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7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6
[김필영 시문학 칼럼](7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6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12.03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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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송시월 시집, B자 낙인. 예술가시선 03. 109쪽. 6, 감상평: 김필영

6

송 시월

이 깊은 동굴 끝에선 환웅이 기다릴까 하데스가 기다릴까

갈대줄기를 깍아 스틸루스(펜)를 만든 수메르인들은
왜 하필 달팽이 같은 6을 파피루스에다 그려놓고 그 안의
모래바람 속으로 들어가 “천재의 운행”이란 불가사의한
상품을 발견해 대상들에게 팔았을까

초여름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숲이 돌고 태양이 돌고
웅웅웅 이명이 돈다

돌고 돌아도 출구가 없는, 더욱 깊어지는 구름 속 분열하는
행성들 번쩍번쩍 햇살 피는 소리가 길이 될 것도 같은데
달팽이 뿔 하나가 툭 튀어나와 문고리가 되어줄 것도 같은데
나는 트리밍이 안되는 6이란 돌멩이 속에 여전히 갇혀 있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현실과 초월의 가교(架橋), 하이퍼적 사유』

우리가 걸어가는 생의 막다른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의 생은 연습이 없기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미로 찾기’의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제 미로 찾기의 동굴입구에 서있다. 선으로 묘사하면, 아라비아숫자 6의 시작점에 서있는 것이다. 송시월 시인이 숫자 6 속으로 들어가 사유한 현실과 초월의 하이퍼적 사유를 들여다본다.

먼저 붓을 들고 먹물을 적셔 숫자 6을 그려본다면, 얼핏 보면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6으로 동그랗게 말아 감긴 선이다. 그러나 붓이 시작한 점에서 하이퍼적 사유는 시작된다.

검은 선은 동굴로 은유된다. 그 동굴의 입구에서는“깊은 동굴 끝에 환웅이 기다릴”지,“하데스가 기다릴”지, 알 수 없다.‘환웅(桓雄)’은 단군의 아버지이니 사람의 길에 대업을 이룰 ‘생명을 얻게 됨’을 의미하는 현실이며, 하데스는‘영원한 멸망의 상징’인 죽음의 장소, 무덤이니 초월이다. 미력한 인간으로서는 생의 결과를 가늠할 수 없기에 극과 극의 숙명적 대칭은 유(有)와 무(無)의 대조적관계로서 하이적 묘사이다.

2연에서, 6은 수천세대를 거슬러 수메르인들의 시대까지 시공을 초월하여 여행한다. “달팽이 같은 6을 파피루스에다 그려놓고 그 안의 모래바람 속으로 들어가“천체의 운행”이란 불가사의한 상품을 발견해 대상들에게 팔았”다는 것은 6에 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수메르인들의 삶의 수단에서 6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은유한 것으로 보인다. 6은 60진법을 사용했던 수메르인들의 숫자의 체계로서 그들은 1시간을 60초로 계산하고 원의 각도를 360도로 측정했었다고 전해진다.

손가락 10개를 사용한 손가락셈 십진법을 초월하여‘두 손과 다섯 손가락을 사용하여 먼저 왼 손의 손가락을 펴 가며 1에서 5까지 세고, 6번째는 오른손의 손가락 하나를 펴서 6을 가리키는 계산식으로 이루어진 60진법이 이루어지므로 6의 가치로 그들의 삶의 관계가 이루어졌음이 아닐까.

3연에 이르러 다시 수천 년을 초월하여 현실로 되돌아와 6을 보면 왜“초여름이 빙글빙글 돌고, 숲이 돌고, 태양이 돌고, 웅웅웅 이명이”돌고 있는 것인가? 열두 달의 한 가운데 6번째 달을 맞아 봄이 가고 새 계절이 시작되고 있으니 초여름이 돌고 있는 것이며, 신록이 어깨를 뻗어 손에 손을 잡으니 강강수월래 하듯 숲이 돌고, 햇살이 가장 오래비추는 하지(夏至)가 들어있는 6월이기에 태양이 허공 중심으로 돌고, 짝짓기 하는 온갖 풀벌레소리에 웅웅웅 이명이 도는 것이리라.

6개의 다선구조이미지의 절반을 지나 동굴의 한 가운데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나아가야 할 출구는 있는 것인가. 4연의 묘사로는 희망이 희박하다.“돌고 돌아도 출구가 없는, 더욱 깊어지는 구름 속 분열하는 행성들 번쩍번쩍 햇살 피는 소리가 길이 될 것도 같은데”길이 보이지 않는다. 6의 꼭지처럼 솟은“달팽이 뿔 하나가 툭 튀어나와 문고리가 되어줄 것도 같은데 ”탈출할 문을 열지 못하고 그냥 6 속에 있다.

“트리밍이 안되는 6이란 돌멩이 속에 여전히 갇혀 있”는 이유는 그 굴속에 꿈(希望)이라는 허상이 포승줄처럼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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