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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14)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칼럼](14)토요 詩 창작 강좌
  • 뉴스N제주
  • 승인 2018.12.08 00:52
  • 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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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시인.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

□다의적이거나 풍자적 시 쓰기와 반죽하기

이어산 시인.평론가
이어산 시인.평론가

빵을 제대로 구우려면 좋은 밀가루로 반죽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시를 완성하기 위해서도 적확(的確)한 언어를 선택하여 반죽을 잘 해야 한다. 우선 연과 행의 구분을 무시하고 이야기 형태로 길게 써놓는 것이 반죽을 하는 일이다. 반죽이 제대로 되면 언어의 빵을 맛있게 구울 수 있다. 단 다음의 내용에 유의 해야 된다.

   1. 단순한 회상이나 추억, 사랑이야기, 또는 ~하노라, ~하노니 같은 고어체 등은 현대시에서는 퇴행적 옛날 소재로 취급되므로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2. 어떤 형태의 빵을 만들지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구조화 되지 못한 것은 짓다가 그만둔 집처럼 된다. 등장하는 단어는 반드시 의미의 연결에 필요하도록 하라. 시를 쓸 때 의미의 수미상관(首尾相關)이 되지 않은 것은 쓰다가 만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바란다.

   3. 빵의 모양도 먹음직스럽도록 해야 되지만 맛도 있어야 한다. 세상을 달관한 듯한 교훈적이거나 지시적인 것은 늙은 시의 표본이다. 자기만의 새로운 심상(이미지)이 파릇파릇한 젊은 시다.

  “A는 이래서 A다”라는 설명조의 시는 “꽃은 꽃이다”라는 말과 같으므로 시가 되지 않는다. 시는 적어도 “A는 B다” 또는 “A는 B이며 C를 감춘 말이다” 정도는 되어야 한다.

   4. 제목은 눈을 감고 정하라. 내용에서 따온 직설적인 것 보다는 그 내용에 맞는 이미지를 생각하여 제목을 달아보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제목은 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려지는 형상에서 뽑는 것이 시적 의미를 더한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무너진 언덕길을 닦았다.
   삽질을 하는데 회충만한 지렁이가
   삽날에 허리가 잘려 버둥거린다.
   지렁이는 재수없이 당했다.
   사람들은 다만 길을 닦았을 뿐이고
   지렁이는 두 동강이 났을 뿐이다.
   모두들 당연한 일을 하는데
   땅속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지렁이.
   모두들.
   국토분단이 재미있다.
   두 동강이 나고도 각자 살아가는 지렁이
   붙을 생각 아예 없는 지렁이.
   자웅동체, 자급자족
   섹스 걱정 전혀 없는
   지렁이
   지렁이
   재미보는 지렁이.

           - 김영승, <반성193>전문

위 시는 다의성(중첩묘사)을 내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강자의 논리에 희생되는 지렁이 이야기다. 어찌할 수 없는 억울한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반성193>이라는 제목에 함몰되지 않고 시에서 A인 지렁이는 강자나 강대국의 논리에 핍박받는 민중을 떠올리게 하는 의미 B로 치환되고 있다.

그러면서 남과 북의 현실로 비약되는 의미 C가 내포되어 있다. 여기서 눈 밝은 독자는 C에 감춰진 그 무엇을 찾아낸다. ‘A는 B임을 말하지만 C의 옷자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붙을 생각 아예 없는” 두 동강이 났어도 현실에 만족하고 있는, 즉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국민들에 대한 질타다.

   대학은 그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기업은 그들에게 후원금을 내고
   교회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병원은 그들에게 입원실을 제공하고
   비서들이 약속을 잡아주고
   운전수가 문을 열어주고
   보좌관들이 연설문을 써주고
   말하기 곤란하면 대변인이 대신 말해주고
   미용사가 머리를 만져주고
   집 안 청소나 설거지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고

   (도대체 이 인간들은 혼자 하는 일이 뭐지?)

              - 최영미, <한국의 정치인> 전문

이 시는 내용이 드러난 시 이지만 시의 또 다른 재미인 풍자(諷刺satire)가 있다. 필자는 그동안 시의 내용이 될 수 있으면 다 드러나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한바 있다.

그러나 풍자란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폭로, 비판, 비꼬기, 빈정대는 문학의 또 다른 형태다. 이렇게 직설적이라도 재미있는 풍자는 시대의 눈이라는 시인이 주목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 이어산,<생명 시 운동>
시공부 문의: (064)90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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