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77)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그녀는 프로다
[김필영 시문학 칼럼](77)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그녀는 프로다
  • 뉴스N제주
  • 승인 2024.01.06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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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이기와 시,『두레문학』2017년 상반기. 130쪽(시 읽기), 그녀는 프로다

그녀는 프로다

이기와

수족관같이 좁고 어두운 지하실 단칸방

물갈이하지 않은 혼탁한 수질 속

지체 장애자인 그녀와 치매인 그녀의 어머니가 산다

그녀의 어머니가 투명 랩을 뜯지 않은 채

자장면 위에 장을 붓는 순간

단칸방은 이내 시커먼 바다로 번들거린다

치맛자락에 쏟아진 걸쭉한 바다를 치대며

단무지처럼 기억이 노란 어머니가

싱글싱글 웃는다

그러자 그녀의 삐뚜름히 돌아간 입에서도

찰진 반죽의 웃음이 쏟아진다

얼떨결에 멀쩡한 나도 따라 웃어보지만

내 웃음은 가짜, 속이 덜 익은 군만두

영 서툴다

그녀는 프로다

피할 수 없는 난감함을

웃음으로 커버하는 노련한 선수다

발가락에 들린 숟가락이 삐뚤빼뚤 입을 찾아가는 길

보기에 아슬아슬 멀고도 험하다

그러나 그녀는 프로다

불완전하면서 완전하다

외줄타기 곡예사처럼 조마조마함을 연출하지만

실수하는 일 없이 면발을 입으로 가져간다

형제나 이웃, 신의 가호도 없이

의연하면서도 정확하게 밥의 길을 찾는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어두운 아픔도 밝게 비춰내는 시안(詩眼), 시인의 용기』

일본여행을 갔을 때, 여러 장소에서 자주 장애인을 만날 수 있었다. ‘장애인이 참 많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것이 오해였음을 알게 되었다. 거리나 지하철 계단과 승강기 등 교통수단과 편의시설이 장애인들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배려했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쉽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음을 알았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장애인 스스로 숨어 있는 것인가? 이기와 시인이 용기 있게 밝혀준 장소로 들여다본다.

화자가 첫 연에 소개하는 곳은“수족관같이 좁고 어두운 지하실 단칸방”이다. “물갈이하지 않은 혼탁한 수질 속”같은 그곳에“지체 장애자인 그녀와 치매인 그녀의 어머니가 산다.”고 소개하고 있다.

지체 장애자인 그녀가 지하실 단칸방에 산다니, 스스로 계단을 올라올 수 없음이 자명한데,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간병할 사람이 아닌‘치매에 걸린 그녀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니, 언뜻 생각해도 그녀의 삶의 길이 꽉 막힌 절벽 앞에 선 느낌이다.

다음 연에는 모녀가 배달된 자장면을 먹으려하는 상황이 소개되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투명 랩을 뜯지 않은 채/ 자장면 위에 장을 붓는 순간/ 단칸방은 이내 시커먼 바다로 번들거린다.”는 표현은 돌발적 사고현장을 스케치한 것 같다.

치매인 그녀의 어머니가 지체장애자인 딸을 도우려고 서둘러 투명 랩을 뜯지 않은 자장면 그릇 위에 장을 부었든, 딸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자신의 배를 채우려고 치매 걸린 어머니가 생에 대한 치열한 본능으로 ‘밥’이라는 먹이를 취하려고 했든, 이 행간에서 펼쳐진 장면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안타깝고 가슴 먹먹하다. 그러나 어안이 벙벙하게 만드는 다음 장면은 이채롭다.

치매 어머니가 사고를 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치맛자락에 쏟아진 걸쭉한 바다를 치대며/ 단무지처럼 기억이 노란 어머니가/ 싱글싱글 웃”고 있다니, ‘웃음’이 기쁨과 즐거움의 발로에서 피우는 꽃이라 할 때, 치매 어머니는 무엇이 그리도 기쁘고 즐거운 것일까? 이때 더욱 놀랄 일이 벌어진다.

어머니의 그런 행동을 바라보던 지체장애인 딸, “그녀의 삐뚜름히 돌아간 입에서도/ 찰진 반죽의 웃음이 쏟아”지는 것이다. 그 장면을 지켜본 화자는 “얼떨결에... 따라 웃어보지만/ 내 웃음은 가짜, 속이 덜 익은 군만두/ 영 서툴다.”고 고백한다.

시의 종반부에서 화자는 지체 장애우에 대하여 “그녀는 프로”이며, “피할 수 없는 난감함을/ 웃음으로 커버하는 노련한 선수”라고, “발가락에 들린 숟가락이 삐뚤빼뚤 입을 찾아가는 길/ 보기에 아슬아슬 멀고도 험하”지만, “불완전하면서 완전하다”고 소개한다.

“외줄타기 곡예사처럼 조마조마함을 연출하지만/ 실수하는 일 없이 면발을 입으로 가져”가며 “... 신의 가호도 없이/ ... 정확하게 밥의 길을 찾는다.”고 증언한다. 그녀가 과연 프로인가?

프로는 자신의 행위와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이나 “발가락에 들린 숟가락이 삐뚤빼뚤 입을 찾아가는 길/ 보기에 아슬아슬 멀고도 험”한 그녀가 삶의 모든 일을 극복해 나갈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시인의 용기는 이처럼 비좁고 어두운 곳을 보고 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니라 시를 통해 용기 있게 어둠을 밝히는 데서 빛난다.

한 편의 시가 그녀를 계단아래 비좁은 지하실에서 움직임이 편리한 곳으로 옮길 수 없으나, 우리가 그녀보다 가진 것이 많지만 나눌 줄 모르고, 너무 나눈 게 없이 사는 아마추어가 아닌가,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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