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54)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빈집
[김필영 시문학 칼럼](54)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빈집
  • 뉴스N제주
  • 승인 2023.07.2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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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기형도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80, 입속의 검은 잎, 81쪽, 빈집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사랑의 상실, 고독한 시간들의 폐쇄로 축조된 빈집』

사람은 자신의 피와 살로 길러준 모태(母胎)와 이별하지 않고서는 세상에 나올 수 없다. 우주에서 가장 지고지순한 사랑도 어머니를 떠나야 하는 이별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별의 아픔을 숙명적으로 맞아야 하기에 호흡을 열리는 순간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닐까. 기형도 시인이 빚은 이별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 사랑과 함께했던 존재들과 고독한 시간들의 폐쇄를 통해 축조된‘빈집’을 들여다본다.

첫 연은“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되뇌는 고백으로 시작된다. 사랑을 잃은 순간에 편지를 쓸 수는 없으므로, 이 편지는 사랑을 상실한 후 비로소 사랑이 떠나갔음을 온 영혼으로 실감한 후에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며 유서 같은 편지를 쓰고 있음으로 느껴진다.

2연 맨 먼저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라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밤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이 밤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날의 밤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밤들은 진정 짧았을 것이다.

그 밤들은 ‘설레는 가슴으로 밀어를 나누던 밤이었을 것이며, 숨소리마저 크게만 느껴지는 밤이었을 것이다. 불화살처럼 격정으로 달려가는 밤이었을 것이며, 좀 더 오래 있고 싶지만 심장의 박동처럼 빨리 아침이 밝아왔을 것이다.

2연 2행부터의 작별을 고하는 존재들인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시간에 존재했던 것들이 아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랑을 포기 하지 않고 기다리던 길고 긴 시간들과 함께하며 고독한 영혼을 위로해주던 존재들로 다가온다.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은 어떤 안개인가? 봄이나 가을안개보다 겨울안개는 더 차갑고 축축한 촉각으로 느껴지는 안개일 것이다.

낮보다 밤이 긴만큼 비산되지 않고 낮게 깔려 거리와 산야를 헤매는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안개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어 기다림의 시야를 가늠할 수 없는 길고 긴 겨울밤의 안개일 것이다. 그런 밤 가물가물 제 몸을 태우며 밤을 밝히는 ‘촛불’이 화자의 마음을 알 리가 없다.

오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시간, 더는 올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되었을 때 마지막 편지를 써야 하는 시간을 기다린 ‘흰 종이들’은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살아갈 수 없음에 삶을 접으려고 망설이던 시간, 흐르는 눈물은 끝없는 강을 이루었을 것이다. 이제 사랑의 힘으로 갖을 수 있었던 열망들도 사랑을 잃었을 때 더는 내 것이 아니므로 작별을 고하고자 한다.

화자는 사랑이 돌아오기를 고독하게 기다리며 함께 해온 존재들과 작별을 고하고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문을 잠”근다. 그리고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라고 편지를 맺는다. 사랑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빈집은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문을 잠근다'는 것은, '내 사랑'으로 비롯된 소중한 생을 가둔다는 것이고, 그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잠금이자 감금일 수 있다. 사랑으로 인해 삶의 치열한 열망을 갖을 수 있기에, 사랑의 상실은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시인은 절망적인 고백을 통해 세상의 사랑을 앓는 모든 이들은 더는 고통스러운 사랑을 앓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폐쇄와 단절로 축조된 ‘빈집’이 사랑이 말라가는 암울한 세계를 환기시키기를 바라기에 시인 스스로 ‘빈집(棺)’에 누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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