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좋은 시란 감정 이입이 제대로 된 것"
이어산 시인 "좋은 시란 감정 이입이 제대로 된 것"
  • 뉴스N제주
  • 승인 2019.05.04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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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35)토요 시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의

□좋은 시의 조건 / 동화(同化)와 투사(投射)

시를 좋아한다거나 시를 알고 있다는 말은 일단 시의 독자이거나 시를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시가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일은 '삶이란 무엇인가', 혹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처럼 완전무결한 답을 내어 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시대가 삭막해져 갈수록 더욱 필요한 것이라는데는 학자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현대문명 속에서 시는 우리의 매마른 정서에 한 줄기 빛과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문학적인 사고는 생산성 향상과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로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인문학, 특히 시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어서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시를 쓰며 어떤 시가 좋은 시일까?

한 마디로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 짧은 마디글로 뜻이 축약 된 것이라면 모두 시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잘된 시와 그렇지 못한 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를 쓸 줄 모른다는 것은 잘된 시를 못 쓴다는 말이다. 여기서 잘된 시란 어떤 것일까?
  
   아침 풀밭을 걷다가
   달팽이를 밟았습니다

   크래카 부서지는 소리
   흙발로 밟아
   죄짓는 소리

   우주의 천장이
   내려앉았습니다

   벗겨진 하늘
   드러난 맨 몸둥이
   쏟아지는 빛이며 아우성이며
   나는 춥고 어지러워
   몸을 움추렸습니다

   동서남북 어디로 갈까
   그 자리에 눈감고
   주저앉았습니다
.      - 이향아 <달팽이> 전문

시란 한낱 미물인 달팽이라도 시를 쓴 자신과 동일시 하는 작업이다. 삼라 만상의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과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서정적 자아를 표현한 것이라면 일단 좋은 시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동화(同化/ assimilation)와 투사(投射/ projecion)가 제대로 된 시다.

동화란 외부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여서 그것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것이고 투사는 동화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자기를 사물에 비춰서 감정을 이입시키는 작업이다. 위 시에서 보듯 시인을 짓밟은 것 같이 느끼는 감정 이입이 제대로 된 것일 때 좋은 시가 탄생한다.

시를 한 편 더 소개 하는 것으로 이 강의를 맺는데 사물의 생명부여와 감정이입을 어떻게 시키고 있는지 살펴 보기를 바란다.

   골목은
   흔들리는 木船이다
   집들은 한 쪽으로 기울어지고
   빠져 나가지 못한 매운 바람은
   미친듯 회오리치다가
   그대로 나자빠진다

   그때
   외팔이, 절름발이
   넥타이, 스카프들이 쫓듯이
   오고 가며 서성거린다

   달라붙은 잡귀라도 쫓듯이
   전주들은 휘청거리고
   콜록콜록 폐를 앓는
   늙은 태양은
   풍선처럼 쭈그러진다

   뻐꿈 뻐꿈 뚫리는 벽틈으로
   하늘은  누더기처럼 찢기고
   골목은 태풍을 만난 木船이다
           -문덕수, <골 목> 전문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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