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32)재미있는 설화 – 돌하르방 선녀탕③
[장영주 칼럼](32)재미있는 설화 – 돌하르방 선녀탕③
  • 뉴스N제주
  • 승인 2021.08.1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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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교육학박사
명예문학박사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장영주 설화 작가의 탐사 현장 모습
장영주 설화 작가의 탐사 현장 모습

□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제주 민속자료 제2호이다.

우석목·무석목·벅수머리 등으로 불리는 이 석상은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졌던 것(제주목에 24기/1기 행불 2기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 위치), 정의현에 12기, 대정현(인성·안성·보성)에 12기로 석상의 형태는 대체로 벙거지형 모자,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 큼지막한 주먹코, 꼭 다문 입술 두 손은 배 위아래로 위엄있게 얹은 모습을 하고 있다.

돌하르방의 평균 신장은 제주성 187㎝, 정의성 141㎝, 대정성 134㎝이며 제작 연대는 영조 30년(1754)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돌하르방은 성문 앞에 세워져서 수호신적·주술종교적·경계금표적 기능을 한 것으로 장승의 기능과 유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돌하르방은 약 500년 동안(1416∼1914) 제주목·대정현·정의현 동서남문 앞에 8기, 4기, 4기가 세워졌었다.

제주목 돌하르방은 모두 원위치에서 이설되었고, 대정현 돌하르방은 지정 호수에 따라 원위치에서 변동된 자리로 옮겨 졌고 정의현 돌하르방은 대부분 원래 위치에 모아 놓여 있다.

『탐라지』에는 서기 1754년(영조 30년)에 김몽규 목사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 전에 성문 앞에 돌하르방과 같은 것이 전혀 없었는지는 고증이 필요하다.

□ 대정골을 찾아서

설문대 공주선녀가 대정현성 남문(모슬포와 가장 가깝다)에 한 발짝 들여놓는 순간,

“설문대할망님, 너무 하십니다.”

사람들이 아우성이었어요.

“무슨 말인고?”

설문대 공주선녀는 금시초문이라 당황스러웠지요.

“우린 사람 아니우꽈? 무사 조천에만 다리 놔 주젠 햄쑤과?”

모슬포 사람들이 설문대 공주선녀에게 막 대드는 것이었어요.

“모슬포에도 다리 놔 줍써.”

사람들의 원성에 설문대 공주선녀는 그러겠노라 대답은 했지만, 왠지 꺼림칙 했나 봐요.

‘이런 낭패가 있나? 조천 사람들은 육지 가는 다리를 놔 주면 속옷이라도 만들어 준다 했건만….’

‘모슬포 사람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돔 물회도 한 그릇 안 주면서….’

설문대 공주선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그래도 탐라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는지라 모슬포에도 다리를 놓아 주려 마음먹고는 바닷가로 나갔어요.

‘이런, 물도 시원치 않고 동굴도 없고….’

설문대 공주선녀는 좀 화가 났지요.

아무리 탐라 백성들을 위하는 일이라지만 이 더위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으면서 ‘공평’을 말하는 게 온당한가 말이다.

“쯧쯧, 국어사전 찾아보아라 일러야겠다.”

설문대 공주선녀는 얼른 네이버 검색을 하네요.

공정(평), 사전의 정의에 따른다면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하고, ‘공평’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을 뜻하는 것으로 공정이 공평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되어 있다.

‘세금 낸 만큼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공평한 것이니라.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곳에 취직하면 그만큼 월급을 많이 주는 것이 공평한 것이니라.’

설문대 공주선녀는 세무사가 된 양 엉장메코지와 모슬포코지의 크기가 다름을 에둘러 말하네요.

‘에라, 모르겠다.’

설문대 공주선녀는 모슬포에서 육지 가는 돌다리를 놓다 말았어요.

그 후 모슬포에도 육지를 향해 놓던 돌다리 자리가 남아 있어 ‘모슬포코지’라 불린답니다.

출처 모슬포 바위 줄기 마사지, 작성자 문필(장영주)

○ 대정읍 지명 유래

대정읍은 『증보탐라지』에 우면 소속의 마을로 상모슬리·하모슬리·동성리 등 6개 마을을, 『대정군읍지』에 우면 소속의 마을로 상모리·하모리·인성리 등 10개 마을이 기재되어 있다.

(출처 대정현성 남문 앞 안내문)
(출처 대정현성 남문 앞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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