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67)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그믐달 마돈나
[김필영 시문학 칼럼](67)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그믐달 마돈나
  • 뉴스N제주
  • 승인 2023.10.2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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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위상진 시집, 그믐달 마돈나.『지혜사랑』067. 14쪽. 그믐달 마돈나

그믐달 마돈나

위 상 진

밤의 맥박은

링거 줄에 역류하는 피

천장 네 모퉁이에 어둠이 잘려있다

 

터질 듯 부풀어오르는

역청 같은 기침

시계가 없는 그녀가

오른쪽 손목을 두드린다

 

무릎 양말 냄새가 나는

여기는 먼 나라의 계절이 산다

물속에 잠긴 흉상 같은

 

이름표를 버린 침대시트

배추색 한 여자가 비상구로 사라진다

 

칼로 그어버린 수평선 너머

백색 카라 한 송이를 걸어두고

물에 넣은 양배추처럼

깨어나고 싶어

 

수직의 링거대에서

마지막 반사등이 꺼진다

커튼은 도청된 귀를 달고

오래 번창해 갈 것이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밤의 맥박을 계수하며 모체(母體)를 지키는 묵언의 기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그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면 무력감에 가슴 먹먹하다. 생로병사의 생을 피할 수 없는 우리가 부모의 분신으로 살면서 점점 연로해가는 모체(母體)를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할 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위상진 시인의 시를 통해 그 막막함을 극복하려는 기도 속으로 들어가 손을 모아본다.

시의 첫 연에 펼쳐진 공간은 병실풍경이다. “밤의 맥박은/ 링거 줄에 역류하는 피/ 천장 네 모퉁이에 어둠이 잘려있다”는 표현에서 화자는 병상 곁에서 간호하는 가족으로서 밤을 지새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밤의 맥박’을 감각기관으로 계수할 정도의 고요는 어떠한 고요인가? 시계의 초침소리와 환자의 숨소리마저 멈춘 적막의 극점을 은유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적막상황은“링거줄에 역류하는 피”처럼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 개선하고 싶은 불안한 심리상태를 말해준다. 그 불안한 마음을 어둠이 가라앉혀주지 않고 오히려 어둠이 병실을 향해 다가오다가 “천장 네 모퉁이에 어둠이 잘”린 병실이 밝게 조명된다.

둘째 연은, 화자가 밤을 지새우며 간호하는 병상의 존재를 알려준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역청 같은 기침”내뱉으며 고통의 밤을 보내는 자가“시계가 없는 그녀”라는 표현은 밤의 맥박을 계수하는 화자와는 대조적으로 시각적 감각에 둔감해진 연로한 화자의‘어머니’임을 가늠할 수 있다.

그 연로한 어머니가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해“오른쪽 손목을 두드린다.”호흡기관과 순환기관이 모두 원할 하지 못한 어머니를 지켜보는 딸의 심정은 어머니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고, 아무리 돕고 싶어도 개선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다.

3연은 어머니와 화자인 딸이 무력하게 공존하고 있는‘병원’이라는 공간의 밤을 묘사하고 있다. “무릎 양말 냄새가 나는/ 여기는 먼 나라의 계절이 산다.”는 표현에서 청량한 자연의 순환계가 막혀버린 통념적으로 상상이 불가한 다른 공간임을 알게 한다.

“물속에 잠긴 흉상 같은”공간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는‘인격의 자율성이 실종된 공간으로 비춰지는 병원의 밤풍경’으로 대체할 길 없는 극도의 불안한 심리를 가중시키고 있다.

4연에서“이름표를 버린 침대시트/ 배추색 한 여자가 비상구로 사라진다.”는 2행의 역동적 스케치는 짧지만 생의 무상함의 극치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녹색 작업복을 입은 야간 근무자가 빈 침대를 끌고 사라지는 풍경’을 통해 침대에 누워 있었을 환자가 유명을 달리하여 주인 잃은 빈 침대가 사라지는 장면은 생과 사가 교차되는 황량한 장면이다.

5~6연 시의 결구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물속에 잠긴 흉상”의 모습의 존재에서 백색공간을 벗어나고자 기도하는 화자를 발견하게 된다. “칼로 그어버린 수평선 너머/ 백색 카라 한 송이를 걸어두고/ 물에 넣은 양배추처럼/ 깨어나”기를, 물 밖으로 꽃봉오리를 드러내는‘백색 카라 한 송이”가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마지막 행에 이르러「그믐달 마돈나」라는 존재가 달빛처럼 저린 가슴으로 스며든다. 음력 27일에서 28일 새벽녘에 잠시 보였다가 일출과 함께 사라지는 ‘그믐달’이, 바로 사그라진 달만큼 자신을 내어주신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병상에서“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역청 같은 기침”내뱉으며 저물어가는 우리의 모체, 그녀가 바로‘마돈나’, 우리의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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