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5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공중
[김필영 시문학 칼럼](5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공중
  • 뉴스N제주
  • 승인 2023.08.2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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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장옥관 시집, 그 겨울 나는 북벽에 살았다 : 문학동네 시인선 036, 013쪽. 공중

공중

장옥관

공중은 어디서부터 공중인가
경계는 목을 최대치로 젖히는 순간 그어진다 실은 어둠이다 캄캄한 곳이다
나 없었고 나 없을 가없는 시간
빛이여, 기쁨이여
태양이 공중을 채우는 순간만이 생이 아니다
짧음이여, 빛의 빛이여
그러므로 이 빛은 幻, 환이 늘 공중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몸 아파 자리에 누워보니
누운 자리가 바로 공중이었다 죽음이 평등이듯 어둠이 평등이었다
공중으로 바람이 불어오고 구름이 지나간다
빛이 환이듯 구름도 환,
부딪칠 것 없이는 저를 드러낼 수 없는
바람만 채우는 곳
환의 공중이다.

뉴스N제주가 주최한 '나의 시 나의 인생' 문학특강 가을편이 19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뉴스N제주 스타디움(제주시 중앙로 253, 5층)에서 김필영 시인이자 평론가를 초대해 특강을 가졌다.
뉴스N제주가 주최한 '나의 시 나의 인생' 문학특강 가을편이 19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뉴스N제주 스타디움(제주시 중앙로 253, 5층)에서 김필영 시인이자 평론가를 초대해 특강을 가졌다.

공중(空中), 무한을 포용하는 환(幻)의 공간

공중(空中)은 흔히 하늘과 땅 사이 공간을 말한다. 기상학적 용어로 공기가 존재하는 공간을 말한다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의 층으로 지상 약 1,000킬로미터까지를 이르며, 일반적으로 기온 분포에 따라 대류권(對流圈), 성층권(成層圈), 중간권(中間圈), 열권(熱圈)으로 나눈다. 그럼 어디서부터 공중이며 공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것인가? 장옥관 시인의 시안(詩眼)을 통해 공중을 바라본다.

시는 “공중은 어디서부터 공중인가?”라는 공중의 경계를 지목하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공중’과 ‘어디서’라는 구조로 된 간단한 질문이나 답을 하려하면 텅 빈 공간에서도 숨이 막힌다. 우리는 이처럼 너무나 가까운 것을 모르거나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시인은 그 질문을 던져놓자마자 “경계는 목을 최대치로 젖히는 순간 그어진다.”라고 공중의 경계를 알려준다. 그러나 신체가 미치는 경계만으로 공중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 ‘실은 어둠이며 캄캄한 곳’이기 때문이다. 공중은 시각적으로 밤과 낮이 있음에도 왜 화자는 캄캄한 어둠의 영역이라고 먼저 강조하는 것인가?

태초의 천지창조 때 어둠이 먼저 있었음을, 따라서 그 어둠, 캄캄한 곳에서 ‘공중’이 생겨났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적 표현에 대해 어떤 과학자도 더 나은 합리적 주장을 하기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공중에 어둠만이 영원히 존재했다면 누가 그것이 어둠인줄 알겠는가? 어둠만 존재하고 ‘나’라는 존재, ‘우리’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공중이 있었음을 누가 알렸겠는가?

시는 그 시간을 일컬어 “나 없었고 나 없을 가없는 시간”이라고 지칭하므로 ‘가없는 시간 동안 어둠이 존재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어둠의 존재를 만상에 선포하는 존재가 나타났음을 “빛이여”하고 외침으로 공중의 영역을 선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어둠과 빛이 존재하는 ‘공중’이라는 곳에 우리가 살아 있어 “기쁨이여”하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3연에서는 공중을 채우고 있는 다른 존재를 밝히고 있다. 공중은 비어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것은 ‘빛’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2연에서 어둠의 존재를 밝혀준 태초적 빛과는 다른 빛을 말하는 것 같다.

“태양이 공중을 채우는 순간만이 생이 아니다”라는 행간에서 물리적 빛이 아닌 또 다른 빛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짧음이여, 빛의 빛이여”라고 함으로 삶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빛과 빛의 반사체들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그것들을 통칭하여 다음 행은 “그러므로 이 빛은 幻, 환이 늘 공중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미약한 우리가 공중 사이에 존재하며 느끼는 모든 현상들, 무수한 미혹과 신비롭게 여겨지는 현상과 원치 않아도 다가오는 숙명 같은 것들이 환(幻)이라는 존재임을 시인은 명명하고 있다.

그러나 “목을 최대치로 젖히는 순간 그어진다.”는 신체적 공중의 경계도 신체에 이상이 왔을 때는 바뀔 수 있다. “몸 아파 자리에 누워보니/ 누운 자리가 바로 공중”임을 알게 될 때, 삶과 빛만이 평등이 아니고 ‘죽음과 어둠이 평등’임을 깨닫게 된다.

“공중으로 바람이 불어오고 구름이” 지나갈 때, “부딪칠 것 없이는 저를 드러낼 수 없는 바람”이 공중으로 채워질 때, 그 무한의 포용 공간이 “환(幻)의 공중”임을 겸허히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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