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의 정서는 동양화 같은 여백의 미"
이어산 "시의 정서는 동양화 같은 여백의 미"
  • 뉴스N제주
  • 승인 2019.03.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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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29)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이어산 시인

■ 토요시 창작 강좌(29)

□은유와 여백의 미

시에서 은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절대적이다. 은유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산문이 될 위험이 크다. 은유란 결국 이말 하면서 저말을 하는 표현 기법이다. 이것을 J.C랜섬은"시인은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시에 드러난 내용과 숨겨진 내용이 제대로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다.

   부활절 날 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사람의 발보다
   개미의 발을 씻긴다

   연탄재가 버려진
   달빛 아래
   저 골목길

   개미가 걸어간 길이
   사람이 걸어간 길보다
   더 아름답다

      - 정호승,<봄밤> 전문

한평생을 성실하게 살다 가는 개미를 인간의 모습에 대비시켜 놓았다. 화자는 개미나 인간이나 생명이 있고 결국 평등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는 연탄재가 버려진 가난한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개미 같이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고단한 서민의 발을 씻기는 예수님을 떠올리게 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저 이야기가 떠오르는 시다.

   바다를 나온 갈매기는
   새벽 기차에서 내린 잡새들 틈에 끼어
   언 얼굴을 내밀었다 표정 없는 새들과
   새들의 어지러운 발자국을 보고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서울역 뒤편으로
   아니면 너와 나의
   따뜻한 추억 속으로...

      - 감태준, <떠돌이 새> 전문

이 시는 여백의 미가 있다.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바다를 떠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독자가 짐작할 일이다. 낯설고 고단한 서울역 뒤편, 방황과 갈등이 이 시의 여백에 있다.

여백의 미는 그냥 빈자리를 남겨놓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대상과 조화가 되어야 여백의 미를 잘 살렸다고 말할 수 있다.

말과 침묵의 조화가 어우러져야 시가 답답하지 않다. 시의 정서는 사실 동양화 같은 것이다. 많은 말을 하기 보다는 축약된 말로 독자가 여운을 즐길 수 있도록 다 말하지 않는 작법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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