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67)추사 김정희 수제자 박규안 -추사체
[장영주 칼럼](67)추사 김정희 수제자 박규안 -추사체
  • 뉴스N제주
  • 승인 2022.05.2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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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공무원대한민국최고기록(기네스북·400여권·종이전자오디오책 중복있음)
통일교육위원·남북교육교류위원회위원·민통제주협의회부회장·평통자문위원 지냄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아동문학가·문학평론가·사진작가

□ 추사 김정희

○ 김정희 영정(초상화)

보물 제547-5호, 이한철 1857년 작품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31.5㎝, 가로 57.7㎝. 김성기 소장, 오사모와 쌍학흉배의 관복을 입고 호피를 깐 교의에 손을 포갠 자세로 단정히 앉아 있는 좌안 7분 면의 전신 좌상으로 공신 도상 형식을 따랐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추사체

독창적인 길을 창출한 추사체(秋史體)이다.

추사체는 말년에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완성되었다.

주) 안서, 한무제 때 중랑장 소무는 북방의 흉노와 포로 교환을 하러 갔다가 흉노에 내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일행과 함께 붙잡히고 말았다. 항복하지 않으면 처형하겠다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소무가 항복하기를 거절하자 흉노는 그를 움에 가두고 밥도 주지 않았다.

소무는 모전(짐승의 털로 짠 요)을 씹어 먹고 눈을 받아먹으며 버티었다. 며칠이 지나도 소무가 죽지 않자 흉노는 소무를 북해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보내 양을 치게 하면서, 수양에게서 젖이 나면 보내 주겠다고 했다.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무제가 죽고 소제가 즉위한 뒤 몇 년 지나 흉노와 한나라가 화친했다. 한나라는 소무 등을 송환하라고 요구했는데, 흉노는 소무가 이미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후에 한나라의 사자가 다시 흉노에게 갔는데, 상혜가 자기를 지키는 자를 매수하여 밤에 한나라 사자를 찾아와 지난 일을 다 이야기해 주며, 선우에게 ‘한나라 천자가 상림원에서 사냥하다가 기러기를 잡았는데 다리에 비단에 쓴 편지가 매여 있고 거기에 소무 등이 황량한 늪지에 있다고 적혀 있었소.’라고 이야기하라고 알려 주었다.

사자는 크게 기뻐하여 상혜가 알려 준 대로 선우에게 말했다. 선우는 좌우를 돌아보더니 깜짝 놀라 사자에게 사과하며 말했다. “소무는 사실 살아 있었소.”

선우는 소무를 석방했는데, 아홉 명이 소무를 따라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한서》 소무전에 나오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편지를 ‘안서’라고 하게 되었다. ‘안서’는 ‘안신’ 또는 ‘안백’이라고도 하고, ‘안족전서’이라고도 한다.

 

출처 다음 백과

현존하고 있는 그의 작품 중 국보 제180호인 「세한도」와 「모질도」 「부작란도」 등이 특히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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