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실존적 시 쓰기=개성 드러나게 쓰기"
이어산 시인, "실존적 시 쓰기=개성 드러나게 쓰기"
  • 뉴스N제주
  • 승인 2020.03.0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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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76)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76)
□ 실존적 시 쓰기

날 보러 와요 (사진=곽인숙)
날 보러 와요 (사진=곽인숙)

살아서 존재하는 인간을 실존(實存)이라고 하고 그냥 존재하는 것을 존재(存在)라고 했을 때 실존은 인간을 말하지만 존재하는 것은 그 외의 사물이나 물건, 또는 그냥 있는 것을 말한다.

실존주의를 이야기 하려면 구조주의 등을 언급해야 하지만 오늘은 실존주의적 시 쓰기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존재의 설명은 ‘꽃은 아름답다’라 던지 ‘추운 겨울’, ‘꽃집에 꽃이 많다’ 등 개념적 표현이지만 실존의 설명은 ‘인생은 이성으로 판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과 같다.

즉 존재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실존은 상황 너머의 본질이다.

물론 시에서 상황이 적용되기도 하고 본질이 적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시에선 상황적 설명은 시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상황적 설명이 예사말이라면 본질적 표현은 특별한 말이다. 시의 본질이 더욱 뚜렷해지도록 해야 좋은 시가 된다.

사람에게는 개성이라는 것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개성이 아니다. 자기만의 색깔이 있어야 그 사람의 개성이다. 그러므로 시는 개성이 드러나게 써야한다.

이것이 실존적 시 쓰기다. 보이는 것(가시적인 것)만 그리던 인상파적인 작법에서 마음의 세계, 비가시적인 내면을 그리는 상징주의 시 짓기로 자리 이동을 해야 시가 깊어진다.

술자리에서 “한 잔만 줘”라고 했을 때 ‘술을 달라는 뜻’이지 ‘잔을 달라는 뜻’이 아닌 것처럼 손가락 끝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르키는 의미, 내가 느낀 감성을 돌려 말하는 작법으로 쓰는 시를 상징주의적 시 쓰기라고 할수 있다.

다음의 시 한 편을 보자.

   키다리 옷 장속에서
   헛기침 소리가 난다
   십년지기 겨울 코트 하소연 이다
   백화점 이름표 달았다고
   좋아 하더니
   딱 한번 세상 구경시키고
   십년을 옷장지기로 두냐고

   옷장지기 코트를 입어 보았다
   세월 속 변해버린 내 몸
   영 어색하다
   어쩔 수 없이 이웃에게
   입양 보내기로 했다
   새 주인에게 가서
   외출도 자주 하고
   좋은 자리에서
   사랑 받고 살아라
   옷장에 걸려 있는 다른 옷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나 좀 입고 나가 주세요
   꽃도 보고 바다도 보고 싶어요

   옷장 문을 닫아 버렸다
   지금 나는
   고춧가루도 묻고 양념 냄새가
   배어있어도 불평 없는 앞치마가
   최고다
   옷장 속은 지금 파업 중이다

   - 조문정, <옷장은 파업 중>

조문정 회원의 시를 1년 전에 봤을 때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넋두리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의 발전 속도는 빠르다.

아직 작품성을 논하기에는 미흡한 부분도 많지만 위 시는 삶의 편린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들은 쉽지만 짠하고 따뜻하면서도 서민의 애환이 묻어나서 공감이 된다. 돌려서 말하고 비틀어서 말하는 상징적 작법을 더욱 연마하면 좋은 시를 많이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조문정 시인의 시를 소개 한 김에 시집 사서 읽기 운동에 대해 잠깐 언급하려고 한다.

우리는 보통 가까운 시인이 새로운 시집을 냈다고 하면 그 시집을 한 권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친필 서명을 한 시집 한 권 쯤 보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그러다가 시집을 받지 못하면 "시집도 한 권 보내주지 않는다."는 섭섭함을 갖기도 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시단의 풍경이다.
  
필자가 <생명시 운동>을 시작한 목적은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가는 시를 독자 곁으로 오게 하자”는 운동이었다.

난해한 시를 멀리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시를 쓰자는 뜻도 있지만, 시를 쓰는 사람들조차 시집을 돈을 주고는 구입하지 않는데 일반인이 시집을 사서 읽겠는가?

그래서 시인들만이라도 시집을 사서 읽자는 운동이었다. 그래야 시의 선순환 구조가 된다. 우리나라의 시인은 대략 4만 명쯤 된다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은 시집 4~5백 권만 서점에서 팔려도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는 기막히는 현실이다. 그만큼 시집이 안 팔린다는 말이다.

나부터 시집을 사서 읽는 독자가 되어야만 내가 쓴 시도 읽히고 내 시집도 팔릴 것이다.

그리고 시를 어렵게 분석하지 말고 즐기자.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된 어려운 시 말고 우리를 따뜻하게 손잡아 주고 보듬는 어머니 약손 같은 시, 서정의 우물에서 퍼 올린 시집을 사서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시집 한 권에서 많은 것을 건지려는 생각을 버리고 감동되는 몇 소절의 시어만 건져도 그 시집은 우리에게 할 일 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집을 사서 읽자. 이것은 시인이 되는 일보다 훨씬 먼저 해야할 일이고 시인이면 더욱 해야할 일이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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