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칼럼](4)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칼럼](4)토요 詩 창작 강좌
  • 뉴스N제주
  • 승인 2018.09.28 15:32
  • 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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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시인/평론가
이어산 시인.평론가
이어산 시인.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4)

□시의 육화(肉化)와 수준

소설(산문)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서사문학(敍事文學)인데 반해 시는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그려내는 서정문학(抒情文學)이다. '서정'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사람의 감정과 정서를 말한다.

따라서 '서정시'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개인의 정서를 구체적이고 개성적인 것으로 육화(肉化/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뚜렷하게 나타나게 하는 것)시켜서 독자에게 보고하는 1인칭 문학형식이다.

이끌고 가는 줄 알았는데
내가 주인인 줄 알았는데

멈칫 한 번 하지 않고
말없이 밀어주고 당겨주며

더러 지쳐 주저앉아 있을 때는
곁에 바짝 붙어 기다려 주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도 내 몸에 들어와
나보다 먼저 빛을 기다리며
언제나 나를 일으켜 주고 있었고,

빛난다고 자만하는 한낮에
그림자를 잠시 잊을 때에도
모습을 낮추거나 숨길 뿐
한 번도 나를 가린 적이 없었다.

오늘도 그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긴 팔 펼치고
여명(黎明)으로 나아가자고 기다리고 있다.

- 백운복, <그림자>전문

백운복 시인의 <그림자>라는 시는 ‘그림자’를 육화 시킨 1인칭 시 창작법이다. 내가 잊고 있었고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성이자 새로운 발견이다.

“그림자처럼 나를 지켜주었던 존재가 나에게 있었던가?”라는 물음이다. 그러면서 현대인은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산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도 어렵다며 더 쉬운 시, 잘 읽히는 시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잘 읽히는 시도 시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 고갱이나 샤갈의 그림을 평가 하라고 하면 제대로 평가를 할 수 있겠는가? 조선 백자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그 가치의 평가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도 그렇다.

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 시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사실에 둔감하다. 이해가 되는 시, 사실적 묘사에 그친 쉬운 시가 좋은 시라는 착각이다. 즉, 시를 읽는 사람의 수준에서 이해되고 즐기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렇게 시를 읽는다고 시비를 걸 마음은 없다.

다만 이 말에는 “나는 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초보자이기에 시를 대충 읽겠다”는 고백이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골치 아프게 시를 읽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시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 중에서도 이런 생각을 가진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그러나 시에는 깊은 사유와 시인의 상상력이 가공되고, 일상적 어법이 아니라 비틀어서 말하는 것이기에 시를 가볍게 읽어서는 시의 표면에 나타난 사실적인 것에만 반짝 관심이 스칠 뿐 진실이나 시의 본질에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지만 시에는 더 강력하고 섬세한 시인의 의도가 반영되고 숨겨져 있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서 읽고 두 번 세 번 읽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시인의 의도가 다 드러난 글은 산문이지 시가 아니다. 내가 계속 강조해온 '난해한 시를 멀리하고 서정으로 돌아가자'라는 말과 의도가 훤히 드러난 쉬운 시를 혼돈하면 안 된다.

그래서 시는 내 맘대로 읽으면 안 되는 장르이다. 시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으려면 다소의 훈련과정이 필요하다. 시를 읽을 줄 모르면 시를 제대로 쓸 수도 없기에 시를 읽어내는 능력을 기르는 일은 시를 창작하는 일보다 항상 먼저다. 그러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며 어떻게 독자가 공감하는 시를 쓸 것인가라는 고민에 또다시 봉착하게 된다.

▶ 공감을 자아내는 시 읽기와 쓰기

시에 공감 한다는 것은 그 시에 동의한다는 것이고 내가 그 시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또한 공감을 자아내는 시를 쓴다는 일도 시인의 의도와 감성이 독자에게 스며들어 섞이도록 하는 작업이다.

우리는 두 가지 경우의 공감을 보게 되는데, 그 하나는 친숙한 것이고 하나는 새로운 것이다. 친숙한 것에 공감한다는 것은 재발견(재확인)과 관련한 것이고, 새롭고 낯선 것에 공감한다는 것은 발견과 관련한다.

그런데 친숙한 언어로 시를 쓰든 친숙함을 배반하는 시를 쓰든 간에 둘 다 개성이 있어야 좋은 시가 된다는 점이다. 개성이란 독자성과 창의성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아무리 멋진 말로 이루어진 시라도 다른 사람이 쓴 것과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정민 시인의 말은 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가슴에 새겨놔야 할 말이다. 개성적이란 보편적인 것에서 일탈하는 것이고 애매성의 결합이다.

여기에서 애매성이란 수수께끼 같은 직접적 이해가 가능하지 않은 문장이 아니라 월리엄 엠프슨이 말한 '다의성' 또는 '뜻 겹침'에 가깝다는 것이다. 중층묘사를 하라는 말이다.

감성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기에 시적 진실은 산문과는 달리 정서적 반응이라는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드러남이 아니라 감춰서 찾게 하고 애매함 속에 진실을 감춰놓는 것이 시 쓰기의 기본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이어산, <생명 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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