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64)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가로 몸 누이는 것들
[김필영 시문학 칼럼](64)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가로 몸 누이는 것들
  • 뉴스N제주
  • 승인 2023.09.3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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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노유섭 시집, 햇빛 피리소리에 어깨 겯고『시문학사』발행, 103쪽, 가로 몸 누이는 것들

가로 몸 누이는 것들

노유섭

가로 몸 누이는 것들은
파도라 한다
가로 몸 누이는 것들은
초원의 푸른 풀밭이라 한다
한 생의 모든 흔들리는 기억들이
이렇게 한데 모여
낮은 곳으로 조용히 흔들리는 것이어서
가을 강 울음인양
아래로 아래로 흘려보내는 것이라 한다
햇빛 푸르른 날
그 아픈 물무늬 하나 하나
거울로 비춰 빚질 해보면
굽이마다 꺼이꺼이 소리치며 우짖던 것들이
가라앉고 가라앉아 형체도 없이 응고된 진액이
가을 햇빛 피리소리에 터져 올라
이리도 푸르고 푸른 물결로 흔들리는 것이라 한다
더러는 풀꽃으로 피어나는 합창이라 한다.

뉴스N제주가 주최한 '나의 시 나의 인생' 문학특강 가을편이 19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뉴스N제주 스타디움(제주시 중앙로 253, 5층)에서 김필영 시인이자 평론가를 초대해 특강을 가졌다.
김필영 시인,평론가

『낮은 풍경들, 자연의 법칙으로 일깨워주는 겸손한 삶의 가치』

사물은 산이나 나무처럼 평생 서있는 것들이 있고, 바다나 평야처럼 평생을 누워있는 것들이 있다.

사람은 활동할 때는 서고 휴식하거나 잠을 잘 때는 눕는다. 자연계에 사물의 서있고 누워 있음이 자연현상일 뿐이라고 우리는 그냥 스쳐버린 일이었다. 그런데 가로 누워있는 것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바라본 눈이 있다.

바로 시인의 눈이다. 노유섭 시인의 시안(詩眼)을 통해‘가로 몸 누이는 것들’을 새삼스럽게 들여다본다.

시는 도입부에‘가로 몸 누이는 것들’두 가지 사물이 등장한다. 파도와 풀밭이 그들이다.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들 중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파도와 풀밭이 시를 빚는 재료라니 평범한 사물을 시의 재료로 삼은 점이 오히려 흥미롭다. 안정감을 갖고 가까이 다가가기 좋은 낮은 풍경들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바다와 평야를 떠올려진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바다와 평원을 다루지 않고 그 위에 존재하는 파도와 풀밭에 주목하여 행간에 끌어들인 것이다. 바다와 평야라는 정적(靜的)인 존재보다 그 위에 존재하는 파도와 풀밭이라는 동적(動的)인 존재를 불러들이는 기지가 신선하다.

파도와 풀밭이 몸을 가로 누이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화자는 두 사물의 태동원인을 밝히듯, “한 생의 모든 흔들리는 기억들이/ 이렇게 한데 모여/ 낮은 곳으로 조용히 흔들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 생의 모든 흔들리는 기억들”이란 표현은 파도와 풀밭이라는 주체가 죽어있는 것이 아닌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동적인 존재임을 알게 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조용히 흔들리는’ 행위는 무엇인가? 파도와 풀밭의 ‘낮은 곳으로 조용히 흔들리는’ 행위에 자연계의 순환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 순환의 행위에 “아래로 아래로 흘려보내는 것이라 한다.”는 표현에는 또한 자연계의 중력의 법칙을 암시하고 있다. 그 순환과 중력의 과정의 자연행위에 ‘가을 강 울음인양’이라는 감정의 행위가 왜 들어 있는가? ‘가을’은 봄과 여름에서 이어지는 계절의 여정이다. 계절의 변화를 겪으며 강은 가뭄의 목마름과 홍수의 격랑을 겪으며 흘러갔으리라.

우리의 삶도 그런 여정과 같이 ‘가을 강’처럼 흘러가는 것이기에 강물이 아래로 아래로 흐르며 바다로 가면서 중력의 법칙이 진행되는 과정에 저항을 겪으며 소용돌이치고 섞이며 흘러야 하는 고통과 같은 흐름이 우리의 생에도 똑같이 수반되었음을 은유하고 있다.

가로 몸을 누이고 낮은 자세로 존재하는 파도와 풀밭처럼 우리가 낮은 자세로 순리의 법칙에 따라 고통을 참아내며 존재해야 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 시를 마치는 것은 아쉬움이 있다.

그 순리로 ‘몸을 가로 누이는 것들’의 원인행위에 대한 사유를 밝혀내야 한다. 그 규명을 위해 화자는 “햇빛 푸르른 날/ 그 아픈 물무늬 하나 하나/ 거울로 비춰 빚질 해” 본다. ‘거울로 빚질’하는 행위를 통해 화자는 파도와 풀밭이자 우리의 삶을 반추한다. 우리의 생이 “굽이마다 꺼이꺼이 소리치며 우짖던 것들이/ 가라앉고 가라앉아 형체도 없이 응고된 진액이/ 가을 햇빛 피리소리에 터져 올라/ 푸르고 푸른 물결로 흔들리는 것”임을 알게 한다.

우리의 생이 우짖으며 흔들릴지라도 “더러는 풀꽃으로 피어나는 합창”을 하듯 낮은 자세로 서로 그러안고 꿈꿀 수 있기에 파도와 풀밭처럼 푸르게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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