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감독 아침노트] 지금의 성장한 캄보디아 야구의 초석은
[이만수 감독 아침노트] 지금의 성장한 캄보디아 야구의 초석은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04.27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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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
2022.12. 프로야구 스포츠서울 올해의 상 시상식 올해의 공로상
김길현 교수님과
김길현 교수님과

지난(3월18일) 나는 캄보디아 야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김길현 교수를 만났다. 무엇보다 나를 감격하게 한것은 비야구인이며 교수인데 무슨 이유로, 또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는지 늘 궁금했었다. 이날 김길현 교수님과 만나 그동안 있었던 많은 이야기를 4시간 동안 즐겁고 놀라며 배우는 자세로 듣게 되었다.

김길현 교수는 한국에서 잘나가는 전 이화여대 약학과 교수였고, 고민하며 깊게 생각한후 캄보디아로 갔다. 왕립 프놈펜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며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교수님의 말에 의하면 그당시 캄보디아 사람들은 지쳐있었고 꿈도 희망도 버린지 오래였다고 한다. 나라는 혼란스러웠고 법은 무용지물이었으며 캄보디아 사람들이 외출하는 것도 두려워 했다고 한다. 김 교수님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규칙과 질서를 가르쳐주고 싶었다”며 그런 면에서 “야구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며 그 당시를 회고했다.

김길현 교수님은 생물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이미 인기있는 교수로 소문이 난 상태였다고 한다. 김길현 교수는 야구명문인 대구 경북고등학교를 나와 자연스럽게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고 또 야구하는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야구 규칙에 대해서도 훤히 깨뚫고 있었다고 한다.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처음 야구를 제안했고, 인기있는 교수의 말에 흔쾌히 처음해보는 야구에 도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야구를 가르칠 때만 해도 야구할 수 있는 장비가 없어 직접 나무로 배트를 만들어 보기도하고 글러브가 없어 두꺼운 종이나 아니면 손으로 볼을 잡는 연습도 시켰다고 한다. 한국 지인들의 따뜻한 도움으로 야구볼이나 글러브 장비가 마련이 되면 보물 다르듯이 너무나 귀중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야구 도구가 비싸기도 하지만 당연히 구입할 수 없기 때문에 귀하디 귀한 야구공이 다 떨어지고 가죽이 너덜너덜하고 실밥이 다 터지면 교수님이 직접 야구볼을 꿰맸다고 한다. 옛날 학생시절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볼을 깁는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교수님도 그때 친구의 동작을 기억하며 볼을 기웠다고 한다.

나도 중학교 시절이나 고등학교 시절 어려운 시절에 야구를 했기 때문에 선배님들이 한 사람당 볼을 서너개씩 나누어 주면 집에 볼을 들고가서 밤새도록 볼을 기워야(사용하는 실은 나이롱실이다) 했다. 그 당시 볼 하나당 딱 2시간 걸렸다. 볼 서너개면 개인연습 할 시간이 없어 그당시 어머님이 밤새도록 야구볼을 기워 주셨던 기억이 난다.

유니폼도 마찬가지다. 캄보디아에서 야구유니폼을 구할 수도 없고 맞출 수도 없어 한국에서 중고 유니폼이나 새옷 유니폼을 선물로 받으면 유니폼 한벌로 1년이 넘도록 단벌로 입고 또 떨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덧대고, 꿰메서 나중에는 유니폼을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입었다.

그리고 가장 신선하게 충격적인 이야기는 야구는 혼자서 하는 운동이 아님을 학생들에게 중요한 가치로 전달한것이다. 정해진 규칙이 있고,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아웃이고 더 이상 경기에 참가할 수 없을수도 있다. 또 야구에는 희생이라는 개념이 들어있다. 희생번트, 희생플라이 처럼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야구를 처음해보는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강조한 부분이라고 한다. 

김길현 교수님과
김길현 교수님과

선수들과 함께 3박 4일 동안 20킬로 되는 배낭을 어깨에 둘러매고 150킬로 행군을 했다고 한다. 김교수님 역시 선수들과 똑같이 20킬로 되는 배낭을 어깨에 둘러매고 선수들과 같이 3박 4일 동안 걸었다고 한다.

첫날 50킬로 걸을 때 단 한마디 하지 않고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도록 선수들에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하게 걷는다는 것처럼 힘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선수들은 비록 힘들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었지만 3박 4일 동안 포기하지 않고 끝가지 다 목표지점에 도착했다고 한다.

김길현 교수님이 만든 캄보디아의 첫 야구팀은 프놈펜 왕립대 재학생들로 구성 되었다고 한다. 이 당시 당연하지만 김 교수님이 야구팀을 위해 학교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제 학살에서 벗어나 발전을 시작하는 나라에서 고가의 야구 용품을 사줄리는 만무했다. 교수님은 직접 발로 뛰어 야구 용품들을 한국에서 친구들과 지인들로부터 공급받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힘들고 어렵게 구한 야구 용품들이라 또한 그 보내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도구들을 일일이 매일 챙기고 책임자를 세워 기록하도록 했다. 훈련 끝내고 볼을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찾을 때까지 당연하지만 누구도 집에가지 못했다. 배트나 글러브 심지어 유니폼까지 잃어버리면 찾을 때까지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선수들에게 야구 용품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처음 야구할 때부터 철저하게 교육시켰다고 한다. 

아주 약간 풍족하게 야구 용품이 있더라도 절대 선수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정말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공급 해줬다고 한다.

이렇게 수십년을 교수님이 선수들에게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지금도 20년이 지났지만 선수들이 야구 용품 만큼은 자기 분신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지난 11월 캄보디아에서도 목격한 것이, 코치들도 가죽이 다 벗겨진 오래된 글러브로 훈련하고 있었다. 다 김교수님이 쌓아두신 야구용품을 귀하게 여기는 철학이 지금까지도 잘 전해지고 있는것 같았다. 

지난번에도 글을 썼지만 김길현 교수님은 야구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강조한 부분이 '희생, 배려, 협동, 예의, 인내'에 대해 많이 강조했다고 한다. 특히 김길현 교수님은 캄보디아 선수들이 야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배웠으면 좋겠다”며 늘 이야기했다. 

그렇게 함께 야구했던 선수들이 이제 모두 장성해서 캄보디아를 이끌어 가는 일꾼이 되어 있다. 특히 캄보디아 야구협회 회장인 '다라'역시 어릴때부터 김교수님에게 이런것들을 잘 배워온 인물이다. 교수님이 앞서 만든 야구를 뒤이어 캄보디아 야구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나 또한 최선을 다해 이들을 도와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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