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를 쓴다는 것, 다른 사람 가보지 않은 길 가는 것"
이어산 "시를 쓴다는 것, 다른 사람 가보지 않은 길 가는 것"
  • 현달환 기자
  • 승인 2019.01.18 22:28
  • 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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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20)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시 창작 강좌(20)

□시의 잡석 버리기와 감정이입에 대하여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시는 시인이 오래 고민한 끝에 조심스레 세상에 고백하는 이야기다. 그 고백이 독자에게 옮겨져서 시인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다.

그런데 독자나 시인이 자기 수준에 맞는 시만 선호한다면 그것이 나에게 위로를 줄런지는 몰라도 성장으로 이끌어 가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독자를 편안하게 만드는 시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더욱 분발하도록 하는 시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시는 인생의 길에서 목마를 때 찾는 생수이며 앞이 캄캄할 때 켜드는 등불이자 죄인의 피난처고 혼탁한 세상에서의 호흡이고 고백이다.

그러므로 시는 내 삶과 같이 가는 자연스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

시를 억지로 쓸 필요는 없다. 정말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한 줄이든 두 줄이든 내가 느낀 새로운 것을 그 때마다 호흡을 하듯 꾸준히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는 그 시의 씨앗을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사랑과 정성으로 자꾸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겐 시의 씨앗이 때가 되면 반드시 발아하여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된다. 시를 꼭 써야하는 노동자가 될 필요는 없다.

또한 자기의 삶이 따라가지도 못하는 시를 쓰는 시 기술자가 되는 것도 허망한 일이다. 자기의 색채가 있도록 자기의 삶과 어울리는 시를 쓰자는 것이 필자의 시론이다.

시를 시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잡석(雜石)을 미련 없이 버리는 일이다. 순도 높은 시어(詩語)란 특별한 말이 아니라 예사로운 말의 조합이지만 그 단어를 빼 버려도 말의 뜻이 잡힌다면 다 빼버려서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다.

예를 들어서 “저 들판에 핀/아름다운 꽃들을 찾아/나풀거리며 나비가 날아오네””라고 친절하게 말하면 산문이 되지만 전체 내용이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라면 시가 된다. “저 넓은 땅/조그마한 것들이/키 재기를 하다가/나비를 불러/봐 주라고 합니다” 시적인 것은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보 시인들은 여기에서 많이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거나 아름답게 쓰려다 보니 꾸밈 말과 빼어도 되는 말이 들어가는 결정적 오류를 범한다. 시의 내용이 담백하고 명징하여 그 시에 감정이입이 되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은 시다. 여기서 감정이입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감정이입(感情移入/Mirroring Empathy)이란 ‘문제 속으로 들어가 문제의 일부가 되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시를 읽는 사람이 그 내용에 끌리도록 하는 것이다. 즉 사랑하는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일부처럼 마음이 합해지듯 좋은 시란 시를 읽는 독자가 스스로 시를 느끼고 자기도 시인이 된 것 같은 상태를 말한다.

감정이입의 형식에는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는 ‘에로스’와 정신적으로 한 몸이 되는 ‘아가페’가 있는데 시에서의 ‘에로스’는 직접 체험한 현실을 시로 풀어낼 때 공감되는 것이고 ‘아가페’는 심상(心象), 즉 마음으로 만든 이야기다. 가상현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엔 하나의 ‘시’ 포엠(Poem)이 아니라 ‘시 정신’인 포에지(Poesie)가 감정이입의 핵심이다.

   견우직녀도 이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께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갈고 씨뿌리고 땀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 도종환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전문 1991년 발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론은 “시란,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이루어진 갈래”라는 것과 “시를 쓴다는 것은 새로운 느낌의 언어를 모시러 가는 가마를 준비하는 일이고 다른 사람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본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꽃이 나를 보고 말을 거는 것이며 내가 하찮게 여겼던 것들의 거대한 힘을 발견하곤 기뻐서 독자에게 보고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을 쓰는 일이다.”

그런데 시인이 되는 것을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는 일, 또는 시를 장신구로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사람들을 유혹하여 시인의 이름을 사고 파는 사람과 매체도 많다. 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절제된 내용과 형식, 삶과 시가 같이 가는 진정성이 있을 때 시가 시다와 진다.

아무리 시가 좋아도 사람으로서의 인격이 미달하면 그 시는 가짜 시고 가짜 시인이라는 것이 지난해 문단을 휩쓸었던 ‘미투운동’에서도 드러났다. 필자가 항상 강조하지만 시를 좀 잘 쓰면 어떻고 못 쓰면 어떤가? 시가 되도록만 쓰면 자꾸 쓰다보면 시가 좋아진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시공부 (064)90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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