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47) 재미있는 설화 돌문화공원 선녀탕⑥
[장영주 칼럼](47) 재미있는 설화 돌문화공원 선녀탕⑥
  • 뉴스N제주
  • 승인 2021.12.1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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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교육학박사
명예문학박사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 설문대할망 동상 건립 제안

세계 최고 중국 57m짜리 관우 청동상

○ 세계 최고 중국 57m짜리 관우 청동상

중국 삼국시대 격렬한 싸움이 전개돼 삼국지의 주요 무대 중 하나인 징저우시가 삼국지 영웅인 관우를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세운 관우상은 세계 최대 청동 조각상으로 기록될 정도다.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쥐고 있는 모습을 조각했는데 워낙 크다 보니 징저우시의 모든 풍경을 압도한다.

두산현이라는 작은 지역에 무려 2억5천600만 위안(한화 438억 원)이 투입된 수이쓰러우도 ‘문화 랜드마크’를 남발하고 자연경관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곳에는 99m 건물이 있다.


○ 자유의 여신상 미국 46m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세워진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은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미국 뉴욕항으로 들어오는 허드슨강 입구 리버티섬에 세워진 이 조각상은 프랑스가 1886년에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선물한 것이다. 여러 해에 걸쳐, 자유의 여신상은 국제간의 우정은 물론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할 정도가 되었다. 횃불을 치켜든 거대한 여신상으로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추는 자유’지만 통상 자유의 여신상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의 여신상 미국 46m

1875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1884년에 완성되었고, 잠시 프랑스 파리에 있다가 1885년 배를 통해 미국으로 이송돼 1886년에 현재 위치에 세워졌다. 여신상은 겉보기엔 조각이지만 내부에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축물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다. 작가 프레데리크-오귀스트 바르톨디가 자신의 모친을 모델로 조각했다고 하며, 에펠탑 설계자인 구스타브 에펠이 내부 철골 구조물에 대한 설계를 맡았다.

구스타브 에펠은 작품을 미국으로 옮기기 위해 여신상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역할도 맡았다. 여신상 받침대는 건축가 리차드 헌트가 디자인한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과 프랑스의 공동 작업으로서 미국인은 받침대를 축조하고 프랑스인이 조상을 맡아 이곳 미국에서 조립하자는데 동의했다. 그러나 대서양을 사이에 둔 이들에게는 자금 부족이 문제였다. 프랑스에서는 공공요금, 다양한 형태의 오락과 복권이 모금의 수단이었다. 미국에서는 자선무대행사, 미술 전시회, 경매, 권투시합이 필요자금을 제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동으로 만든 여신상 무게는 225t, 횃불까지의 높이는 약 46m, 받침대 높이는 약 47.5m이다. 횃불까지 높이는 93.5m에 이르고, 집게손가락 하나가 2.44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받침대 위에 선 여신은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옷을 입고 머리에는 7개 대륙을 상징하는 뿔이 달린 왕관을 쓰고 있다. 오른손에는 ‘세계를 비추는 자유의 빛’을 상징하는 횃불을,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이라는 날짜가 새겨진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여신상의 왕관 부분에는 뉴욕을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박물관과 선물 가게도 있다.

자유의 여신상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뉴욕항에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으로, 이민자들과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 상징적 의미가 있다. 또한,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기회 등을 의미하며,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886년 4월 받침대 공사가 끝났다. 자유의 여신상은 1884년 7월 프랑스에서 완성되어 프랑스의 프리깃함 “이제흐”에 실려 프랑스에서부터 1885년 6월 뉴욕만에 도착했다. 수송 도중 조상은 350개의 조각으로 각각 나누어 214개의 나무상자에 포장되었다. 조상은 4개월에 걸쳐 새 받침대 위에서 재조립되었다. 1886년 10월 28일, 자유의 여신상 헌정식이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 거행되었다. 자유의 여신은 10년 늦은 백 주년 기념품이었다. (출처 펌)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높이 46m의 자유의 여신상은 정확한 이름이 ‘세계에 빛을 비추는 횃불을 든 자유의 신상’인데 그 밑의 기단까지 포함하면 키가 93m다. 발밑에는 노예해방을 뜻하는 부서진 족쇄가 놓여 있고 치켜든 오른손에는 횃불,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 날짜가 새겨진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20세기 초 뉴욕에서 처음 미국 땅을 밟았던 수많은 유럽이 민자들을 환영한 자유의 여신상의 고향은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이다. 프랑스의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Frederic Aguste Bartholdi)가 자유의 여신상을 설계했는데 그는 구상부터 시공까지를 모두 담당한 기획자라고 할 수 있다. 여신상은 187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것이다.

뉴욕을 지키던 별 모양의 요새, 위에 선 자유의 여신상은 대서양의 너른 바다에서 뉴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이 여신상은 바르톨디에게는 세계 최대의 거상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안겨줬고 새로운 꿈을 찾아 미국으로 가는 배의 3등 객실에 몸을 실은 이민자들에게는 오랜 항해의 피로를 풀어주며 신대륙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부풀게 했다. 미국이 희망이었던 사람들에게 자유의 여신상은 신천지로 인도하는 상징이었다.

○ 파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는 기단에서 가시관까지는 354개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어 걸어서 올라갈 수 있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머리 부분의 전망대까지 오를 수도 있다. 계단을 오르면 복잡한 골조 위에 붙은 300여 개의 동판을 볼 수 있다. 전망대는 10여 명이 들어갈 정도로 좁고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천장이 낮지만, 이곳에서 뉴욕 주변의 전경을 볼 수 있다. 대좌 내부에 있는 박물관에서는 여신상의 역사, 건설 모습, 제작 기법 등을 전시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여신상에도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구리에 금박을 입혀 만든 횃불에 구멍이 많이 뚫린 탓에 유리를 이용해서 불타는 횃불의 모양을 만들었다. 또한, 불과 횃대에 물이 많이 스며들고 골조에 틈이 생기는 등 손상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자유의 여신상을 보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1983년에 보수 작업을 시작했다. 외피와 내부의 골조를 연결하는 부분이 손상된 것을 전면 보수했고 리브도 스테인리스강으로 바꾸었으며 구리판과 리벳도 새로 교체했다. 애초 시공할 때부터 잘못되어 있던 부분도 바로잡았다. 횃불 부분은 거의 새로 만들었다. 새로 단장한 여신상의 공식 제막식은 1986년 7월 4일에 열렸다.

장영주 설화 작가의 탐사 현장 모습
장영주 설화 작가의 탐사 현장 모습

○ 설문대할망상 제주 49m로

한라산을 베개 삼아 관탈섬에 발을 걸치고 잠을 잤다. 한라산과 관탈섬까지 거리는 49㎞다. 따라서 설문대할망의 키는 49㎞다(출처 장영주, 설문대할망). 그러나 동상을 만들기에는 불가능하여 100분의 1의 49m로 건립하여야 타당하다. 그럼 세계에서 두 번째 높이의 동상이 되는 것이다.

동상 속에 모든 자료가 들어 있게 제주성을 10분의 1로 축소하여 동서남문에 돌하르방 24기를 세우고….이하 생략, 기본 자료는 장영주, 저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제주어보존회 전 이사장 허성@의 기본 계획도 참고하며….


선녀탕 19권 째 모두 발표해 2021년 시리즈를 마감합니다. 그동안 많은 관심과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천재 작가 설화연구소 장영주 박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내년 2022년부터는 동화로 만나는 남북전래놀이 기획 자료준비 중입니다. 내년에 더 좋은 설화로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 주]

1. 말타기 (제기차기부터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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