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 짓기 중요 포인트는 '새롭게 하기'”
이어산, "시 짓기 중요 포인트는 '새롭게 하기'”
  • 뉴스N제주
  • 승인 2020.05.08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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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85)토요 시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85)

□실제성과 다의적인 시

이어산 시인
이어산 시인

시는 주관적 성격의 장르이기에 시인의 주관적 해석을 독자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시를 읽는 대다수의 독자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문제가 된다.

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엄혹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하여 현대시가 어려워졌고 일반 독자들은 시에서 점점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 영향이 지금도 시단에 남아있어서 시의 본류인 '서정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억누르고 있고, 아직도 좋은 시의 반열에는 해석이 어려운 시가 놓이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할 것은 난해한 시와 다의적(多義的)인 시를 혼동하고 있는 문제다.

난해하다는 것은 뜻을 너무 감춰 놓거나 그 의도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시를 말하는 것이고 다의적이란 내적 의미의 큰 줄기는 바로 서 있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상태, 즉 다층적이거나 다중성이 내포된 시를 말한다.

“시는 쉽게 독자에게 읽혀야 한다”는 분위기를 타고 너무 쉬운 시, 시가 되지 않는 글을 시라고 내어놓는 시인들도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이로 인하여 시의 질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져서 지금은 신인들이 소위 주류라는 시단에 진입하는 장벽이 점점 높아져서 이류, 삼류로 내몰리고 시단의 주변부 문학판을 형성하는 구조가 고착화 되고 있다.

그러나 시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서정적 의미를 살리고 시대의 요청에 부응할 수준의 시를 쓸 수만 있다면 일류든 이류, 삼류든 무슨 상관이랴.

그동안 필자는 시의 제목이나 내용에서 시인의 의도가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해 왔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이해해서 어려운 시와 다의적인 시처럼 숨기는 것과 암시적인 것을 혼동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시를 숨기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도록 어렵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암시성을 갖도록 하라는 뜻이다. 제일 좋은 시는 구체적인 형상(이미지)을 세우되 그 안에 시적인 암시가 서려있어야 한다.

사실적인 내용으로만 시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있을 법한 사실성에서 너무 동떨어진 것도 문제가 된다. 즉, 리얼리티(reality/실제성)가 부족하면 긴장감도 떨어진다.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독자도 알고 있는 흔한 내용이거나 시가 재미없다는 뜻이다.

당연한 걸 쓰거나 설명적으로 풀어서 쓴 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는 더 큰 문제다. 이런 경우는 보통 시적인 논리가 형성되지 않아서 자기가 한말을 되풀이(중언부언/重言復言)하거나 이말 했다가 저 말(횡설수설/橫說竪說)하여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잘 모르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시의 대상이 비록 허구의 이야기로 꾸민 구조라 할지라도 시적 정황이나 펼쳐지는 장면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하고 그 안에 긴장감이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될 때 좋은 시가 탄생한다.

시(詩)라는 말에는 본래 '무엇인가를 최초로 만들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성경 헬라어 원전에는 시를 가리켜 '포이에마(Poiema)'라고 했다. 이것은 '최초로 만들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시는 '새로운 말글'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한 것과는 그 본질이 다르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시적대상을 새롭게 해석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 창작' 이란 말보다는 세상에 널려있는 소재로 새로운 말글을 완성하는 행위이므로 '시 짓기'란 말이 시 정신(poetry)에 가깝다.

우리 주변에 이미 널려있는 유, 무형의 소재로 시를 짓는 것이므로 시 짓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새롭게 하기”다. 지난 강의에서도 강조 했듯 “무엇을 보는 것”은 산문이고 “어떻게 보는 것”은 시 이므로 '무엇'과 '어떻게'는 시와 산문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다음의 시를 읽어보면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꼼꼼히 읽어보면 무릎을 칠만한 다의적이고 암시적인 시다. 이런 시도 읽어낼 수 있어야 비로소 깊이 있는 시를 쓸 수 있다고 본다.

이 시를 읽고 느낌을 댓글로 달아주기 바란다. 몇 분을 선정하여 시집을 보내드리고자 한다.

정밀한 숲

원구식

나는 정밀한 숲을 노래한다. 그것은 죽음의 집. 째깍거리는 시계. 집적된 시간의 톱니바퀴들이모여 숲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돌린다. 어린나이에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아, 정말 어리석게도 나는, 숲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입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었다. 얼음보다 차가운 이성으로 말미암아 천박한 자신을 한없이 경멸하고, 껍데기뿐인 육체를 세상에 내보내 즐겁게 학대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고백컨대, 빛나는 정신만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나의 신념은 그릇된 것이었다. 보라. 빛의 입자이며, 물의 노래이며, 주인 없는 공기의 주인인 시간의 톱니바퀴들을. 그들이 돌리는 정밀한 숲을. 그 속에 집적된 모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은밀한 내부를.

- 이어산, <생명시 운동>

■ 디카시 한 편 읽기

   욕망이라는 링거

          
      더 오래 살고 싶은 마음 하나가
          등불처럼 걸려
      어둠이 드리워진 고목의 마음에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 이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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