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 '무엇을 보는 것'은 산문...'어떻게 보는 것'은 시"
이어산 시인, " '무엇을 보는 것'은 산문...'어떻게 보는 것'은 시"
  • 뉴스N제주
  • 승인 2019.12.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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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65)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65)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시의 자리엔 "아름다운 말을 위해서 쓰고, 아름다운 말을 배우기 위해서“라는 말이 놓인다. 그런데 시대상황에 따라서 시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시가 독자에게 안겨주었던 잔잔한 감동은 커녕 시를 읽을수록 혼란스러워서 독자들이 시에서 오히려 멀어진다면 심각한 부작용이 속출하였던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시의 외연확대와 발전을 위해서 실험적이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시의 본류인양 난해하거나 이상한 시를 좋은 시라고 내어놓는 일부 평론가와 시인들이 시단의 흐름을 장악하는 것에는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 헬라어 원전에는 시를 가리켜 '포이에마(Poiema)'라고 했다.

이것은 '최초로 만들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시는 '새로운 말글'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한 것과는 그 본질이 다르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시적대상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 창작' 이란 말보다는 세상에 널려있는 소재로 새로운 말글을 완성하는 행위이므로 '시 짓기'란 말이 시 정신(poetry)에 가깝다.

우리 주변에 이미 널려있는 유·무형의 소재로 시를 짓는 것이므로 시 짓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새롭게 하기'다. 이것의 핵심 포인트는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다.

'무엇을 보는 것'은 산문이고 '어떻게 보는 것'은 시 이므로 '무엇'과 '어떻게'는 시와 산문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시에 목마른 사람이 이렇게 많습니다/신춘문예 응모작들
시에 목마른 사람이 이렇게 많습니다/2020년 뉴스N제주 신춘문예 응모작들

다음의 산문시 한 편을 보자.

내가 대학생일 때 비평가 J씨를 만났는데, 대뜸 "S여대 K교수 시인이 시를 채점하는데 61점 62점 63점 이렇게 하고 있어요. 시가 그렇게 채점이 되는 거예요? 그게 양심 있는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예요? 차라리 시인을 포기하든지...."하고 말하는 것 아닌가.나는 그때 사람을 감정으로 비판하는 것 빼고는 맞는 말씀이라고 맞장구 쳐 드리고 싶었지만 우리나라 중견 시인에 관한 일이라 머리만 긁어 어정쩡, 넘어갔다

놀라운 것은 내가 지금 S여대 K교수,그 시인처럼 시를 채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개발한 '맛보기 이론'이나 아침마다 졸작 생산에 목숨을 끌어넣고 있는 일이나 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내 시의 식구들을 생각해 보면 거기 61점 62점 63점이 놓여 질 수 있는 일인가 아, 이 시 채점의 모순, 줄 세우는 부조리, 기침이 난다

스스로의 무능, 기침이 난다 '창작론' '문학의 이해' 시간에 참새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함께 시를 읊었던 저 사랑하는 무공해의 새순들, 그 머리 위에다 점수를 갖다 얹고, 교수라고 함부로 1점 2점 차등을 주어 놓고 ,제도 때문에, 제도가 이유야...... 하고 그냥 저냥 넘어온 그 확실한 직무유기, 기침이 난다

태형 1천대 이상 기소 가능한 죄인, 너 시인이냐, 대학생일 때 친구 조정래가 화가 나 내게 말했던 "강희근이 너 시인이냐?"하고 다그쳤던 그 냄비 뚜껑 같던 말, 너 시인이냐 기침이 난다

   - 강희근, <기침이 난다> 전문

필자의 스승이신 강희근 선생님이 열 번째 시집을 내실 때 필자에게 원고를 검토해 보라고 주시면서 어떤 제목으로 하면 좋겠냐고 물으셨다.

필자는 위 시가 너무 좋아서 제목으로 추천해 드렸더니 이 시를 표제시로 시집 '기침이 난다'가 ‘한국문연’에서 현대시선으로 발간되었다.

필자는 이 시를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 시에 대해서 별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시를 함부로 평하거나 시와 내 삶이 같이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된다.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기침도 한 번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을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아서 가끔은 내 자신이 부끄러워 질 때도 있다.

김수영 시인은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고 했는데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우리나라 유일의 계관시인 김남조 시인은 “시인은, 열심히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고 정의했다.

즉 사람과 시가 같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시인의 자격이 없다"라는 말과도 같다.

시인은 벼슬이 아니라 겸손하게 삼라만상의 방언을 해석하고 통역하는 사람이다. 사람다운 사람은 교만하지 않다. 

시에 목마른 사람이 이렇게 많습니다/신춘문예 응모작들
시에 목마른 사람이 이렇게 많습니다/2020 뉴스N제주 신춘문예 응모작 최종 심사중... 신달자 시인, 강희근 시인, 허형만 시인(좌로부터)

우리가 아무리 많이 배웠다고 해도 '편협한 시각과 좁쌀 같은 지식'이라는 생각으로 시를 써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겸손해진다.

세상은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 시도 겸손한 것이 사랑 받는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던 것을 찾아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며 말라비틀어져 가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시를 쓰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글이 폭력적이면 시적 대상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독자에게도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시를 읽고 행복해지거나 공감되어지지 않는 시는 시로서의 가치가 없거나 시인의 감정 배설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시에서 글쓴이의 철학적 사고나 고차원적인 사유를 독자에게 가르치려하거나 설명하는 순간 시가 아니라 산문이 된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시에서 필요한 것은 담담하고도 감각화 된 사유다. 감각적 사유란 정서적 느낌 같은 것을 말한다.

겉으로 나타난 것을 시각적이거나 교훈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진한 맛을 독자가 느끼게 할 수 있을 때 좋은 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시의 맛이 깊다'란 것은 내용의 깊이가 아니라 정서적 울림(느낌)의 깊이다.

시각적인 것은 서술과 묘사를 말하는 것이라면 정서적이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연관된 이미지를 진술한 것이다.

시는 내적 고백을 지향한다. 사건과 상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자제하고 자신의 감정을 살짝만 보이도록 숨겨놓고 독자가 그 모습을 짐작토록 하는 문학양식이다.

즉 초점이 사건(현상, 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절제된 감정고백(진술)에 있다.

그래서 실력가들의 시는 대체적으로 담백하고 읽을수록 그 의미가 깊다. 우리의 시 중에는 현학적인 것이 의외로 많다.

현학적이란 스스로 자기를 뽐내려는 지식이나 겉멋에 치중한 문체를 말한다. 이런 것은 오히려 시가 되지 않는 교조적, 또는 장광설이 되기 쉽다.

행여 시가 된다고 해도 통속적인 시로 흐를 개연성이 농후하다.

독자는 화자의 목소리와 태도에 따라서 공감할 수도,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인이나 독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태도는 시 읽는 행복과 시를 쓰는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수준에 이르는 노력이다.

억지로 읽지도 말고 억지로 쓰지도 말라. 내 인생에서 시가 좋은 동반자가 되게 하는 방법은 시를 사랑하는 마음과 삼라만상을 시적으로 해석하는 자세, 그리고 겸손하고 행복해질 마음의 준비를 한 사람일때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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