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비유와 상황 유추해 내는 상상력은 詩의 질 좌우"
이어산 "비유와 상황 유추해 내는 상상력은 詩의 질 좌우"
  • 뉴스N제주
  • 승인 2019.05.2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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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38)토요 시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

□시적 대상과의 자리바꿈

이어산 시인.평론가
이어산 시인.평론가

오늘은 시 한 편을 꼼꼼히 살펴보고 시 짓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나무의 생각이 그늘을 만든다
   그늘을 넓히고 좁히는 것은 나무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잡아당겨도 나무는
   나무가 뻗고 싶은 곳으로 가서 그늘을 만든다
   그늘은 일하다가 쉬는 나무의 자리다
   길을 아는가 물으면 대답하지 않고
   가고 싶은 곳으로만 가서제 지닌 만큼의 자유를 심으면서
   나무는 가지와 잎의 생각을 따라 그늘을 만든다
   수피 속으로 난 길은 숨은 길이어서 나무는
   나무 혼자만 걸어 다니는 길을 안다
   가지가 펴놓은 수평 아래 아이들이 와서 놀면
   나무는 잎을 내려 보내 아이들과 함께 논다
   가로와 세로로 짜 늘인 넓은 그늘
   그늘은 나무의 생각이다

      - 이기철, <그늘은 나무의 생각이다>전문

위 시를 쓴 이기철 시인은 태초의 순수한 공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원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필자가 오늘 이 시를 택한 것은 사물을 의인화 하여 시로 승화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시라는 생각 때문이다.

인간외의 사물을 소재로 하여 시를 쓸 때 제일 간단하면서도 시가 되는 방법이 있는데 이것만 잘 해도 훌륭한 시가 된다. 그 방법은 바로 자리바꿈이다.

시적 대상과 시인과의 자리바꿈이다. 위 시는 시인이 철저하게 나무의 입장에서 쓴 시다. 이것을 '시적 대상과 생명적 관계 맺기'라고도 하는데 필자는 '자리바꿈 작법'으로 바꿔서 부르고 싶다. 대게 우리는 우리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그런 글은 산문으로 쓸 때 유용하지만 시는 비유와 은유, 환유(換喩), 또는 자리바꿈이 그 중심에 놓인다.

그러나 자리바꿈만으로는 시로 승화되기 어렵다. 여기에는 사물의 특성과 그것과 연계한 생각을 가치화 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위 시에서 보듯 나무의 생각과 그 아래서 뛰어놀 아이들과 연계 함으로써 연합적 상상으로 시에 의미를 더하게 되는 것이다.

   고속도로 밀리는 찻길
   옆 차선에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트럭에 실려간다
   짐칸에 웅크리고 있는 가난한 내외 같다
   잔뿌리들은 잘리고
   먼저 살던 곳의 흙을 동그랗게 함께 떼어
   얼기설기 새끼줄로 묶여 있다
   흙이 말라 있다
   저 흙도, 잘린 뿌리도 저 나무의 낡은 살림도구다
   어디로 옮겨 심어질까
   근근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릴까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어디에서 늦은 저녁밥을 지어 먹을까

      - 고영민, <이사>전문

비유와 상황을 유추해 내는 상상력은 시의 질을 좌우한다. 그리고 '생명적 관계맺기'로 우리네 인생살이와 이미지로 연결한 시가 좋은 시다.

트럭에 실려가는 잔뿌리가 다 잘린 소나무 이야기를 하면서 가난한 내외의 이사와 장면이 겹치도록 장치를 했다.의인화는 자리바꿈의 다른 표현이다.

- 이어산,<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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