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59)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아름다움에 대하여
[김필영 시문학 칼럼](59)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아름다움에 대하여
  • 뉴스N제주
  • 승인 2023.08.2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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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윤제림 시,『시산맥』30. 2017년 여름vol. 81쪽, 아름다움에 대하여

아름다움에 대하여

윤제림

내 심장을 꿰뚫을 수도 있었을, 화살 하나가
종잇장 하나를 매달고 장대(將臺) 기둥에 날아와 꽂혔다
적장의 편지였다
역관(譯官)을 불러 읽어보라 했다.
수레바퀴만한 달이 성곽을 타고 넘어가는 봄밤이오
오늘도 나는 변복을 하고, 동서남북을 두루 살피고
돌아와 이제 막 저녁을 먹었다오
망루며 포대며 당최 치고 때릴 데가 없더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성에 이미 무릎을 꿇었소
날 밝으면, 성문 앞 팽나무 그늘에서
바둑이나 한판 둡시다, 우리
내가 지면 조용히 물러가리다
혹여, 내가 그대를 이긴다면
어찌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성을 쌓을 수 있는지,
기술이나 두어 가지 일러주지 않겠소?

뉴스N제주가 주최한 '나의 시 나의 인생' 문학특강 가을편이 19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뉴스N제주 스타디움(제주시 중앙로 253, 5층)에서 김필영 시인이자 평론가를 초대해 특강을 가졌다.
김필영 시인

『평화를 조성하게 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정원에 핀 아름다운 꽃들을 보면 그 꽃을 가꾼 이의 고운 마음이 전해져 평화로워진다. 허나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려는 이가 있고, 그런 꽃을 꺾어가려는 이가 있다.

지구상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들이 전쟁을 통해 훼손되었다. 남의 아름다운 것을 빼앗으려는 데서 지구상엔 수많은 전쟁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아름다움을 대할 때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윤제림 시인의 시를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앞에 진정한 용기로 자신을 드러낸 한 인간을 만나본다.

화자가 장군으로 등장하는 첫 연은 전쟁야화와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군대의 지휘자인 화자가 장대(將臺)에 올라 전황을 살피고 있던 차에 섬뜩한 일이 벌어진다.

“내 심장을 꿰뚫을 수도 있었을, 화살 하나가 종잇장 하나를 매달고 장대(將臺) 기둥에 날아와 꽂혔다.”는 표현으로 보아, 적이 성곽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 와서 쏜 화살이 장대기둥에 박혔으니 자칫 화살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섬뜩한 일일뿐만 아니라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케 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것은 적장의 편지를 매단 화살이었다. 역관(譯官)을 통해 읽어보도록 한 것으로 보아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민족간의 전쟁인 것을 알 수 있다.

2연부터 소개되는 적장의 편지는 목숨을 걸고 승패를 다투는 전쟁터에서의 적장이 보내온 편지라기보다 오랜 우정을 다져온 친구가 보낸 편지 같은 내용이 펼쳐진다.

“수레바퀴만한 달이 성곽을 타고 넘어가는 봄밤”이라는 것으로 전쟁 시기는 봄철이었음을 알게 하는데, “오늘도 나는 변복을 하고, 동서남북을 두루 살피고 돌아와 이제 막 저녁을 먹었다오.”라는 표현은 이미 수일 전에 성 밖의 일반백성이 사는 모든 지역은 적군이 점령하였고 남은 곳은 성곽으로 방비된 성만 점령하지 않은 상태임을 알게 한다.

변복을 하고, 동서남북을 두루 살피는 적장의 행위는 전쟁에서의 승기를 잡은 여유 있는 태도라고 볼 때, 이런 전황이라면 성 내부의 군수물자의 보유량에 따라 버틸 수 있는 기간이 정해진 최악의 상황일 수 있다.

그러나 적장의 편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망루며 포대며 당최 치고 때릴 데가 없”으며 “나는 이 아름다운 성에 이미 무릎을 꿇었소.”라고 마치 항복문과 같은 종전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연에서는 “날 밝으면, 성문 앞 팽나무 그늘에서 바둑이나 한판 둡시다, 우리”라는 아주 낭만적인 종전조건을 제시한다.

세상 어느 전쟁이 이러한 방법으로 승패를 가릴 수 있을까? 항복하지 않고 항전하려는 장수를 유인하여 제거하고 승리를 취하려는 계략인지 행간에서 알 수 없다. 그러나 마지막연의 “내가 지면 조용히 물러가리다.”라고 바둑의 승패를 통해 철군의사를 전하는 적장의 표현은 파격적이다.

그런데 이긴다 하더라고 정복하지 않고 아름다운 성을 쌓는 기술을 조금 배워가겠다는 제안은 충격적이다. 승리를 목표로 목숨을 건 전쟁터에서 한 인간으로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대하는 태도에 가슴 먹먹하다.

적장이 변복을 하고 동서남북을 두루 살피면서 시각적으로 본 아름다움만으로 이토록 감동적인 드라마가 펼쳐졌을까? 어쩌면 적장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꾸려는 온 백성의 평화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읽어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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