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짓기?...'망원경'으로 당겨보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라"
이어산 "시짓기?...'망원경'으로 당겨보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라"
  • 뉴스N제주
  • 승인 2020.04.03 19:49
  • 댓글 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80)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80)


□시의 오솔길 걷기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시인은 세상을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세밀하게 그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시의 소재를 선택할 때 역사, 민족, 산 등 너무 광범위한 소재로 시를 쓰면 몇 편 쓰고 나면 쓸게 없어진다.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랄 말이 있다면 망원경으로 당겨보고 현미경으로 본다는 생각으로 대상에 집중하여 깊게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시적 대상이 나에게 말을 걸어 올 때까지다.

길을 가다가 들꽃이 만났을 때 그것을 소재로 시부터 쓰려고 한다면 초보시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우선 그 들꽃의 이름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고, 두 번째 일이 그 꽃의 특성을 상세하게 알아보는 일이다.

그 꽃의 잎이 내는 소리와 꽃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연구하고, 마지막으로 그 꽃과 나와의 관계를 의미망으로 연결되는 그림이 그려보는 일이다. 그래서 느낌이 왔을 때 그 느낌을 받아 적는 자세로 쓰는 것이 필자의 시 짓는 방법이다.
남의 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시 속을 거니는 작업이다. 수준이 떨어지는 시에는 거닐어 볼만한 오솔길이 없다. 제목이나 첫 연을 읽어보면 그 길을 가보기도 전에 그 길이 짐작되는 시는 뻔한 내용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재미없고 지루한 일이다. 현실에서의 친절한 설명은 고마운 일이지만 시에서의 설명은 시 속의 오솔길을 없애는 일이다.

필자의 이 강좌는 시 짓기의 지식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필자가 경험했거나 알고 있는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이 글을 읽는 사람은 그것을 참고하여 스스로 오솔길을 만들 수 있는 지혜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사실 필자가 알고 있는 내용은 지극히 한정되고 주관적인 것이 많다.

그래서 자기에게 맞는 시론은 취사선택하는 지혜를 갖기를 바란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식은 유한하고 지혜는 영원하다”는 탈무드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교육을 한다.

‘지혜’란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을 아는 것이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는 크다. 스스로 시 짓기의 방법을 터득하여 좋은 시를 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앞선 시인들의 시도 읽어보고 시론도 보고 내 것으로 체화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간접 경험이란 앞선 이가 걸어갔던 일을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인데, 다른 사람의 시나 평론을 읽는 일이 바로 그 일이다.

다음의 시를 한 편 소개한다.

   열쇠를 잃어버린 뒤에야
   문도 벽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지금 겨울비 뿌리고
   차가운 바람 부는 저녁녘
   그러나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잠자리 때문도 아니었다
   냉장고에 넣어 둔 맛진 음식 때문도
   장롱 깊숙이 숨겨둔 패물 때문도 아니었다
   동료들과의 잦은 말다툼도
   아내와의 냉전도
   무너뜨려야 할 벽이었다
   열쇠가 필요했다

   열쇠 수리공을 부르기로 했다
   그는 얼마나 많은 열쇠를 가지고 있을까
   그는 또 얼마나 많은 벽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열쇠 수리공은 너무 쉽게 문을 열었다
   벽은 나의 밥이지요,
   세상 어디에도 벽은 있고
   모든 벽이 더욱 튼튼해질수록
   나의 희망도 커져만 가죠

   벽이 밥이라니, 희망이라니?
   마음이 곧 열쇠로구나!
   하루하루 희망을 객사시키며
   암흑 같은 방 안으로만 잦아들던 나는
   새로 만든 열쇠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이승협 시인, <열쇠를 잃어버리다> 전문

위 시 속을 거닐어봤다면 묘사와 진술, 환유로 결합한 부분과 느낀 점을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란다. 몇 분께 시집을 보내 드리려 한다.
지난주 강의에 대한 댓글을 올려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

특히 해찬솔 시인과 박상원 시인을 비롯한 64명이 핵심을 짚어주신 댓글을 달아주셔서 내심 그 수준에 감탄을 하였다.

다음 몇 분을 선정하여 강희근 시인의 시 선집 <시는 리라소리 나는 곳으로 간다>를 보내드린다. 일창으로 주소를 남겨주시기 바란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