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칼럼](13)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칼럼](13)토요 詩 창작 강좌
  • 뉴스N제주
  • 승인 2018.11.3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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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

□문학상의 현실과 시 쓰기

이어산 시인.
이어산 시인. 평론가

각 신문사에서 개최하는 신춘문예 공모가 곧 마감되고 새해 1월1일에는 당선자를 발표할 것이다. 부릅뜬 눈으로 살펴보고 시인이 몇 번을 읽어도 뜻이 잡히지 않으며 감동도 없는 시는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서 항의를 해야 한다.

물론 읽어내는 시안(詩眼)이 밝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십 년 이상 시를 쓴 사람조차 읽어내지 못하는 시를 일반인이 즐기라는 것은 희극이다.

이런 현상은 매년 반복되는데 작품성을 이유로 소위 자기들만의 리그로 끝나는 경우를 목도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소위 메이저급 문학지나 신춘문예는 감동적인 작품을 선정하고, 전문가 뿐 아니라 독자들이 함께 공감하는 잔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전국의 수많은 문학상도 갈라먹기 아니면 감동이 없는 시 기술자를 뽑아내는 현실을 개탄하던 목소리는 이젠 문학상 무용론으로 번지고 있다.

예를 들면 제주 4.3 평화문학상이라면 최우선적으로 4.3의 피해자가 쓴 작품에 가산점을 주고 그 절절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이 상을 받은 사람이나 그 시에 얽힌 사연이 문학상의 취지를 더 의미있게  할 것이다.

이는 매끈하게 시를 쓴 전문가의 시 보다 훨씬 감동을 줄 것이다. 비시(非詩)가 아니라면 좀 못 쓰더라도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 작품을 쓴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그 상의 특색을 살리는 일일 것이다.

각종 문학상의 심사위원을 전국적인 명망가 중심으로 위촉하다보니 당선자의 작품들이 전국적으로 비슷하다. 연줄로 나눠 먹거나 상금 킬러들의 잔치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문학상의 성격에 맞도록 심사위원 구성부터 그 상의 의미를 제대로 반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늘은 시 읽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 한다.

   1. 깨끗한 시집을 없애라.

   시집이 깨끗하면 시는 그 시집 속에서 깨끗하게 잠자다가 죽는다. 좋은 시를 깨우는 일은, 좋은 시어엔 밑줄을 치면서 깨우고, 동그라미 그리면서 깨우고, 자꾸 흔들어보고, 나의 생각이나 모방시도 적어놓는 등 새까맣게 학대할수록 그 시가 시집을 박차고 나와서 내 평생의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2. 맛있게 먹어라.

   맛있는 먹이를 먹는 개는 곧 세상이 끝나는 듯 집중해서 먹는다. 먹을 땐 맛있게 신들린 듯 집중해서 먹어야 한다. 시를 맛있게 먹는다는 것은 그 시에 동화 된다는 말이다. 세상의 유명 요리사는 다른 요리사의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사람이다. 당신은 시집을 몇 권이나 집중해서 맛있게 먹었는가?

   3.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라.

   맛있는 먹이를 주는 주인에겐 무한 반복으로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내게 좋은 시를 제공한 시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라. 좋은 음식을 알아보고 그것을 만든 이에게 감사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시의 맛을 알아야 내 시의 스타일이 생긴다. 그리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려는 오만한 시를 가려낼 수 있다

   4. 감동을 받는 능력을 키워라.

   같은 것을 봐도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 감동하는 것도 능력이다. 감동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이 못 본 것을 보는 감수성의 능력이다. 감동의 능력이 클수록 나의 내면에 얼어붙어있는 무한한 세상을 깨우는 일이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느끼는 능력이 중요하고, 느꼈으면 감동하고 감동한 것은 글로 남겨야 능력의 실체가 생기는 것이다.

   5.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시를 많이 읽은 사람은 멀리 하늘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가까이 보는 것은 충감도(蟲瞰圖)적인 시각이고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은 조감도(鳥瞰圖)적인 시각이다. 즉 균형을 맞춘 시안으로 읽어야 중층적 다의적 시를 읽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시단에서 시인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넓게 열려있는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대로 대우받는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는 장벽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수많은 문학지가 등단 장사와 책장사를 하는 바람에 수준 미달의 시인들을 쏟아내고 있는 탓도 있지만, 시단을 장악하고 있는 유명 평론가와 시인들은 작품성을 이유로 오히려 벽을 더 높여가면서 자신들의 사단(私壇)을 만드는 구조가 고착화 되고 있다. 

소위 유명 문학지의 당선자 현황을 보면 일 년에 배출되는 시인의 숫자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데, 보통의 경우 상반기 1~2명, 하반기도 그만큼의 숫자를 뽑는다. 어떤 문학지는 몇 백 편의 응모작 속에서도 당선자를 내지 않거나 1년에 한두 명 정도의 시인을 배출하는 곳도 더러 있다.

물론 좋은 시인을 뽑으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시인이 되는 일을 판검사나 의사 배출하는 것 보다 더 어렵게 해놓고 대단히 잘하는 일인냥 그것을 자랑할 일은 아닌 것이다.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자도 1년에 한 명의 시인을 뽑는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제대로 포용하고 한국 시의 발전 동력으로 삼으려는 노력은 커녕, 자기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수준 낮은, 시인 아닌 시인으로 매도하여 내쫒거나 저들끼리의 사단을 만드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일인지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시의 작품성도 주목하지만 국민들이 즐기는 쪽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엘리트체육 못지않게 다양한 생활체육을 활성화 시키는 이유처럼 결국 국민의 정신건강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도 국민생활 저변에 자연스레 스며들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정책적 지원을 해 준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엘리트 시인이 최고인양 쳐준다.

시만 잘 쓰면 사람에 대해서는 알아보지도 않고 뽑는다. 정말 시만 잘 쓰면 다 된 일인가? 그것도 작품성이라는 이유로 내용이 난해하여 쓴 사람도 뜬구름 잡는 식의 설명을 할 수 밖에 없는 시가 우리나라 메이저급 시 전문지에 도배되고 있는데 이게 정상이란 말인가?!
  
- 이어산,<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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