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4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허공의 벽
[김필영 시문학 칼럼](4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허공의 벽
  • 뉴스N제주
  • 승인 2023.06.1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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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김동수 시집, 그림자 산책『미당문학사』, 30쪽, 허공의 벽

허공의 벽

김동수

허공에도 벽은 있다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도 벽은 있다
살아 있음이 벽이고 허공이다
겨울을 지나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얼굴을 내민 여린 새싹들도
시방 저 무거운 허공을
밀어올리고 있는 중이다
온 힘 다해 그의 전 생애를 걸고
땅을 박차 일어서고 있는 중이다
초원에서 갓 태어난
누우떼 새끼들도
포식자들의 피 냄새를
온 몸으로 맞서
그의 전 생명줄
허공의 벽을 밀어 올리고 있다
두려움 없는 생이 어디 있으랴
살아 있음이 벽이고 허공이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살아있는 존재의 숙명적 항체를 통찰한 우주론적 詩學』

허공(虛空)은 사전적 의미로는‘텅 빈 공중’이며, 거지중천(居之中天),공명(空冥),공중(空中),요확(蓼廓) 등 유사의미로 인식된다. 종교[불교]적 해석으로는‘다른 것을 막지 아니하고 다른 것에 막히지도 아니하며, 물(物)과 심(心)의 모든 법을 받아들이는 본체’를 뜻한다. 그런데 그 허공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김동수 시인의 시선(詩線)을 따라 허공을 탐색해본다.

망원경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가시권 내의 허공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무수하다. 대기권 밖의 광활한 공간의 은하와 뭇별들, 태양계의 행성들은 신비롭다. 지구의 대기권 내 땅과 하늘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도 실로 무한하다.

보이지 않으나 분명이 존재하는 공기나 각종 전파, 공기 속에 서식하는 세균 등과 눈으로 볼 수 있는 구름이나, 안개, 흙에 뿌리를 박고 선 온갖 초목들, 허공을 날아가는 조류 등도 그 실존의 근원을 헤아리기엔 인간의 학문의 깊이가 척박하다. 시는 굵은 획으로 그 허공에서‘벽’이란 화두를 제시한다.

첫 행은“허공에도 벽은 있다.”라고 시작된다. 가시적으로 빈 공간에 화자는 ‘벽’이 존재함을 알리며, 심지어“하늘을 나는 새들에게도 벽은 있다”고 주장한다. 그 벽은 어떤 벽일까? 화자는 망설임 없이 바로 다음 행에 “살아 있음이 벽이고 허공이다.”라고 알려준다. 이 표현 그대로라면 ‘벽’과 ‘허공’은 이명 동의어인 셈이다.

화자는 허공 가운데 또 다른 사물을 소개한다. 그 사물은 허공이라는 광활한 존재와 대조하여 너무나 작은“겨울을 지나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얼굴을 내민 여린 새싹”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발견(주장)이 펼쳐진다. 새싹이“시방 저 무거운 허공을/ 밀어올리고 있는 중이다.”라는 초월적인 묘사는 놀랍다.

시각적 범위에서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새싹’과 ‘허공’의 힘의 대치상황은 우주론적 시각(詩覺)이 아닌 지상에 발표된 지식과 학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어지는 행간에서 화자는 새싹의 웅거(雄據)를 “온 힘 다해 그의 전 생애를 걸고/ 땅을 박차 일어서고 있는 중이다.”라고 함으로 생(生)이라는 거대한 사유를 ‘허공을 밀어 올리는 새싹의 존재’ 즉 ‘허공’이라는 ‘벽’을 밀어 올리며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생명의 존재에 대한 웅대한 의미를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새싹과 허공의 대조법은 ‘유한과 무한의 격차’였다면 이제 시는 또 다른 사물을 허공의 공간에 대치시킴으로 독자의 심장을 두드린다. “초원에서 갓 태어난/ 누우떼 새끼들도/ 포식자들의 피 냄새를/ 온 몸으로 맞서”는 장면을 행간의 무대에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극한의 대치에 대한 의문 역시 다음 행간에 “그의 전 생명줄/ 허공의 벽을 밀어 올리고 있다.”고 함으로 ‘갓 태어난 누우떼 새끼와 포식자인 맹수의 대조를 통해 약육강식이라는 자연계에서의 ‘생명과 죽음’이라는 극한적 대치상황이 ‘허공의 벽’을 밀어 올려야 하는 살아있는 존재의 숙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마지막 행간에 경전의 한 구절 같은 “두려움 없는 생이 어디 있으랴”라는 영탄조의 자문은 살아있는 존재가 지녀야할 기본덕목인 겸손과 분수를 알려준다. “살아 있음이 벽이고 허공이다.”라는 결구의 ‘벽’과 ‘허공’은 살아있는 존재에게 숙명적인 ‘항체’임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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