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감정 억제한 통찰력과 시어 조탁 능력이 좋은시 만든다"
이어산 "감정 억제한 통찰력과 시어 조탁 능력이 좋은시 만든다"
  • 뉴스N제주
  • 승인 2019.10.2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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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57) 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57)

□시가 지향하는 목표와 좋은 시인

소설이나 수필은 쓰고 싶은 말을 다 써도 되지만 시는 쓰고 싶다고 다 쓰면 안 된다. 산문은 다 말하는 것이지만 시는 써서는 안 될 말을 골라내는 일이다. 즉 과잉된 의식을 조절하지 않으면 질서 없는 문장이 되어서 시를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시는 감정의 조절이 없이는 제대로 된 시라고 할 수 없다.

태극기로 구분된 분단 (사진=이어산)
태극기로 구분된 분단 (사진=이어산)

시를 왜 읽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시를 읽으면 마음이 아름다워진다”라는 대답이 가장 많다. 이 말은 시를 쓰는 사람의 지향점을 암시해준다. 즉, 시를 읽는 사람이 시로 인하여 마음이 순화되고 아름다운 정서를 갖게 되도록 하는 것이 시가 추구하는 가장 큰 목표다.

물론 시의 갈래는 다양하고 사람에 따라서 실험적인 시를 쓰거나 혹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말이 아름다우면 행동이 아름답게 되고 말이 거칠면 행동도 거칠다. 또한 마음이 맑으면 말이 맑게 되고 말이 맑으면 시도 맑아서 독자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할 수 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되지 않는 글, 혼돈을 부추겨서 짜증을 더하게 하는 것은 시의 다양성이나 작품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 내용이 어렵거나 선뜻 뜻이 잡히지 않은 갈래의 시라도 좋은 시는 느낌, 즉 감(感)이 온다.

사회 참여시’처럼 시인이 시대의 양심으로서 말해야 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에도 시인의 자세와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농부는 돈이 되던 안 되던 자기가 가꾼 농산물을 애지중지하는 것처럼 시를 시답게 가꾸는 일도 그와 같다.

시가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편향되거나 사회 현상에 편승하여 종 주먹질을 하는데 사용되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시는 광부가 광석을 캐내어서 제련하는 것과도 같다. 잡다한 언어에서 가장 순도 높은 시어를 추출하는 일이다.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말이나 사상을 그대로 배설하면 시가 아니라 산문이 되어버리거나 시가 되더라도 추해진다. 사람의 절절한 정서라도 예술형식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상관물을 차용하여 순화되고 가장 적합한 언어의 취사선택을 통한 깊고 넓은 사고의 강물이 흐르게 하는데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1
   그녀가 물에 빠져 죽어 냇물로부터
   넓은 강물로 떠내려갔을 때
   하늘의 오팔(蛋白石)은 마치 그 시체를
   위안하려는 듯 매우 찬란하게 비추었다.

   2
   수초와 해초가 그녀에게 엉겨 붙어
   그녀는 차츰 아주 무거워졌다.
   물고기들은 그녀의 발치에서 서늘하게 헤엄쳤고
   식물과 동물들이 그녀의 마지막 여행을 더욱 힘들게 했다.

   3
   하늘은 저녁이면 연기처럼 어두워졌고
   밤이 되면 별빛이 떠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아침과 저녁이 있도록
   하늘은 일찍 밝아졌다.

   4
   그녀의 창백한 몸통이 물 속에서 썩었을 때
   (매우 천천히) 일어난 일이지만,
   하느님은 서서히 잊어버렸다,
   처음에는 그녀의 얼굴을, 다음에는 손을, 그리고 맨 마지막에야 비로소 그녀의 머리카락을.
   그 뒤에 그녀는 많은 짐승의 시체가 가라앉은 강물 속에서 썩은 시체가 되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익사한 소녀」 전문

이 시는 1919년에 발표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참여 시로 꼽힌다. '하느님'으로 표현된 권력, 또는 우매한 대중은 소녀로 표현된 약자를 어떻게 잊어가는지를 다의적인 방법으로 고발하고 있다.

마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국가의 총체적 부실과 폭력적인 자본의 이윤추구와 언론의 무능, 그 실재를 온전히 국민들에게 드러냈듯... ‘가만히 있어라’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탈출하지 못한 304명의 소년과 소녀들 등은 구조되지 못하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건은 마무리 되지 않고 있다.

브레히트의 '익사한 소녀'는 매우 상징적인 시로 다가온다. 국민의 생명을 구조하지 않은 국가와 그 무엇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에 대한 비판을 한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함의하고 있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절절한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넋두리나 분노를 그대로 표출하지 않고 심미적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건의 '무엇을 보는가'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보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감정을 억누르고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시어를 조탁 능력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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