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60)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안개
[김필영 시문학 칼럼](60)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안개
  • 뉴스N제주
  • 승인 2023.09.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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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함민복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2014 <창비시선 357> 80쪽)

안개

함민복

안개는 풍경을 지우며
풍경을 그린다
안개는 건물을 지워
건물이 없던 시절을 그려놓는다
안개는 나무를 지워
무심히 지나쳐 보지 못하던 나무를 그려보게 한다
안개는 달리는 자동차와
달리는 자동차 소리를 나누어놓는다
안개는 사방 숨은 거미줄을 색출한다
부드러운 감옥 안개에 갇히면 보임의 세계에서 해방된다
시선의 밀어냄을 흡수로 맞서며
눈동자에 겸손 축여주는 안개의 벽
안개는 물의 침묵이다
안개는 침묵의 꽃이다

뉴스N제주가 주최한 '나의 시 나의 인생' 문학특강 가을편이 19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뉴스N제주 스타디움(제주시 중앙로 253, 5층)에서 김필영 시인이자 평론가를 초대해 특강을 가졌다.
김필영 시인

『보이지 않는 베일 속 사물을 투시하는 눈(目)』

무언가에 가려진 모습은 신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려짐 너머 존재하는 모습에 대해 동경하고 그것을 보려는 본능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 미소 짓는 입술 사이로 보이는 덧니, 부르카(burka) 니캅(niqab) 차도르(chador) 히잡(hijab)등의 베일에 가려진 이슬람 여인의 모습, 안개에 가린 풍경, 아니 안개에 지워진 풍경은 어떤가. 안개 속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음도 살아있다는 커다란 증거 이다. 함민복 시인의 시에서‘안개’라는“베일 속 사물을 투시해보는 숨바꼭질에 ‘술래’가 되어본다.

안개는 대기 중에 응결핵이 떠있고 증기압이 포화증기압에 거의 같아질 때 수증기가 응결하여 생기는 현상이다. 안개에 지워진 풍경을 왜 바라보는가? 이 질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에 바라보는 것이다’라고하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까. 시는 행간마다 그 점을 투시하여 흥미롭게 밝혀준다.

시의 첫 행은 시각적으로 안개를 본 관점이다. 육안으로는 구별할 수 없으나 상대습도가 100%에 가까운 매우 작은 물방울이 대기 중에 떠있는 안개는 바람에 흐르며 “풍경을 지운다” 그러나 그 “지움”이라는 안개의 상태에 나타난 보이지 않는 그 자체로 다른 “풍경을 그린다.”

2~3연에서 안개를 보는 시인의 눈은 시각적 관점을 넘어선다. “건물을 지워 건물이 없던 시절을 그려놓는다. 나무를 지워 무심히 지나쳐 보지 못하던 나무를 그려보게 한다.”라는 묘사는 유(有)와 무(無)의 대조적 관점을 대비하여 시각적 관점과 공간적 관점에 더하여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관점을 느끼게 한다.

4연에서는 “자동차와 달리는 자동차 소리를 나누어 놓”으므로 청각적 감각에도 안개는 위상을 드러낸다. 5연에서는 안개가 만들어주는 심리적 영향은 마음에도 눈을 만들어주는 것을 본다.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사람의 또 하나의 눈이 태동하게 되어 지극히 작은 것들을 발굴하는 내면적 보임의 세계를 열어준다. “숨은 거미줄“에 잘려 영롱하게 이슬로 맺힌 안개는 가슴 서늘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부드러운 감옥 안개에 갇히면 보임의 세계에서 해방 되”듯 보이는 것으로 탐욕이 자라는 시대에 사람이 만든 현란하게 보이는 세계의 시각적 피곤함에서 잠시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안개가 “시선을 밀어내는 벽“으로 느껴질 때 안개 속을 눈을 뜨고 걸어볼 일이다. 안개에 젖어 촉촉이 젖어오는 눈동자로 살아있음이 감사히 느껴질 때 겸손해 질 것 같다. 우리의 몸처럼 안개도 물로 만들어졌기에 안개의 침묵 속에서도 거부감 없이 숨 쉴 수 있다. 안개가 물의 침묵으로 피워낸 꽃이듯 우리가 침묵하고 시를 쓰는 마음으로 조용히 안개를 바라볼 때 우리도 안개처럼 한 송이 침묵의 꽃이 된다는 것은 시는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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