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독자의 공감없는 시는 죽은 시"
이어산 시인 "독자의 공감없는 시는 죽은 시"
  • 뉴스N제주
  • 승인 2019.08.2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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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49) 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49)  

 □ 시 짓기에서 사용치 말아야 할 것들

일출봉 이야기 (사진=이어산)
일출봉 이야기 (사진=이어산)

우리는 지금 첨단 시대에 살고 있다. 디지털 문자가 보편화 되고 실시간으로 소통되는 세상이지만 인간의 감성과 정서에 기여하는 시의 역할은 너무도 유효하다.

그러나 옛날 시인들이 즐겨 쓰던 시풍인 ~하였나니, ~노니 ~이거늘 등의 고어체, ~하라 ~하게 등의 명령어가 들어간 시어, 시인이 문제를 제기하고 결론을 내린 것 같은 마무리, 즉 이것은 ~다. ~해야 한다. 등 ‘다’로 끝나는 것은 ‘독자의 사색 공간을 뺏는 것’으로 인식되어 현대시에서는 권장되지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젊고 진취적 언어를 찾아서 써라.

또한 느낌표나 물음표, 말줄임표, 따옴표 등의 문장부호나 기호의 사용을 자제하라고 했는데는 시인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일 수 있기에 넣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교통 신호등의 그것처럼 지시적이고 직선적이며 확정적 내용이기에 사물을 다른 사물의 이미지로 표현하는 은유가 생명인 시 짓기에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초보시인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의 홍수가 났다”고 할 만큼 자주 인용하는데 이 단어가 등장하는 시는 작품성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워낙 많은 사람이 써 먹었으니까.

이와 비슷한 단어가 ‘사랑’이다. “사랑타령 제발 하지 말라”는 평론가들의 지적은 너무 흔한 이야기다. ‘꽃타령’도 식상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더 설명하지 않겠다.

그리고 현대시에 사진을 덧붙이는 버릇을 들이면 안 된다. 사진을 붙이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시의 맛이 없는 듯 느껴지기도 하는데 시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시는 시로 말해야 한다. 디카시나 사진시가 아니라면 사진이나 삽화를 덧붙이지 않는 편이 훨씬 낫다. 시적 구성이 약하여 사진으로 시를 설명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시의 은유성이나 확장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유명 시인들은 사진이나 삽화는 시를 죽이는 역할을 한다고 하여 거의 붙이지 않는다.

독자의 공감이 없는 시는 죽은 시다. 시가 주는 어떤 이미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건을 모방하면 산문이 되고 감정을 모방하면 시가 된다. 즉 시는 말하지 않고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보여주듯 쓰는 것이 좋다.

오늘은 하지말라는 말 뿐인데 “그럼 무엇을 쓰라는 말인가?”고 반문할 것이다. 세상에 널린 온갖 사물이 시적 대상이다. 대상을 표피적으로 보면 산문이고 심층적으로 보면 시가 된다.

현상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작업이 시 쓰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안에도 눈여겨 살펴보면 시적소재가 많다.
다음의 시를 보자.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낼 수 없는

- 문태준 <누가 울고 간다> 전문

미당 문학상 수상작품이다.

 "가슴이 붉은 새/와서 운다/와서 울고간다" 떠나간 사람을 이렇게 표현했다. 직설적이지 않고 은유적이고 중층적인 진술이다. 전체적인 시의 꼴이 단단하다.

언어 구성이 새롭고 벌말이 없다. 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문태준 시인의 시를 눈여게 봐야할 필요가 있다.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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