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는 정(情)=뿌리, 언어=싹, 운율(韻律)=꽃, 의미=열매맺는 것"
이어산 "시는 정(情)=뿌리, 언어=싹, 운율(韻律)=꽃, 의미=열매맺는 것"
  • 뉴스N제주
  • 승인 2019.12.0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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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시 창작 강좌(63)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63)

□사람살이와 시 쓰기

필자는 몇 년 전 새해 첫 강의를 하면서 ‘당.신.멋.져 운동’을 하자고 주창한바 있다. ‘당: 당차게 시를 쓰고, 신: 신나게 시를 쓰고, 멋: 멋있게 시를 쓰되, 져: 져주는 겸손함으로 시를 쓰자는 첫 글자인데 한 동안 시 모임에서 즐겨쓰는 건배사로 인용하기도 했다.

사진=폭발하는 아이비, 유채를 닮다.
사진=폭발하는 아이비, 유채를 닮다.

시를 쓰는 일은 우리 삶의 집에 창문을 내는 일이고 그 창문에 품위 있는 커튼을 다는 작업 같다고 강조해 왔다. 시를 쓰더니 그 사람의 언어와 삶이 품격 있는 사람으로 변화 되었다는 소리를 듣도록 하자는 말이다.

정제되지 않은 말, 자신의 넋두리나 연민, 비탄조는 그런 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좀 더 진취적이고 젊고 밝은 내용의 시를 쓰되 겸손을 잃지 말자고 주장해 왔다.

모든 시인이 좋은 시를 쓰고 유명하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걸 부러워 할 필요도 없다. 좋은 시라고 신춘문예나 유명 시 전문지에서 내어놓는 많은 시 들은 그것의 해석부터가 쉽지 않은 난해함 때문에 오히려 시가 골치 아픈 것이 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시는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되고 일반 독자들에게선 멀어지는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시적 감동이란 이해를 전재로 한 독자를 위한 것인데 소통의 가능성을 차단한 난해함이란 오히려 빈곤과 성취도를 감추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고 그것은 시가 추구하는 근원적 방향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물론 난해하거나 실험적, 전위적인 시에도 좋은 시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주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시는 마음속의 불꽃이고 강력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 즉 정(情)을 뿌리로 하고, 언어를 싹으로 하며, 운율(韻律)을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하는 것이다.

또한 시는 영혼의 화가가 그리는 그림이라고도 하는데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을 때 좋은 시가 되는 것이다. 다만 시가 되기 위해선 최소한의 구성 요소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즉 중복된 문장이나 주제와는 간접적이거나 의미로 연결되지 않는 말을 늘어놓은 횡설수설한 형태 등이다.
다음의 시 한 편을 보자.​

   갯 모래 머금은
   혓바닥 하나 몸을 삼으니
   석화된 입이 무기다
   발바닥 생을 숨긴 집이다
   만입이 다 열려 있어도 적막한

   묵언수행

   어느 전생의 세치 혀가 저지른 죄업인지
   딱딱한 입술 두 쪽에
   혓바닥 하나 숨겨 생애를 건너가는 중이다
   물속에서 내다뵈는 것은
   먼 깜박임
   저건 시리우스 저건 좀생이 별
   저기에도 생을 기댈 짭쪼름한 물이 있을까
   바람 칠수록 명멸하는 찬란을 본다

   머나먼 거기
   뉘 손짓이 저리 반짝이는지
   조개는 날개를 펴듯 움찔 움찔
   패갑을 열었다 닫곤 한다

   - 김추인, <조개의 꿈> 전문


첫 연의 묘사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조개는 입이 열려 있어도 묵언수행 하고 있는, ‘발바닥 생을 숨긴 집’이란다. 그리곤 물 밖으로 보이는 별 중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시리우스별과 자잘한 좀생이별을 보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살이와 이미지로 연결하고 있는데 ‘생을 기댈 짭쪼롬한 물이 있을까’라는 다의적 표현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람 칠수록 명멸하는 찬란을 본다’면서 사람은 희망을 보고 사는 존재임을 다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몸이 무거워서 날지 못하는 새가 인간’이라는 신달자 시인의 강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위 시를 쓴 김추인 시인은 한국예술상, 질마재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고 일곱 권의 시집을 낸 중견시인이자 나이에 비해서 시를 아주 잘 쓰는 시인이다. 그의 시들은 위의 예시처럼 시적 대상과의 자리바꿈을 제대로 하고 있다. 벌말이 없다. 읽을수록 맛이 나는 시가 많다.

한번 읽고 나면 뜻이 모두 이해되어서 다시 읽기 싫어지는 내용이 훤히 드러나는 시는 시의 생명이 일회성으로 끝날 위험이 크다.

시가 예사말이라면 시를 쓰기위해 씨름할 이유가 없을 텐데 시는 특별한 말이다. 비틀어서 말할 때 시(詩)다와지고 줄여서 말하고 시치미를 떼고 돌려서 말했을 때 더 뚜렷해지는 특성을 지닌다.

표피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 다의적이면서도 사람살이에 긍정적으로 이바지 하는 시를 좋은 시의 기준으로 꼽는 이유도 그래서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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