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57)동화로 만나는 남북한 전래놀이...연띄우기⑤
[장영주 칼럼](57)동화로 만나는 남북한 전래놀이...연띄우기⑤
  • 뉴스N제주
  • 승인 2022.03.1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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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공무원대한민국최고기록(기네스북·400여권·종이전자오디오책 중복있음)
통일교육위원·남북교육교류위원회위원·민통제주협의회부회장·평통자문위원 지냄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아동문학가·문학평론가·사진작가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 동화/창호지 연

“룰루랄라.”

주영이가 흥얼거리며 학교에 간다.

“좋은 아침.”

어쭈, 세상에 주영이가 아침 인사까지 한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

아니면 아침밥 먹은 게 속이 이상해진 건가?

4교시가 되었다.

아이들은 4교시를 제일 기다린다.

집에선 깡 보리밥을 먹지만 그래도 학교에 싸간 도시락만은 약간 좁쌀도 들어가고 어떤 땐 흰 쌀도 들어간 도시락을 가져온다.

“자, 지난번 예고한 대로 오늘은 연을 만들기로 하겠어요.”

샌님이 우렁찬 목소리를 낸다.

아마 샌님도 얼른 4교시가 끝나 점심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아차, 준비물.’

주영인 깜빡 하고 말았다.

평상시 같으면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대충 돈 주고 사든지 아니면 나중에 할머니가 갖다 주든 했을 법한데 오늘은 그걸 잊고 말았다.

아! 그래서 주영인 오늘 좋은 아침! 했던 게 제정신이 아닌 거였구나.

샌님은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한다.

연날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했던 놀이입니다. 요즘도 설날에는 연날리기 대회를 하기도 합니다.

샌님은 연을 만드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다.

대나무를 깎아 연 살을 만들고 서로 엇갈리게 해서 한지 위에 붙인 다음 연 살을 실로 묶으면 연이 완성됩니다. 그림을 그려 넣으면 더욱 예쁜 연이 되겠죠?

연은 방패연과 가오리연 등 많은 종류가 있다 했다.

부모님과 함께 만들어보면 더 좋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연날리기는 바람이 적당한 날이 좋고, 너무 세게 불면 좋지 않습니다. 연줄을 감아 놓은 얼레를 잘 움직이면 연을 더 멀리 날릴 수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연실을 끊는 연싸움도 한번 해보세요.

연싸움에는 실이 좋아야 한다고도 했다.

주영인 샌님이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준비물도 없기도 하려니와 곧 점심시간이 될 텐데 그게 걱정이다.

주영인 할머니와 산다.

엄마는 어떻게 된 일인지 가출 아닌 가출로 어렸을 때 겨우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흐릿하다.

아빠는 맨날 술만 마시고 주영이 얼굴을 맞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니 할머니가 엄마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주영인 4교시를 얼렁뚱땅 보내고 쏜살같이 달려가 미끄럼틀 뒷편에 몸은 숨긴다.

아이들은 점심시간 맞춰 쪼로로 교실로 들어가 도시락 까먹으며 좋아한다.

주영인 눈을 흘깃거리더니 이네 운동장 한구석에 있는 수돗가로 달려간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수돗물을 한껏 들이마셔야 배가 찼다.

주영인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미끄럼틀 뒤로 달려가 웅크리고 앉는다.

오줌 냄새가 풍긴다.

아이들은 급할 땐 미끄럼틀 뒷자리가 임시 화장실로 쓴다.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여자애든 남자애든 가릴 것 없이 급한 용무는 미끄럼틀 뒤쪽에서 한다.

어떤 때 벽치기(민속놀이 일종) 하기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어떻게 5교시가 끝나고 아이들이 집에 갈 때야 얼른 교실로 들어가 청소를 하는 둥 마는 둥 칠판에 ○ X 표시하고 집으로 달려간다.

“할머니, 창호지 줘.”

주영이는 할머니에게 떼를 쓴다.

“창호지는 우리 집에 없단다. 멀리 딴 마을에 가야 사 올 수 있단다.”

할머니는 주영이를 달랜다.

“안돼, 난 봤어. 창문을 바르다 남은 거 말야.”

주영이는 언젠가 할머니가 창문을 창호지로 바르는 걸 봤다.

“석이 연은 창호지 연이란 말아. 난 똥 종이로 만든 연이니 형편없어. 쌈에 만날 진단 말이야.”

주영이는 창호지로 만든 연을 갖고 싶었다.

창호지는 비싼 종이다.

“창호지로 방패연을 만들 거란 말이야.”

주영이는 코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씩씩거렸다.

주영이는 덜컹 방문을 열고는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갔다.

신발이래야 검정 고무신이다.

검정 고무신도 창이 다 닳아 다른 고무신 창을 뜯어내 실로 꿰맨 것이다.

신발이 크니 발가락이 있는 곳에는 보릿대를 갖다 대었다.

그래야 겨우 맞았다.

벗겨지는 걸 끈으로 묶었으니 볼품이 없었다.

고무신을 벗으려면 끈을 풀어야 했다.

그럴 시간이 없다.

신발을 신은 채 덥석 방으로 들어갔다.

빨리 창호지로 연을 만들고 싶은 마음뿐이다.

주영인 궤짝을 뒤진다.

거기엔 창호지뿐 아니라 가족사진도 있다.

엄마아빠 결혼사진과 함께 주영이가 홀랑 벗고 찍은 백일 사진도 있다.

주영이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창호지를 꺼냈다.

두 뼘은 됨직하다.

“할머니잉, 이걸로 연 만들어 줘.”

주영이는 연을 만들 줄 모른다.

아니, 가오리연쯤은 똥 종이로 여러 번 만들어 봤기에 식은 죽 먹기로 만든다.

장영주 박사
장영주 박사

그러나 그게 아니다.

그런 똥 종이로 만든 가오리연이 아니다.

반반한 방패연(정연)이 필요 했다.

석이 연은 단단한 창호지로 만들었다.

실도 굉장히 좋은 것이다.

나일론 실이다.

웬만한 실을 가지고는 석이 연하고 싸워 이긴 아이들이 없다.

그러나 주영이는 석이를 이기고 싶었다.

싸움해서 진다는 건 말이 아니었다.

“치 그까짓 것, 나도 창호지 연을 만들 거란 말이야.”

주영이는 의기양양하게 큰소리치고 돌아왔는데….

“주영야, 이걸로는 만들지 못한단다. 너무 적아.”

할머니는 주영이가 만들어 달라는 방패연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창호지를 흔들어 보인다.

“그럼 어떻게 해?”

주영이가 괜히 심각해졌다.

석이에 큰소리치고 온 게 금방인데 연을 만들지 못한다면 큰 낭패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일 아빠더러 창호지 사 와라 그러자.”

할머니는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집에 없는 창호지를 금방 구해 오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주연이 마을엔 창호지를 파는 가게도 없다.

“아이쿠 배야. 아이쿠 배. 할머니잉 배 아파.”

주영이는 갑자기 배를 움켜잡는다.

배가 뒤틀렸다.

속이 쓰리고 숨이 차며 배가 아팠다.

밥을 많이 먹어 소화 불량에 걸린 건 아니다.

연을 만들지 못하니 배가 아팠다.

주영이는 웬만한 일에 아파하지 않는다.

죽도록 아팠지만 꾹 참는다.

참아야 했다.

아프다는 아이들이 시시해 보였다.

그까짓 아픈 거야 혀를 꼭 깨물고 한참 있으면 아픔이 나았다.

아픔 정도는 그렇게 참았다.

주영인 어쩌면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모른다.

아프다고 해서 누가 도와줄 리 없다는 걸 벌써 눈치 챘으니까.

“할머니이, 배 아파. 아앙 아앙앙…….”

주영인 방에서 뒹굴었다.

검정 고무신이 벗겨졌다.

양말도 구멍 뚫린 것이다.

겨우 발등만 가린 채 밑창은 아예 하나도 없는 양말이다.

“에구 내 새끼, 주영이 아이. 주영이야 참아라.”

할머니는 주영이를 부둥켜 안았다.

그래도 주영이는 발버둥을 쳤다.

할머니는 주영이 윗도리를 쑥 올렸다.

목욕하지 않아 시커먼 때가 가슴과 배에 쌓여 있다.

할머니는 까칠까칠한 손을 주영이 배 위에 올려놓는다.

“할머니 손은 약손 쑥쑥 내려가라. 할머니 손은 약손 쑥쑥 내려가라.”

할머니는 이상한 주문을 외웠다.

주영이 배를 손으로 문지르며 기도하고 있다.

“할머니 손은 약손 쑥쑥 내려가라.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주영이 누가 아프게 했나. 어서어서 물러가라. 할머니 손은 약손 쑥쑥 내려가라…….”

할머니는 주영이 배를 쑥 눌러 보기도 하고 빙빙 돌려 보기도 하며 뭔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이상하게도 모든 게 편했다.

배가 아픈 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욕심도 사라졌다.

석이 연을 부러워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그냥 편하고 좋았다.

“에구 불쌍한 것…….’

할머니는 잠든 주영이를 내려놓고 일어선다.

할머니는 신발을 끌며 바삐 어디론가 나간다.

할머니는 석이 할아버지를 찾았다.

“내 부탁 들어 주시라요.”

할머니는 다짜고짜 우기고는 연을 만들어 달랜다.

장영주 설화 작가의 탐사 현장 모습
장영주 설화 작가의 탐사 현장 모습

창호지는 나중에 주기로 하고 방패연을 만들었다.

석이 할아버지가 만든 연이니 아주 단단했다.

“내 손자 놈 줄거래이.”

할머니는 바쁜 걸음을 걷는다.

다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건 실을 단단히 만드는 일이다.

할머니는 명주실을 꺼냈다.

그리고는 부엌에 들어가 보리밥을 한 숟갈 떠 왔다.

헝겊에 쌌다.

‘이놈 아이, 이젠 네놈을 당한 연이 하나도 없을 게여.’

할머니는 병을 돌멩이로 잘게 부쉈다.

아빠가 먹고 버린 빈 술병유리 조각이 가루처럼 되었다.

유릿가루를 보리밥을 싼 헝겊에 놓았다.

보리밥과 유릿가루가 잘 섞이게 한 다음 명주실을 놓고 잡아당겼다.

햇빛에 유릿가루가 번쩍거렸다.

할머니는 방패연과 유릿가루를 묻혀 만든 실패를 주영이 머리에 놓아둔다.

“에구 이놈 아이. 불쌍한 놈.”

할머니는 잠든 주영이 이마에 손을 짚는다.

훤한 이마다.

다른 건 몰라도 주영이 이마만은 돌연변이 같았다.

주영이는 꿈속에서 연싸움을 하고 있다.

아무도 주영이 연을 당하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실에 나뭇가지를 꺾어 묶었지만, 그 정도는 어림없다.

주영이가 휙 하니 한번 잡아당기면 유릿가루가 묻힌 단단한 실에 그냥 끊겨 버리고 연은 날아가 버렸다.

어떤 아이는 실에 날카로운 칼을 달았다.

그러나 그것도 칼이 있는 곳만 살짝 피하면 주영이 연에는 힘을 쓰지 못하고 끊어져 버린다.

그야말로 주영이 연이 최고였다.

할머니가 만들어 준 유릿가루 실이 최고였다.

석이 연도 어림없었다.

나일론 실도 형편없었다.

“에잉, 그 연 내놔. 우리 할아버지가 만든 것이란 말이야. 그러니 내 거야.”

석이가 떼를 쓴다.

자기네 할아버지가 만든 것이니 제 것이라는 것이다.

“뭐라고, 이건 할머니가 만든 거야. 그러니 내 거란 말이야.”

주영이라고 뒤질 순 없었다.

“아니란 말이야. 내가 다 봤어. 그건 우리 할아버지가 만든 거란 말이야.”

석이도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기세다.

자랑 자랑하는 나일론 실도 끊겼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아니라니까.‘

주영이가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주영이가 돌멩이를 들었다면 일이 일어난다.

아이들은 그걸 모두 알고 있다.

주영이 눈이 시뻘게진다.

아이들은 주영이 눈을 보고 질겁을 하며 울면서 큰소리치며 도망간다.

“주영이가 사람 막 패 죽여요, 사람 살려요.”

석이는 엉엉 울며 할아버지에게로 달려간다.

“씨, 내가 질 줄 알고…….”

주영이는 석이를 따러 갔다.

“이놈, 네놈이 우리 석이를 막 패 죽이려 해.”

석이 할아버지가 달려온다.

담배 대를 들고…….

“이크.”

주영이는 그때야 정신을 차렸다.

도망쳤다.

도망치면서도 연을 날리는 실은 꼭 쥐고 있었다.

“아이쿠.”

주영이는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부는 바람에 실을 놓쳤다.

연이 멀리 날아가 버렸다.

“안돼, 내 연. 연이 날아간다. 잡아라. 잡아.”

주영이는 발버둥을 친다.

그러다 잠을 깬다.

“아니? 연?”

주영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연이다.

방패연이다.

꿈에 그리던 방패연이 가지런히 주영이 머리맡에 있다. 그것도 명주실에 유릿가루를 묻힌 번쩍거리는 실과 함께….

주영이는 연을 날리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

할머니가 만들어 준 연,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다른 아이들처럼 연이 찢어지면 다시 만들고 할 형편이 못되었다.

연싸움을 해서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다.

그냥 할머니가 만들어 준 하얀 창호지로 만든 방패연이 너무 멋졌다.

두 개의 뿔에 실을 묶어 균형을 잡았다.

장영주 박사
장영주 박사

어느 쪽이 길지도 않았다.

한쪽이 길면 그쪽이 늘어져 짧은 쪽으로 연이 키운다. 그러니 똑같아야 했다.

꽁지 쪽은 한 줄 실로 묶었다.

기둥인 셈이다.

연이 흩어지지 않게 잘 받쳐 주는 셈이다.

이마에도 한 가닥 실로 묶었다.

그 실이 중요하다.

그건 핸들이다.

다른 실보다 약간 짧게 묶었다.

그래야 맘대로 조절을 할 수 있다.

이마의 실이 길면 연이 맹맹한 게 그냥 공중에 떠 있다.

그렇다고 너무 짧으면 이리 빙글 저리 빙글 다루기가 너무 힘이 든다.

적당히 짧아야 맘대로 조절을 할 수 있다.

멋있는 연 이마엔 태극기를 그려 붙였다.

꼭 대장 계급장 같았다.

예쁘게 화장한 색시 얼굴 같았다.

이런 연을 날리고 싶지 않았다.

방에 걸어 두고 오래오래 자랑하고 싶었다.

주영인 연을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 두었다.

저녁이 되어도 밥을 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냥 연을 바라보니 배가 불렀다.

그날 주영이는 한잠도 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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