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바다에 길을 내고 걸어가는 사람"
이어산 "시인, 바다에 길을 내고 걸어가는 사람"
  • 뉴스N제주
  • 승인 2019.08.1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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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47) 토요 시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47)

□시 읽기와 말의 덩어리 넣기

시인, 바다에 길을 내고 걸어가는 사람/ 사진=이어산
시인, 바다에 길을 내고 걸어가는 사람/ 사진=이어산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일단 다른 사람이 써놓은 시를 많이 읽어봐야 한다. 좋은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봐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무조건 시를 읽는다고 좋은 시를 쓸 수는 없다. 시를 감상할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시를 제대로 쓸 수 있다. 좋은 음식을 만드는 요리법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를 감상하는 능력은 시 이론 공부를 많이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많은 시집을 사서 읽어봐야 한다. 신경림 시인은 시집 천 권을 읽어보지 않고는 시를 쓰지 말라고 했다. 그가 천 편의 시를 외운다는 말도 수많은 시집을 읽은 결과물일 것이다.

필자의 <생명시 운동>도 결국 시 읽기 운동이요 시집 사보기 운동이다. 시인도 시집을 제대로 사보지 않는데 누가 시집을 사보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시에는 관심이 없거나 현대시의 흐름을 모르고 시를 쓴다면 내가 쓰는 시가 진부한 넋두리인지, 지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조차 모르게 된다.

시인으로 성공하기 어렵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좋은 시와 어려운 시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시를 쉽게 쓰자는 입장이고 시의 본래 모습인 서정의 깃발아래 모여서 가자는 입장이다. 시를 쉽게 쓰자는 건 뜻이 다 드러나는 설명적인 시가 아니라 감동이 있는 시를 쓰자는 말이다. 시인이 몇 번을 읽어봐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는 쓰레기통에 버려도 된다.

그런 시를 좋은 시라고 뽑는 사람들끼리 보고 즐기라고 하자. 시의 확장성과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좋은 시라고 한다면 큰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작품성이라는 말로 포장한 난해한 시가 우리 시단을 점령하는 현상이 계속 된다면 한국시는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져 마침내 조종을 칠 것이다.
시 한 편을 보자.


    종이 울리는 것은
   제 몸을 때려가면서까지 울리는 것은
   가 닿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둥근 소리의 몸을 굴려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려는 것은
   이목구비를 모두 잃고도
   나팔꽃 같은 귀를 열어 맞아주는
   그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소리의 생이 다하려 하면
   뒤를 따라온 소리가 밀어주며
   조용히 가 닿는 그곳
   커다란 소리의 몸이 구르고 굴러
   맑은 이슬 한 방울로 맺히는 그곳.

         - 정일근, <종> 전문


불가에서 종은 그 소리를 통해 땅위와 아래, 하늘과 바다의 생명들을 깨워 어지러럽고 혼탁한 세상에 위안을 주고 동시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 곧 소리로 인간의 고뇌를 씻고 하느님의 도리를 세상에 알리는 뜻이라고 한다.

위 정일근 시인의 시는 쉽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는 잔잔한 감동이 울려오지 않는가? 화자(시속에서 말하는 사람)는 "커다란 소리의 몸이 구르고 굴러/맑은 이슬 한 방울로 맺히는 그곳"에 닿고자 했는데 '그곳'이 어디인가라는 물음을 독자에게 던져 준다. '해탈', 니르바나의 세계로 까지 확장되는 것을 알게되면 무릎을 치게 되는 좋은 시다.
  
시인은 단순한 사고로만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이상의 이미지가 결합된 말의 덩어리, 즉 의미의 중첩을 시에 담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이상의 이미지가 결합된 말의 덩어리를 '이미저리(Imagery)'고 한다.
   
결국 시인은 많은 시를 읽는 사람이고 자꾸 써보면서 시력을 쌓아가는 사람이다.

시인에게만 '온전한 사람'이라는 뜻의 사람 人자를 붙여줄 정도로 이름의 존귀함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던 필자의 환상을 깨는 일이 있었는데 시사모 행사에 참석하신 유안진 시인은 "모든 예술가는 집家를 붙이는데 시인만이 시인(詩人)이라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사람이 제대로 되라는 공부다"란 해석을 했다.
필자의 귀에 대고 치는 범종소리였다.

- 이어산, <생명 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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