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언어를 빛내야 할 책임있는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
이어산 "언어를 빛내야 할 책임있는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
  • 뉴스N제주
  • 승인 2020.02.28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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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75)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75)

□따라 하기의 시 짓기

시 쓰다보면 벽이 가로막은 것처럼 도무지 시가 안 될 때가 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 되면 삼천만이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의 길은 인내와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나 복잡하고 바쁜 세상에서 머리를 싸매가면서 시를 쓸 필요가 없다.

고통을 참아가며 좋은 작품을 써보려는 노력은 귀하고 권장되는 시인의 자세다. 그러나 처음부터 너무 힘들게 시를 쓸 필요가 없다. 필자는 시를 즐기면서 써보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감탄하라 (사진=구수영 시인)
감탄하라 (사진=구수영 시인)

모든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한다. 어떤 이론이나 문법 공부보다 처음 시를 쓸 땐 감동이 있고 구조가 잘 짜여 있는 작품을 펼쳐놓고 그 작품의 구조에 내 생각을 끼워 넣는 작업부터 해보기를 권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란 모방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실제로 따라해 보는 것이 백 마디 말 보다는 낫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될 점은 따라하는 것과 베끼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따라하는 것은 그 시를 바탕으로 내 생각을 끼워 넣는 것이지만 베끼는 것은 그 글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므로 필사의 의미는 있겠지만 시 짓기 연습이 아니다.

   다음의 시 두 편을 읽어보자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

   봄바람 불고 또 불어도
   삭정이 가슴에서 꽃을 꺼낼 수 없는 건
   두근거림이 없기 때문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 반칠환, <두근거려보니 알겠다> 전문

 

   때 절은 일바지에 헝클어진 덩덕새머리
   오로지 팔십 평생 까막눈으로 사시다가
   지아비 떠나보내고 한글학교 입학했네

   하루는 막내딸 집 아파트에 들렸다가
   잠긴 문에 삐뚤삐뚤 쪽지 한 장 남기셨어
   '박일심 하머니 아다 가다'그렇게
   돌아섰네

   십리길 강진 장에 푸성귀 팔러나가 해질
   무렵 몇 다발을 가래떡과 바꾸신 후
   두 팔을 휘저으시며 걷고 걷던 신작로 길

   어머니가 떠나신지 십 수 년이 지나갔네
   단 한 번만이라도 뵐 수만 있다면
   맘 놓고 울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눈물의 장강(長江)속으로 편지를 쓰네
   받침 없는 편지 한 줄 어머니께 띄우네
   참으로 먹먹한 오늘,
   '어마 보고 시어요. 우고 시어요'

      - 유헌, <받침 없는 편지> 전문

위 반칠환 시인은 역설적 접근으로 봄을 본다.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다소 식상한 표현이지만 두근거림이 없는 사람은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겨울이 가는지, 봄이 오는지 별 감정이 없으면 시 쓰는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 감동할 줄 아는 사람만이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쓸 수 있다. 가슴에 얼음을 품고 있는 사람은 결코 따뜻한 봄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유현 시인의 시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흔한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지만 사건으로서의 접근법에서 시의 이야기가 명징해졌고 감동을 주고 있다. 감동이 없거나 재미가 없이 좋은 말을 잔뜩 늘어놓아도 시가 천박하거나 시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가 없는 시는 죽은 시라고 한다. 반드시 그 행이나 연이 등장해야 하는 감춰진 의미나 상징으로 전체와 어우러져야 한다.

언어는 그 사용 방법에 따라서 많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데 크게는 언어의 기능을 표시(表示Denotation/지시,외연)하고, 함축(含蓄Connotation/내포)하는 것으로 양대별 할 수 있다.

즉, 그 어휘가 외연적 의미와 지시적 의미를 충실히 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어휘들이 무엇을 내포하고 있고 함축하고 있는지 민감한 감수성이 느껴질 수 있도록 자극해야 하는 것이다.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 소설이나 희곡, 비평과 논설에 이르기까지 언어는 그 핵심이 된다. 그중에서도 시는 전적으로 언어의 묘미를 살려서 독자를 감동시키는 문학의 장르이며 언어와 조화하고 언어와 대결하는 예술이다.

그래서 시인을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이 말은 우리의 언어인 모국어를 다듬고 새롭게 하여 그 속에 내재한 진수를 캐내는 언어의 광부가 되어서 끊임없이 그 언어가 빛나도록 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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