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시짓기란 고정관념 깨고 새로운 감각 진술하는 것"
이어산 시인 "시짓기란 고정관념 깨고 새로운 감각 진술하는 것"
  • 뉴스N제주
  • 승인 2019.04.13 06:47
  •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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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32)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

□ 언어의 해석과 조탁능력(彫琢能力)

필자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탈피한 낯선 언어로 시를 쓰자고 강조한 바 있다, 시를 쓴다는 말은 단적으로 말해서 이 친숙함과 일상의 고정관념을 깨어서 새로움을 발견해 내어서 진술하는 일이다.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상투적 표현과 습관적 문맥에 치명적 일격(致命的 一擊/coup degree)을 가해서 심미안(審美眼/아름다움을 살필 수 있는 안목)으로 새로운 결(texture)을 만드는 작업이 '시짓기'란 것이다.

이 내용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행해야 하기에 다시 강조하자면 시짓기의 목적은 사물들이 알려진 그대로가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고, 우리의 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바꾸어서 간접적이며 은유적으로 나타내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시 짓기의 가장 기초적 작법인데 영어로 메타포(metaphor)라고 한다.

   모든  개는 코로 세상을 본다
   코로 어떻게 보느냐고 반문하면
   캄캄한 동굴속에 눈이 퇴화된 박쥐를 떠올린다

   개는 코로 킁킁이며 먹이를 찾거나
   코로 듣는다
   소리 나는 쪽으로 항상 코도 함께 달려온다
   낯선 사람에게 으르릉대는 소리 위에
   말갛고 늠름한 코가 붙어 있다

   개는 코가 제일 빨리 자란다
   코끼리 코보다 멀리 자란다
   코끼리 코보다 휠씬 높이 자란다
   마당구석에 종일 묶여 있어도
   코를 묶어둘 순 없다

   개는 늘 자유다
   코가 자유다

      - 권주열, <개> 전문

이 시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일격을 가한다. 개의 코는 박쥐의 코처럼 발달돼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코로 세상을 본다'는 엉뚱한 해석이 새롭다. 그럼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개를 묶어 놓거나 집안에 가둬 둠으로써 개를 통제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코를 묶어둘 순 없으므로 개는 자유다. 여기에서 화자는 왜 개의 자유를 강조했을까? 인간으로부터 구속당하는 개에게 '해방' 시키고 싶은 구원 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짧은 시 한 편을 더 보자

   제 몸에 십자가를 지고도
   천당 근처에도
   넘나든 사실 없다

   하지만 가볍게 이승을 난다

      - 권주열, <고추잠자리> 전문

고추잠자리의 모습이 십자가처럼 생겼다. 고추잠자리에게서 이런 유추를 해 냄으로써 시는 제대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천당 근처에도/넘나든 사실 없다'고 한다.

이 짧은 시에 감춰진 시인의 깊은 뜻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 땅에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자기의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이 결국 천국에 이르는 길"임을 암시한다.

위와 같은 언어의 용법은 무카로프스키(J. Mukarovsky)에 의해 체계화된 전경화(前景化/foregrounding)로 설명되기도 한다. 전경화란 탈선(脫線/deviation) 즉 규칙과 인습에 대한 위반이라는 개념으로 해석된다.

즉 일상적인 언어들은 배경화(背景化/back grounding)하고 낯선 시어들을 전면에 제시(전경화)하는 작법이다. 이것은 언어의 조탁능력(彫琢能力)이기도 하다. 언어가 잘 조립되어야 시(詩)가 완성되는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는 쓴 커피와 같다. 쓴 커피를 처음 마셔본 사람들은 '이런 것을 왜 마시지?'라는 의구심이 들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커피를 마시다 보면 커피의 맛을 알게 되고, 더 좋은 향이 나는 커피를 찾게 되는 것이다. 시도 그렇다.

시의 깊은 맛을 모르는 사람은 언어를 새롭게 하거나, 언어의 조탁에 필요한 요소들을 무시한다. 그들은 달고 목으로 넘기기 좋은 시를 선호한다.

그런 시가 좋은 시라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물론 그런 시 중에 좋은 시도 있다. 그러나 현대시가 추구하는 기초적인 시작법과 조탁능력을 기르지 않으면 깊이 있는 시를 쓰기가 쉽지 않다.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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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2019-04-17 02:14:20
"기초적인 시작법과 조탁능력을 기르지 않으면 깊이 있는 시를 쓰기가 쉽지않다" 깊은 울림ᆢ

봄이 되면
꽃이 그냥 피는가 싶다가도
샛바람 몇번에 들컥 주저 앉는
그 모습 보면 아리고 쓰린 날들
얼마나 있었을까 새삼 되짚어
보게됩니다

시는 쓰는게 아니고 짓는다는
그 말뜻이 되살아 나는 아침입니다

감사합니다

정수아 2019-04-15 14:06:41
저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디에서 이런 명품강의를 접할 수 있을까요?
이곳은 시를 배우는 사람들의 성지입니다.^^

김정숙 2019-04-15 13:55:03
잘 읽었습니다.
변함 없으신 모습과 열강을 접하면서 지리산 시인학교에서 뵈었던 때가 기억 납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뛰어 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드는게 소원이라시던 말씀이 아직 생각 나네요.
배부르게 시의 성찬을 먹고 갑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조문정 2019-04-15 13:34:47
시 는 쓴 커피와 같다
가슴에 와닿습니다
한마디 언어가 조립이 잘되어야 시가 완성된다는 사실 잊지 않겠습니다
교수님 강의 믹스커피 잔에 잘섞어 잘마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금래 2019-04-14 12:51:12
토요일마다 신선한 충격을 주십니다. 시심도 건드려 주시고요. 이제 시작하는 신도처럼 새로운 맘을 다시 잡게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