만 시적 대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원환(圓環)적 상상력이 짧은 시라도 이처럼 힘을 갖는다.

나희덕 시인은 변화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녹이 슨 철문이든 냄비 속에서 썩은 음식이든 변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마치 “탑은 무너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원구식 시인의 “탑”이라는 시가 연상 된다.

이처럼 우리 주위의 작은 것에도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힘은 시인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책상에 앉아서 몇 줄 쓰다가 어느 지점에서 막히게 되면 도무지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거나 마무리가 되지 않아서 애를 먹을 때가 있다. 멋모르고 시를 썼을 때는 오히려 잘 썼었는데 시에 대해서 조금 알고 나니까 오히려 시가 잘 안 되고, 시의 깊이를 알아 갈수록 쓰기가 겁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까? 왜 이런 고통이 따를까? 여러 사람의 경험담과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필자의 주관적 대응책도 소개한다.

   첫째, 시를 잘 쓰려고 하면 시가 안 된다.
   대응책 : '잘 써야지'라는 강박 관념을 버려라. 시는 잘 써야 좋은 시가 아니라 진솔하고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있는 것이 좋은 시다.

   둘째, 머리로 쓰려고 하면 머리가 아프게 된다.
   대응책 : 재미있었던 일부터 써라. 이야기를 가슴에 그림처럼 그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수필을 쓰듯 줄글로 써라. 그렇게 써놓고 함축적으로 다듬어 가라.

   셋째, 시적으로 시를 쓰려고 하니 시가 안 된다.
   대응책 : 시를 쓴다는 생각을 버려라. 쓰고자 하는 대상과 대화를 하라. 사건의 주인공도 되어 보고 범인도 되어 보고 나무, 꽃, 길가의 돌 등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세밀하게 듣고 말하는 마음으로 써라. 아주 생생한 시가 될 것이다.

   넷째, 빨리 시를 완성하려고 하니 시가 안 된다.
   대응책 : 천천히 생각이 정리되면 써라. 유명 시인들도 몇 날, 몇 달에 걸쳐서 쓴 시들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한다. 당신의 시를 못 봐서 숨넘어가는 사람은 없다. 빨리 쓴 시 백 편 보다 제대로 된 시 한 편이 낫다.

   다섯째, 제목에 맞게 시를 설명하듯 쓰려니 내용이 드러난 맹물 시가 된다.
   대응책 : 제목에 함몰 되지 말라. 될 수 있으면 제목은 글을 다 써놓고 직설적인 연결이 아닌 이미지로 연결 되도록 붙여 보라. 이것은 계획 없이 쓰라는 말이 아니다. 줄거리가 있게 쓰되 제목은 그 내용에서 직접 언급된 것 보다는 그 내용의 이미지에 맞게 붙이면 시가 훨씬 깊고 사유의 공간이 생기게 된다.

시 쓰기로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부담 없이 편지 쓰듯 자연스럽게 쓰라는 것이다. 시적 대상과 대화하듯 세밀하게 관찰하여 주변의 상황을 함께 느끼면서, 같이 숨 쉬듯, 미사여구 없이 담담하게 우리의 사람살이에 좋은 기운이 스며들듯 써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아무리 강조해도 시를 쓰는 본인에게 체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를 쓰는 능력이 처음부터 뛰어난 사람은 없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없듯 시적 감수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시로 옹알이 하는 단계와 혼자 몸을 뒤집을 수 있는 때가 있고, 혼자 앉거나 걷고 마음껏 뛰어 다닐 수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있다. 시가 자랄 수 있는 자양분도 흡수하지 못한 사람이 쓴 시는 영양부족으로 인한 여러 가지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과 같다.

결국 시는 대중적인 잣대가 아닌, 현실 감각이 살아있는 이중적으로 내가 만든 잣대로 재는 일이다. 이 말이 어렵다면 다른 방법으로 쉽게 소개한다.

1. 사물에 생각을 심어놓고 매일매일 관심이라는 자양분을 공급하라. 시가 자랄 것이다. 꽃이 필 때 까지 기다려라.

2. 당장 한 편의 시로 완성 하려고 하지 말라. 서두르면 시가 단조롭게 될 가능성이 많게 된다. 써 놓은 글을 보고 또 보면서 나의 생각을 넣을 수 있을 만큼 축약하되 이야기의 일관성을 유지하라.

3. 운문(韻文)이라는 본질이 죽지 않도록 쓰는 연습을 하라. 시를 창작한 후에는 낭송을 해보라. 낭송을 하기가 어색하면 부자연스런 시다.

4. 시적인 현실은 시를 쓰는 사람에 의해 독창적으로 창조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흔히 다루거나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은 멀리하라. 내가 제일 잘 아는 것이 제일 경쟁력이 있다. 시의 장인(匠人)은 시를 멋지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이 누구보다 잘 아는 내용을 특색있게 쓰는 사람이다. 시의 장인이 되라.

5.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습관이 되어야 한다. 길을 가다가, 혹은 꿈에서라도 좋은 장면이 떠오르면 가능하면 즉시 문자로 남기는 일이 시 쓰기다. 머리에 담아 두면 바람 같이 날아가고 문자로 남겨 놓았다가 다듬으면 시가 된다. 그래서 정리가 되지 않은 단어라도 생각나는 대로 적어라. 그러면 그것은 당신의 재산이 되고 뜻밖의 보물이 될 수 있다.

"시를 미치도록 좋아하지 않고 시를 쓰려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말이 있다. 시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버릇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훌륭한 독자를 넘어선 시인이 된 것이다.

- 이어산, <생명 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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