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6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풀
[김필영 시문학 칼럼](6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풀
  • 뉴스N제주
  • 승인 2023.09.1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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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문학과지성 시인선 417) 40~41쪽, 풀

김기택

콘크리트 바닥이 금이 가는 까닭은
단단한 등딱지가 쩌억, 쩍 갈라지는 까닭은
밑에서 쉬지 않고 들이받는 머리통들이 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가 땅을 덮고 누르기 전
그곳에 먼저 살던 원주민이 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밑에 깔린 수많은 물줄기들이
봄이 오면 깨어나
밖으로 솟구쳐 나오려다 목이 꺾여 죽으면
새 물줄기들이 몰려와 다시 들이받기 때문이다.
물렁물렁한 물대가리들이 치받는 힘에
딱딱한 콘크리트가 간지러워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바위를 뚫는 물방울의 시간이 솟구쳐
콘크리트가 들썩거리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갈라진 자리마다
푸른 물줄기가 새어 나온다.
물줄기는 분수처럼 솟구쳐 포물선을 그리지만
땅바닥에 뚝뚝 떨어지지는 않는다.
쉬지 않고 흔들려도 떨어지지는 않는다.
포물선의 궤적을 따라
출렁거리는 푸른 물이 빳빳하게 날을 세운다.
약한 바람에도 눕고 강한 바람에도 일어난다.
포물선은 길고 넓게 자라난다.
풀줄기가 굵어지는 그만큼 콘크리트는 더 벌어진다.
연하고 가느다란 풀뿌리들이
콘크리트 속에 빨대처럼 박히자
커다란 돌덩이리가 쭉쭉 콜라처럼 빨려 들어간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소멸되지 않는 생명력, 풀(草)의 시학』

봄을 알리는 전령들 중 가장 빠른 것은 어떤 것일까. 봄바람, 봄비, 봄처녀도 있겠으나 풀(草)이라면 어떠한가.

하찮아 뵈는 풀은 그 수효를 다 헤아릴 수 없으나 대지를 제 몸으로 덮어 흙이 마르지 않도록 보호하며 온갖 풀벌레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처를 제공해주며 스스로를 바쳐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나무들이 자라게 한다.

한 때 풀은 위력 있는 권력에 짓밟혔던 시대의 우리들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러한‘풀’에 대해 김기택 시인은 어떤 사유로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위 시의 행간에서는‘풀’을 제목 외엔 시어로는 채용하지 않고 있다. 행간의 서두에 “콘크리트 바닥이 쩌억, 쩍 갈라지는 까닭은 밑에서 쉬지 않고 들이받는 머리통들이 있기 때문이”라고‘풀“의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단단한 콘크리트가 갈라지는 배후에 연약한 풀들의‘머리통’들이 있다는 발상은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발상이다.

5행으로 들어서면 그 연약한 풀이 콘크리트를 들이 받는 이유와 콘크리트가 갈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전개된다. “콘크리트가 땅을 덮고 누르기 전 그곳에 먼저 살던 원주민이 있기 때문이다”는 묘사는 마치 서부영화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지키려는 인디언과 정복하여 개발하려는 개척자들과의 전쟁이 연상된다.

“봄이 오면 깨어나 밖으로 솟구쳐 나오려다 목이 꺾여 죽으면 새물줄기들이 몰려와 다시 들이받기 때문이다”는 묘사에서 “들이받기 때문이다”라는 필사적인 묘사는 황동 범종을 머리로 들이 받고 죽어도 종을 울리려는 새들이 연상되기도 하고, 총이라는 신무기로 무자비하게 짓밟고 들어오는 침략자들로부터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죽창으로 맞서던 임진왜란 때의 이 땅의 민초들이 생각나기도 하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다.

비록 목이 꺾여 죽어도 끊임없이 치받는 풀의 강력한 솟구침과“딱딱한 콘크리트가 간지러워 견딜 수 없”도록 하는 유연한 솟구침의 강온 양동작전은 풀이 얼마나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 지상으로 나와 우리의 눈앞에 초록으로 빛날 수 있는지를 전략적인 면으로 느껴지는 치밀한 묘사이다.

2연부터는 바위를 뚫던 물방울의 솟구침으로 인하여 “콘크리트가 갈라진 자리마다 푸른 물줄기가 새어 나온다”라고, 단단한 콘크리트와 물렁한‘푸른 물줄기’를 대비함은 콘크리트로 상징되는 도시문명의 세계에서 소멸하지 않는 생명력으로서의 풀을 그리므로 암울한 시대에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생동적인 묘사이다.

“분수처럼 솟구쳐 포물선을 그리며”“쉬지 않고 흔들려도 떨어지지 않는다. 포물선의 궤적을 따라 출렁거리는 푸른 물이 빳빳하게 날을 세운다.”는 풀의 묘사에서 이제 수직적 운동에서 입체적 운동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게 한다.

“포물선은 더 넓게 자라”“풀줄기가 굵어지는 만큼 콘크리트는 더 넓어진다.”는 묘사에서 그 넓어진 것은 사실 작은 ‘틈’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작은 틈이 우리에게 큰 지진이 일어난 만큼의 진동처럼 우리의 가슴을 흔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연하고 가느다란 풀들이 콘크리트 속에 빨대처럼 박히자 커다란 돌덩이”도 움직일 수 있다는 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인 것이다.

시는 지표를 쩍, 가른 풀의 거대한 힘의 원천을 말하지 않는다. 무수한 풀의 역동적 운동을 시어를 통해 끈질기게 질문함으로 우리의 가슴에도 푸른 풀이 돋아나 출렁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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