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의 철학과 생명시...“시쓰기 지향점은 행복 쓰기”
이어산, 시의 철학과 생명시...“시쓰기 지향점은 행복 쓰기”
  • 뉴스N제주
  • 승인 2019.01.1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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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19)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19)

□시에서의 철학과 생명시

시의 소재로 그리움이나 사랑이야기, 꽃, 자연풍광에 관한 이야기는 될 수 있으면 시의 주제로 쓰지 말라고 했더니 "그런 것 다 빼고 뭘 쓰란 말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시적 대상에는 제한이 있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시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선택한 소재는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다.

여러 시인들이 이미 발표한 흔한 소재로 시를 쓴다면 여간해서는 주목받기 힘들다. 어차피 시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공감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쌍방향의 문학인데 여기저기에서 들었던 내용을 다시 듣는다는 생각이 들면 독자는 흥미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처음 시를 쓸 때, 시의 소재로 가장 많이 택하는 것은 '자연'이다. 그런데 이 자연이라는 소재는 수대에 걸쳐서 동서양의 시인들이 너무나 많이 써왔고 훌륭한 시도 수 없이 많다.

그러므로 자연에 관한 소재로 시를 써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자연을 매개로 시를 쓸 작정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느꼈을법한 내용은 멀리하고 새롭게 형상화 된 내용, 즉 자기만의 특질화 된 시각의 시를 쓰기 바란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소재로 했을 땐 조금만 방심해도 진부하거나 재미없는 시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범위한 자연은 아직도 나만의 시각으로 해석할 공간을 수도 없이 제공하고 있기에 소재가 빈곤하다고 탓 할 일은 더욱 아니다.

또한 언어예술인 시에 추상적이거나 전문적인 철학 용어를 지닌 개념 등은 될 수 있으면 넣지 않는 것이 좋다. 17세기 시인들은 철학적인 형이상학을 즐겨 사용했다. 초월의 시, 우주적 상상력에 기반한 영원을 염원하는 시가 최고의 시인냥 평가 받았다.

이는 현대시에도 큰 영향을 주어서 지금도 그 방향을 옹호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시는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물에 있다. 그러므로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고 할 만큼 요즘 시의 흐름은 현실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관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철학'을 너무 어렵거나 고리타분한 것으로 생각하여 멀리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철학이란 깊고 오묘하여서 다 설명 할 수가 없다. 철학(哲學)을 영어로 표현하면 'philosophy'이다. 앞의 글자 'philo'라는 말의 어원은 '사랑하다'라는 뜻이고 'sophy'라는 말의 어원은 '지혜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연결하면 '지혜를 사랑하다'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 지식이 아닌 지혜로 시를 써야한다는 시 작법과 떼래야 뗄 수도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자기가 직,간접으로 겪은 삶의 지혜, 즉 자기의 주장을 담지 않고는 나와는 상관없는 방향의 시가 되기 쉽다는 점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시인이 되는 기본 소양인 문사철(文學, 歷史, 哲學)을 어느 정도 공부하지 않고는 자칫 천박한 글을 쏟아내기가 쉽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철학적 용어가 아닌 시인의 철학을 담는 것이 시의 깊이를 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복 받은 일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비경제적이면서도 가장 행복한 일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시 쓰기를 말할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연필 한 자루와 노트 한 권, 아니 요즘은 휴대폰만 있어도 나폴레옹이 그렇게 손바닥에 넣고 싶었지만 실패한 세상을 내 손바닥 안에 넣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시 쓰기의 지향점은 행복 쓰기가 되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세상 죄를 다 짊어진 듯, 천형의 고통을 품은 듯 시를 쓴다면 그런 시 쓰기를 그만 두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시를 즐겨 쓰는 사람은 그 쪽으로 가도록 내버려 두고 우린 시가 나의 세상살이에 활력소가 되고 희망이 되고 행복의 길잡이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추구하는 <생명 시 운동>의 기본이다.

허구한 날
베이고 밟혀
피 흘리며
쓰러져놓고
어쩌자고
저를 벤 낫을
향기로
감싸는지
알겠네
왜 그토록 오래
이 땅의
주인인지

- 민병도, <들풀> 전문

이 시는 들풀을 노래하면서 사실은 힘없고 이리저리 부대끼며 사는 서민들, 즉 민초를 형상화 한 것이다. 그러나 제목을 '민초'라고 했다면 시인의 마음이 드러나서 감동이 조금 약해졌을 것이다. 베이면서도 향기로 감싸는 아가페적인 사랑, 용서와 화해가 떠오르는, 읽고나면 가슴 따뜻한 시, 퍼내어도 퍼내어도 고갈되지 않는 소재가 우리 주위에 수도 없이 널려있다.

쉬잇, 가만히 있어봐
귀를 창문처럼 열어봐
은행나무가 자라는 소리가 들리지
땅이 막 구운 빵처럼 김 나는 것 보이지
으하하하, 골목길에서 아이 웃는 소리 들리지
괴로우면 스타킹 벗듯 근심 벗고
잠이 오면 자는 거야
오늘 걱정은 오늘로 충분하댓잖아
불안하다고?
인생은 원래 불안의 목마 타기잖아
낭떠러지에 선 느낌이라고?
떨어져 보는 거야
그렇다고 죽진 말구
떨어지면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어
칡넝쿨처럼 뻗쳐오르는 거야
희망의 푸른 지평선이 보일 때까지
다시 힘내는 거야

- 신현림, <너는 약해도 강하다>전문

위 시를 읽고 나면 뭔가 용기가 생기고 신발 끈을 다시 매고 싶지 않은가? 이 시는 시인이 자신에게 최면을 걸 듯 한 말일 것이다. 쉽게 읽혀지지만 시인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이 시에서 보듯 '귀를 기울이면 삼라만상이 나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시를 쓸 때 꼭 기억하기 바란다.

고통스런 삶을 이겨내는 시 쓰기가 좋을까? 아니면 그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치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눈물의 시를 쓰는 것이 좋을까? 어린 아이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너무나 간단한 이 답을 놔두고 많은 사람들이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 이어산<생명 시 운동>
*시공부 문의 : (064)90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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