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62)동화로 만나는 남북한 전래놀이 ... 바줄당기기①
[장영주 칼럼](62)동화로 만나는 남북한 전래놀이 ... 바줄당기기①
  • 뉴스N제주
  • 승인 2022.04.1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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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공무원대한민국최고기록(기네스북·400여권·종이전자오디오책 중복있음)
통일교육위원·남북교육교류위원회위원·민통제주협의회부회장·평통자문위원 지냄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아동문학가·문학평론가·사진작가

□ 머리글  

우리나라를 단일민족국가라 한다. 비록 남과 북으로 나눠 있지만 본디 하나의 나라란 뜻이다.

다만 최근 들어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며 단일민족, 민족 동질성이란 말이 약간 퇴색, 미약하게 들리지만, 반만년을 이어온 민족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멋들어지고 흥겹게 놀 줄 알았다. 남녀가 한곳에 모여 며칠이고 계속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이와 같은 멋과 흥과 가락은 오랜 세월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면서 우리 생활의 바탕을 이루는 민속놀이가 되었다.

민속놀이에 대한 기준과 범주를 보면,

첫째로 민속놀이의 시간적 기준을 어느 때에 둘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사라져 버린 것도 많거니와 최근 나라 밖에서 들어온 것 또한 적지 않다. 그러기에 민속놀이는 시간적, 공간적 환경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로 어린이놀이를 민속놀이의 범주에 넣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부 어린이놀이 가운데에는 민속놀이로 보기 어려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봤을 때 어린이·성인·남·여 구분이 확연하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약간의 개념적 차이는 있지만, 민속놀이는 남녀노소 모든 계층이 한대 어울려 노는(놀이) 민족 민속 고유의 생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남과 북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유의 민속놀이를 개괄적으로 정리한 다음 남한의 전래놀이는 동화형식을 빌린 풀어 쓴 글이고 북한의 전래놀이는 재미있는 전래놀이 민속놀이 금성청년출판사에서 안내하는 기록 형식을 조합한 우리나라 최초 민속놀이 지도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 목차

○ 머리글/2
○ 민속놀이/5
○ 줄다리기 연구/15
○ 믿거나 말거나/20
○ 줄다리기 영차/장영주 작/26
○ 북한 바줄당기기/36

□ 민속놀이

이 글을 쓰며 민속놀이, 대원사 발행을 눈여겨봤다.

여기서 보면, 줄다리기는 남쪽에서 들어온 놀이라 했다(필자 지인 중에 줄댕기기 전수 인간문화재가 있기에 관심을 가졌다).

○ 개괄

줄다리기는 해마다 3월 초에 벌인다. 동서 양쪽으로 나눈 수천 명의 주민이 동은 수줄, 서는 암줄을 가지고 겨루는 놀이이다.

줄다리기는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한쪽 줄이 끊어지든 끌려오든가 하면 끝난다.

줄은 이긴 쪽이 차지하여 거름으로 쓰면 농사가 잘되고, 소를 먹이면 병이 없으며, 지붕에 얹으면 무사태평하다. 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줄을 사 간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북아프리카 일대에서는 농사 직전이나 중간에 남성과 여성이 패를 나눠 줄을 당긴다.

줄다리기의 본거지는 동남아시아의 쌀 재배 지역이다. 인도네시아 동부에서는 남성인 태양신과 여성인 지모신이 한 해 한 번 만나는 의식으로 여긴다.

○ 기지시줄다리기

필자는 설화전문가이다. 그래서 전래놀이를 설화적 측면에서 이야기로 전해지는 지네민속놀이, 베틀민속놀이(지시줄다리기)의 유래를 여러 자료를 한데 모아 살펴보기로 한다.

충청남도 당진의 자랑! 기지시줄다리기 축제

기지시줄다리기는 198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 지정되었고, 2015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기지시줄다리기 축제는 2000년부터 매년 4월 초순에 열린다. 축제에서는 씨름, 풍물공연, 외줄 타기와 더불어 주 종목인 기지시줄다리기 민속행사가 열린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문헌은 없지만, 구전을 통해 전해오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 지네 민속설화 유래

조선 중기, 학문에 전념하였지만 과거 시험만 치르면 번번이 낙방하는 한 선비가 있었다. 선비가 고향인 기지시리로 돌아왔다. 국수봉에 올라 산세를 살펴보니 지네의 형상을 하고 있기에 선비는 지네가 자신을 낙방하게 하고 마을에 피해를 보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어느 날 선비의 꿈에 용 노인이 나타나 “윤달이 드는 해마다 지네 모양의 밧줄을 만들어 줄다리기하여 지네의 허리를 늘려놓고, 지네 모양을 사람들이 밟아 지네의 기를 꺾어야 지네가 심술을 부리지 못하여 재난이 없을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 자정에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고 그 꽃에서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오면, 그 꽃에 불을 질러 아가씨 입에 넣고 피하라.”라는 말을 듣고 국수봉에 올라가 그 노인이 시킨 그대로 하고 도망갔다. 그러자 열두 발 달린 구렁이가 나타나 천년 묵은 지네와 싸워 지네를 죽였다. 그 뒤 노인이 다시 나타나 그 지네는 죽었지만, 암컷과 새끼들이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며, 지네 모양의 밧줄을 만들어 윤년마다 한 번씩 줄다리기하라고 하였다. 선비는 이 사정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노인이 시킨 대로 지네 모양으로 줄을 만들어 산 능선에서 줄다리기했다고 한다.

그 후 선비는 그토록 바라던 과거 합격을 하였고, 기지시 마을도 평화로웠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기지시의 줄다리기를 특별한 사건으로 풍수지리상 지네의 모양을 한 산의 형상을 토대로 지네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기지시 지역에서 만들어진 줄다리기 유래담이다. 지네 모양의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해서 마을을 평안하게 하려던 염원이 담긴 이야기이다.

● 베틀 민속설화 유래

조선 선조기에 당진지역이 바다에 매몰되고, 전염병이 퍼지는 등 재난이 겹쳤다. 이 지역을 지나가던 풍수지리학자가 “이곳의 지형이 옥녀가 베틀을 놓고 베를 짜는 형상이기 때문에 윤년마다 지역 주민들이 줄을 당기면 재난을 예방하고 안정될 수 있다.”라고 하여 그때부터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용이 하늘로 올라가 비를 내려준다는 기지시줄다리기, 줄다리기의 줄은 용을 상징한다. 줄을 당겨 용을 깨우면, 용이 하늘로 올라가 비를 내려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농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지역에서는 대개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의 긴 줄은 물과 물고기를 다스리는 바다의 신, 용을 상징한다. 그래서 가뭄이 들었을 때 줄을 당겨 용을 깨우면 용이 하늘로 올라가 비를 내려준다고 믿어 약 500여 년 전부터 줄다리기했다고 전한다. 조선 선조 재위 시절(1567~1608), 해일과 돌림병으로 마을에 액운이 짙어지자 민심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줄을 당겼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어 있고,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기지시줄다리기의 성격

기지시는 배가 자주 드나들고 물류의 흐름이 활발해서 큰 시장이 열리곤 했다. 그런데 줄다리기를 하는 날이 되면 줄다리기를 구경하려고 수많은 사람이 시장으로 몰려들었고, 그 덕에 장사가 성행했다.

줄을 만드는 곳과 줄을 당기는 장소가 무려 1km나 떨어져 있다. 많은 사람을 시장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줄을 멀리서부터 가져와 시선을 끌어야 했다.

어촌에서 배의 닻줄을 꼬던 기구인 줄들로 굵은 줄을 꼬았다. 줄틀은 단단한 참나무로 만든다. 참나무는 햇빛에 노출되면 터지고 갈라져서 오래 쓸 수 없지만, 물속에 넣어 보관하면 튼튼해지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줄틀은 ‘틀못’이라고 부르는 연못 속에 보관한다.

기지시줄다리기는 물 윗마을과 물 아랫마을로 나뉘어 줄을 당긴다. 물 윗마을이 이기면 풍년, 물 아랫마을이 이기면 태평성세를 이룬다고 믿었다(출처 기지시 줄다리기).

○ 여주 흔암리 쌍룡거줄다리기

흔암리 쌍룡거줄다리기는 여주의 흔암리 마을에서 정월 대보름에 전승되는 줄다리기로 세시적 대동놀이 형태이다. 줄은 쌍줄이며, 아래 윗말에서 각각 제작하며, 전날에 서낭제, 대동우물고사, 강고사를 지낸다. 특이한 것은 줄을 당긴 다음에 줄을 강 위에 띄워 보낸다는 점이다.

당기는 줄은 며칠 전부터 엮으며, 정월 14일에는 마을에서 서낭제, 대동우물고사, 강고사, 집고사를 지내며, 다음 날에 줄을 당기게 된다.

흔암리의 줄다리기는 암줄과 숫줄로 이루어진 쌍줄 형태이다. 이 마을에서는 줄을 용이라 부르며, 황룡과 청룡으로 일컫는다. 용은 웃말과 아랫말로 나누어 제각각 제작하며, 암줄과 숫줄을 합치면 50-100m 정도에 이른다.

놀이는 편장의 지시에 따라 양쪽이 곁줄을 잡고 줄을 당긴다. 대개 삼판양승제로 하며,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여겨 암줄이 이기게 만든다. 줄을 당긴 다음에 줄을 매고 강가로 이동해서 얼음 위나 강변에 길게 줄을 펴놓는다. 그리고 소지를 올리고 고사를 한 다음에 줄을 강물에 띄워 보낸다. 이어 마을로 돌아와 뒤풀이하고 농악에 맞추어 한바탕 놀면서 끝마친다.

○ 광명 아방리줄다리기

아방리줄다리기는 아방리 마을에서 정월 대보름에 암줄과 수줄을 엮어서 서로 당기던 집단적 세시 놀이이다.

이곳은 쌍줄이며, 남녀로 편을 나누고, 목적은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데에 있다.

아방리를 중심으로 동쪽은 수줄, 서쪽은 암줄이 위치한다. 줄 길이는 한쪽이 25cm 굵기에, 길이 약 50m 정도이며, 암줄에 비해 수줄 머리 부분의 고리가 더 크다. 예전에는 30cm, 길이 60m로 지금보다 약간 큰 편이었다. 줄은 볏짚을 이용하며, 집마다 짚을 모아서 줄을 엮는다.

정월 15일에 동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분 중에 ‘영당 할아버지’를 뽑아야 수줄 위에, ‘영당 할머니’를 뽑아 암줄 위에 태우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 이곳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태우는 것이 특이하다. 암줄이 이겨야 그해에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어 할머니 편이 이기게 만든다.

○ 부안 돌모산줄다리기

돌모산줄다리기는 부안 내요리에서 정월 대보름에 이루어지는 외줄 형태의 줄다리기이다. 당산제와 함께 전승되며, 주민이 남녀로 편을 나누어 생산의 주체인 여자 편이 이기게 한다. 따라서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세 시적 의미를 지닌다.

이 마을은 풍수로 볼 때 떠나가는 배의 형상인 행주형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배가 파선되지 않고 잘 항해할 수 있도록 마을 어귀에 돌로 된 솟대를 세웠다. 배의 파선을 막기 위해 예전에는 마을에 우물을 파지는 않았으며, 마을 밖 서편에 별도로 우물을 파서 사용했다(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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