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감동 없는 시는 죽은 시...상상적 체험 묘사하고 진술하는 장르"
이어산 "감동 없는 시는 죽은 시...상상적 체험 묘사하고 진술하는 장르"
  • 뉴스N제주
  • 승인 2019.11.15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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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60) 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60)

□서정이 살아있는 시 쓰기

신달자 시인의 특강 '시인론' 중
신달자 시인의 특강 '시인론' 중

"시는 영혼의 피를 흘려야 하는 고통스런 것"이라든지 "천형의 고난을 감내할 용기로 써야 한다"는 시인의 경험담을 가끔 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쓴 시의 진정성에는 박수를 보내주어야 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시를 쓰는 사람들 중에는 훌륭한 시인이 많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의 사람살이에 시가 긍정적으로 이바지 하도록 써보자는 것이고 시를 쓰거나 읽을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시 쓰기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 말은 시에서 고통이나 눈물을 멀리 하라는 말이 아니다. 시의 궁극적 목표인 삶의 카타르시스, 담담하되 감동이 배어나오는 시의 열쇠를 찾자는 것이다. 이것은 '서정으로 돌아가자'라는 시 운동과도 연관된다.


   그렇다, 오늘이 그날이다
   우리가 태어나고 죽고 슬퍼하고
   눈물짓는 그날이다
   사랑하고 기도하고 축복 받는 그날이다
   오늘이 어저께의 어깨를 뛰어넘고
   내일의 문앞에 당도했을 때
   우리는 꿈만 꾸었었다
   오늘이 그날임을 알지 못했다

   나를 거둬가는 그날인 줄은
   내 낟알을 털어 골라두는 그날인 줄을
   나를 넣고 물을 부어 밥솥에 끓이는 그날인 줄을
   나를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씹는
   그날인 줄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소리내어 울고
   어떤 이는 술을 마시며 욕질하고
   어떤 이는 무릎꿇고 연도하는 그날인 줄을

   언제 우리가 오늘 이외의 다른 날을 살았더냐
   어째서 없는 내일을 보려고 하였더냐
   어제는 오늘의 껍질이요 내일은 오늘의 오늘이다
   모든 것이 오늘 함께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오늘이 그날이다​ 

   -김종철, <오늘이 그날이다>전문

 1998년 지리산 시인학교에서 였다. 문학수첩을 운영하던 김종철 시인이 필자의 '지리산시인학교'의 특강 강사로 초청되어 왔었는데 미소를 머금은 초롱하던 큰 눈망울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못에 관한 명상'이라는 시집으로 '못의 시인'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때였는데 그는 "시에서 감동이 없는 시는 죽은 시다"고 말했다.

서정적인 시 쓰기에 열변을 토했던 그는 한국시인협회장 시절에 갑자기 유명을 달리 하셨지만 필자는 서글서글하고 선이 굵은 그의 시들을 지금도 즐겨 읽고 있다.

위의 시도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서정시다. 설명이 필요없는 내용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시를 배운다는 것은 자신에게 덕지덕지 붙어있던 타성, 익숙한 것들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작업이다. 시인은 직,간접으로 경험했던 것에 지각과 감수성을 동원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해석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시인이 경험했거나 삶의 진정성만으로 시를 쓰겠다는 태도는 곧 시의 소재가 바닥나거나 시 쓰기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는 경험의 진실성을 따지는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시를 쓰려면 체험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체험에는 직접 체험과 간접 체험, 상상적 체험이 있다. 그러나 시가 직,간접의 체험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시는 직,간접의 체험 이상의 것이다. 오히려 상상적 체험을 묘사하고 진술하는 장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선험적(先驗的)으로 세상에 먼저 발을 디디는 사람이다. 자기가 직접 체험했던 것만 시를 쓰면 시의 한계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는 사실이다. 화자가 처한 입장에서 생각하고 화자의 정서를 솔직 담백하되 신선하고 내밀하게 표현해야 한다.

또한 시에는 화자(話者)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他者)나 사물이 등장한다. 이때 시에 등장하는 대상들과의 관계를 철저한 의미망(意味網)으로 화자와 연결해야 한다. 즉 타자나 사물이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될 화자와의 관계를 돌려서 말하는 방법을 연마해야 더욱 깊은 맛이 나는 시를 탄생시킬 수 있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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