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51)동화로 만나는 남북한 전래놀이 - 팽이치기 ④
[장영주 칼럼](51)동화로 만나는 남북한 전래놀이 - 팽이치기 ④
  • 뉴스N제주
  • 승인 2022.01.23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영주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공무원대한민국최고기록(기네스북·400여권·종이전자오디오책 중복있음)
통일교육위원·남북교육교류위원회위원·민통제주협의회부회장·평통자문위원 지냄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아동문학가·문학평론가·사진작가

아빠의 선물

선녀와 나무꾼 테마공원에서
선녀와 나무꾼 테마공원에서

“할머니, 할머니이.”

주영이가 씩씩거리며 들어온다.

딴에는 남들에게 지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에잉, 그깟 팽이 하나 가지고….”

보통 화가 난 게 아니었다.

주영이의 헐 떨어진 팽이하고 석이의 새 팽이하고는 시합이 되지 않았다.

주영이 팽이는 못이 빠져 헐렁하다.

옆 구석마저 부서져 제대로 되지 않았다.

주영이 팽이는 거름더미 속에서 주운 것이다.

그런 팽이가 잘 돌 리 없었다.

힘없이 쓰러지는 팽이를 보고 자기처럼 말라깽이 같아 보여 화가 났다.

“치, 나도 큰 팽이 돌릴 거야.”

큰소리를 치고 왔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에구, 불쌍한 것, 어미 없이….’

할머니는 눈물을 감춘다.

주영이를 볼 때면 늘 그랬다.

주영이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가 엄마라 생각했다.

배가 고플 땐 할머니 젖을 빨았다.

쭈글쭈글한 젖에서 젖이 나올 리 없었다.

그러나 힘껏 빨면 배고픔은 잊을 수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 조무래기들과 어울려 다니며 엄마가 없음을 알았다.

아빠는 매일 술만 마셨다.

술 마시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주영이는 남들이 좋은 옷을 입을 때 헌 옷을 얻어 입었다.

사촌 형이 버린 옷을 가져다 입었다.

그나마 잘 빨지도 못해 입으니 언제나 땟국물이 줄줄 흘렀다.

할머니는 이럴 때 제일 속상해했다.

옷이라도 새로 사주고 싶어도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니 주영이는 더욱 앙탈을 부렸다.

그렇게라도 해서 분을 삭이어야지 마냥 기가 죽어 있을 순 없었다.

‘못난 아비 만나 웬 고생인고?’

할머니는 주영이가 울고 돌아오는 날이면 더욱 마음이 아팠다.

“주영 아이, 아빠 오면 큰 나무로 팽이를 만들어 달라자. 그까짓 팽이 하나 못 만들어 줄까?”

할머니는 주영이를 달랜다.

주영이는 벌써 방에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그고 꿈적도 하지 않는다.

“치, 그까짓 나무로 만든 팽이는 싫단 말이야. 나도 석이처럼 돈 주고 사고 싶단 말이야.”

주영이는 심통이 났다.

‘휴, 이놈이 세상….’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할머니는 긴 한숨을 내 쉰다.

며느리 생각을 하면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이 없다.

살아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아비만이라도 정신을 차린다면 그래도 기죽지 않을 텐데.’

할머니는 먼 산을 본다.

비가 쏟아질 것 같이 검은 구름이 덮였다.

가슴이 답답했다.

손으로 쿵쿵 쳐본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할머니 병은 그렇게 해서 나을 병이 아니다.

마음의 병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묻힌 병이다.

약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다.

‘비라도 내리면 맘이라도 후련 하련만.’

할머니는 이네 고개를 돌린다.

바다를 본다.

바다는 말이 없다.

늘 그랬다.

속이 답답할 땐 확 트인 바다를 바라본다.

그래야 숨이라도 쉴 듯 약간은 시원해진다.

‘그럴 것이여, 자식 걱정할 맘이나 있을까? 만날 술만 마시는 네 맘 난 다 알아.’

할머니는 아들 걱정을 한다.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으니 술로 달랜다.

농사를 지어도 변변한 게 하나도 없다.

배추를 심으면 풍작이 되어 그냥 밭에서 썩게 내버려 두어야 했다.

마늘을 심으면 심한 가뭄이 들어 하나도 살지 못했다. 무를 심으면 어느새 홍수가 나 쓸고 지나가 버렸다.

‘농사꾼은 타고 나는 게여.’

할머니는 이제 한숨을 쉴 기운조차 없다.

‘불쌍한 것….’

할머니는 방문을 바라본다.

방안에는 주영이가 있다.

할머니의 긴 한숨 소리를 듣고는 짐짓 투정을 더 부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야 속이 풀리고 석이가 덜 미워지나 보다.

“주영이 아이, 팽이는 단단한 팽나무로 만든 게 최고인 게여. 참나무로 만들면 더욱 좋지만 구하기 힘들고.”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방을 향해 속삭인다.

“에잉, 난 필요 없어. 돈 주고 살 거란 말이야.”

주영이는 주먹을 꼭 쥐고는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고 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게 안 된다는 걸 벌써 눈치채었다.

“주영이 아이, 이 할미가 만들어 줄까?”

할머니는 주영이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정말?”

주영이는 빼꼼 문을 열었다.

“할머니, 만들 수 있어?”

주영이는 못 이기는 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자, 이리 온.”

할머니는 주영이 손을 잡고 끌어당긴다.

“팽이는 팽나무를 자려 하 뾰쪽이 깎고는 말이야.”

할머니는 주영이를 향해 손짓하며 부지런히 말을 했다.

“그다음에는 뾰족한 곳에 둥근 못을 박고 자르는 거야.”

할머니는 거친 손마디를 내놓고 길이를 잰다.

“너무 길면 홀쭉이가 되어 잘 넘어진단다. 그렇다고 너무 짧으면 뚱뚱이가 되어 힘이 없는 게지.”

할머니는 주영이 주먹을 꼭 쥐고 말을 하고 있다.

진짜 팽이를 만든 게 아니다.

손으로 팽이를 만드는 흉내를 낼뿐이다.

“할머니 정말 잘 만든다.”

주영이는 방긋 웃었다.

팽이가 만들어진 듯 기분이었다.

“씨, 이걸로 석이 팽이를 이길 거야.”

주영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틀림없이 주영이가 이길 거야.”

할머니는 주영이를 안았다.

쏙 들어갔다.

이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곳이 할머니 가슴이다.

아무리 추워도 할머니 품은 언제나 따뜻했다.

할머니는 주영이를 업었다.

터벅터벅 걸었다.

그냥 걷다가 선 곳이 바닷가다.

“안 무거워?”

주영이는 미안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매번 그랬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응석을 부렸다.

그러면 할머니는 피곤해도 주영이 응석을 받아 주었다.

“주영이 몸이 솜처럼 가볍네.”

할머니는 땀이 흘렀지만 이네 손으로 훔쳐낸다.

“할머닌 힘이 세단다. 네 아비도 이렇게 업어 키웠는걸.”

할머니는 거친 숨을 몰아쉰다.

혼자 몸을 가누기도 힘에 부친다.

그러나 주영이를 업을 때만은 힘이 났다.

기운이 났다.

하늘이 곱게 물들었다.

(출처 장영주 메아리를 부르는 아이 마사지)
(출처 장영주 메아리를 부르는 아이 마사지)

 

지는 해가 거친 할머니 숨결을 녹이듯 더욱 빨갛게 바다를 비추고 있다.

“주영이야, 욕심부리지 말고 살자. 네 아빤 너무 욕심이 셌어. 돈을 벌어도 자꾸 벌려고만 했지. 그러나 이제 남은 건 하나도 없지 않니?”

할머니의 목소리가 힘이 없다.

주영이가 무거운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 세상 살아가기가 힘이 든 탓이다.

“어! 할머니, 저기.”

주영이는 먼 하늘을 가리킨다.

“왜 그러니?”

할머니는 무거운 눈동자를 치켜든다.

“엄마야. 엄마가 저기 있어.”

주영이는 지는 해에 가린 붉은 구름을 가리키며 소리 지른다.

“이놈 아이. 저건 구름인 게여.”

할머니는 고개를 떨 꾼다.

“아냐. 엄마야. 엄마란 말이야.”

주영이가 엄마라고 소리치지만 실은 엄마 얼굴을 모른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선생님께서 엄마 얼굴을 그리라 했다.

주영이는 우두커니 앉았다.

“주영이는 엄마를 그릴 줄 모르니?”

선생님이 물었다.

주영이는 할 말이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웃었다.

“걔 엄만 없어요.”

아이들의 합창에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할머니와 산다는 걸 선생님은 깜박하고 말았다.

“미안하구나, 주영아. ”

선생님은 얼른 주영이 어깨를 토닥거린다.

“주영이는 선생님 얼굴을 그려요. 아마 선생님과 같이 생겼을 거예요.”

주영이는 그때야 웃었다.

얼른 크레파스를 들었다.

선생님 얼굴을 그렸다.

엄마 얼굴을 그렸다.

그 얼굴이 구름에 나타났다.

구름이 꼭 엄마 얼굴 같았다.

“엄마 아이.”

주영이의 외침이 무겁게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지는 해가 가만히 서 있다.

빨간 노을이 바닷가를 에워쌌다.

바닷가를 조용히 비췄다.

“아빠 아이.”

주영이는 갑자기 아빠를 부른다.

처음이다.

그러다 눈을 휘둥그레 뜬다.

“어! 진짜 아빠다. 아빠야.”

주영이는 눈을 의심한다.

눈을 비비며 다시 본다.

누군가 걸어오고 있다.

비틀거리면서도 주영이와 할머니가 있는 바닷가로 걸어오고 있다.

“아빠야. 아빠가 오고 있어.”

주영이 눈이 반짝거렸다.

“아빠야. 아빠가 팽이를 사 오고 있어.”

주영이는 소리쳤다.

“아빠가 팽이를?”

할머니는 믿지 않았다.

“할머니 나 내려줘.”

주영이는 얼른 할머니 등에서 내렸다.

막 달려갔다.

바람처럼 아빠 있는 곳으로 달렸다.

아빠도 주영이를 보고 달려온다.

“얘야. 조심조심 하거라이.”

할머니는 외친다.

“아빠 아이.”

주영이는 아빠 품에 안겼다.

술 냄새가 풍겼다.

그러나 아빠의 손에는 술병이 없었다.

술병 대신 팽이와 팽이채가 들려 있었다.

저녁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렸다.

할머니 모습이 아물거린다.

아빠 품에 안긴 주영이도 어둠에 싸였다.

모든 게 아름다웠다.

아빠 품도 따뜻했다.

아침 햇살이 찬란히 비칠 때에야 주영이는 눈을 떴다.

얼마 만인가?

그동안 주영인 아빠가 사다 주신 새 팽이를 꼬옥 껴안고 잠이 들었었다.

(출처 장영주 메아리를 부르는 아이 마사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