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53)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방, 방
[김필영 시문학 칼럼](53)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방, 방
  • 뉴스N제주
  • 승인 2023.07.15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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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문인수 시집 , 배꼽 72쪽 : 창비시선 286) 방, 방 감상평 : 김필영(시인)

방, 방

문인수

‘잠만 잘 분’
손바닥만한 방(榜)이 또
그 집
쪽방, 쪽문 바깥쪽에 하얗게 나붙었다.
오늘 아침,
반쯤 떨어져 바람에
팔락,
팔락거리는 거 봤다.
그가 사람들과 헤어져 밤늦게 돌아온 방이다.
문을 따니 방금 누가 문 따준 방이다.
불을 켜니 방금 누가 불 켠 방이다. 방금 누가 환하게 느낀 방,
입이 잔뜩 나온 불행이 주리를 트는 방이다. 불을 끄니
방금 누가 불 끈 방이다. 방금 누가 깜깜하게 느낀 방,
돌아누우니 누가 또 돌아눕는 방이다.
마음과 몸이
돌아 돌아눕는 방.
자전(自轉), 자전,
날개를 얻었을까 몰아치는 한파,
인파 속에서 자꾸
팔락,
팔락거린다. 청산 자러 가는
저, 익명의 겨울나비.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사람의 굴(窟), 방(房), 방(榜)』

인간은 방(房)을 만드는 존재다. 어떤 형태로든 방은 사람이 존재의 거처이다. 방에서 태어나 방에서 자라고, 자기만의 방을 구하기 위해 일하고, 방을 구하기 위해 세상과 싸우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방에서 휴식한다.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아름답게 간직하고픈 사랑하고, 기억이 저물어가고 피골이 쪼그라들면 방에서 앓다 방에서 눈을 감는다. 방을 향한 삶의 치열함이 투쟁처럼 느껴지는 요즈음, 문인수 시인의 詩窓 걸린 “방(房), 방(榜)”을 들여다본다.

어둠이 슬그머니 거리의 지붕 위로 내려올 때, 돌아갈 방 한 칸 없는 사람들에겐 ‘잠만 잘 수 있는 방’도 절실하다. 시의 첫 행은 그들에게 하얀 손을 내미는 초대로 시작된다. “잠만 잘 분”이란 “손바닥만 한 방(榜)”이 그것이다. “쪽방, 쪽문 바깥쪽에 하얗게 나붙”어 “반쯤 떨어져 바람에 팔락, 팔락거리는” 방(榜), 문패도 아닌 그 차갑고 얄팍한 것이 여우가 머리 둘 굴을 찾아오듯 방을 찾아 돌아오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요즘의 양옥으로 바뀌기 전 대가족제도였던 우리주택의 공간은 방을 중심으로 내부의 공간 건물이 이루어졌다. 안방·건넌방·사랑방 등은 낮의 활동에서부터 밤에 잠을 자는 방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식사·거실·응접실·침실의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였다. 방의 바닥구조면으로는 온돌구조의 온돌방, 나무널판으로 된 마루방·대청, 흙바닥으로 된 부엌이나 광이 있었다. 위치에 따라서는 건넌방·아랫방·윗방·뒷방·샛방·문간방·행랑방 등으로 구분되었다.

‘잠만 잘 방’이란 어떤 방인가? 2연을 보면 “그가 사람들과 헤어져 밤늦게 돌아온 방, 문을 따니 방금 누가 문 따준 방, 불을 켜니 방금 누가 불 켠 방, 방금 누가 환하게 느낀 방, 입이 잔뜩 나온 불행이 주리를 트는 방, 불을 끄니 방금 누가 불 끈 방, 방금 누가 깜깜하게 느낀 방”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수돗물 자리끼도 없는 방, 차 한 잔 끓이거나 라면 한 개 삶을 불도 없는 방, 어떤 방이 이보다 차가울 까? 몸만 추운 것이 아니라 “돌아누우니 누가 또 돌아눕는 방, 마음과 몸이 돌아 돌아눕는 방.” 내 곁에 또 하나의 내가 있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고뇌하는 영혼마저 추위에 떠는 추운 방이다.

그런 방(房)을 알리는 방(榜)이 뜯겨 나가지 않고 마지막 연에 팔락이는 이유는 무얼까. 어쩌면 ‘잠만 잘 방’의 월세도 밀린 방일 수 있다. “몰아치는 한파, 인파 속에서” 날개를 얻었는지 “청산 자러 가는 익명의 겨울나비처럼 팔락이고 있다.” 그러나 ‘방세’를 낼 사람이 나타난다면 내일이라도 쫓겨날 ‘잠만 잘 방’으로, 입이 잔뜩 나온 불행이 주리를 트는 방을 찾아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 방에 아직 우리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생명의 숨결이 그 점에 있고 사람의 냄새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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