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74)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어둠
[김필영 시문학 칼럼](74)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어둠
  • 뉴스N제주
  • 승인 2023.12.1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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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김용언 시집, 사막을 횡단하는 당나귀<인간과문학사 006>163쪽, 어둠

 

어둠

김용언

어둠과 친해지기 위해선 어둠이 되어야 했다
모든 생명은 쓰러지면서 바람이 되듯
나무들은 어둠 속에서 종일 느슨해졌던 뼈를 맞추고
물소리는 음치로 변했던 성대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어둠의 힘은 어둠 속에서 겨우 자리를 잡는다
어둠속에선 눈보다 귀다
풀벌레 소리를 투명하게 하고
바람이 몰고 다니는 씨앗들의 이야기에 날개를 달아 주고
드디어 어둠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는 물체의 벽을 무너뜨린다
손을 내밀면
어둠은 항상 눈썹에 매달려 있다
여름 날 숲길에서 만난 어둠은
나뭇잎 뒷면에서 반짝거리며
모든 생명을 어둠 밖으로 밀어낸다
어둠은 계곡 물소리도 토막을 내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흐르는 바람도 토막을 내고
동강난 소리들을
높이 높이 하늘로 날려 보낸다
어둠은 우리들과는 아주 먼 공간이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생명의 공간적 토양, 어둠의 시학』

지상의 가장 오래된 경전의 기록에‘어둠’을 물리적으로 언급한 것을 보면, 어둠은 빛이 있기 전, 땅이 형태가 없고 황량 했을 때 깊은 물 위에 있었다. 빛이 생겨난 후, 빛과 어둠으로 나누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관념적으로 불법이나 악을 상징하기도하는 어둠은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인가. 어둠을 입체적으로 사유한 김용언 시인의 시에서 어둠을 탐색해 본다.

첫 행은 어둠이라는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어둠과 친해지기 위해선 어둠이 되어야 했다.”라는 묘사는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이 떠오르는 묘사다.‘시간과 공간은 선험적인 것으로서 감각경험에 선행하며 정신에 내재하는 관념적 산물이며, 감각과 결합하여 지각을 형성하는 감성의 형식이다.’라는 칸트의 논리처럼 우리가 어떻게 어둠이 될 수 있는가.

행간의 의미는 어둠이라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눈을 감으면 마음의 눈이 열어 자연이 어둠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어둠이라는 공간과 가까워질 수 있고, 그 과정의 시간을 통해 어둠과 친해져 어둠이 될 수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이제 2연의 행간들을 통해 화자는‘어둠의 기능’을 우리의 몸의 구조에 비유하여 자연의 사물들에게 어둠이 미치는 역할을 은유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수적인 물과 공기를 정화시키는 나무가 “어둠 속에서 종일 느슨해졌던 뼈를 맞추”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몸과 키를 늘리고 성장함을 알려준다.

폭우가 지나간 계곡의 요란한 물소리도 긴 밤의 어둠의 시간이 지나가고 난 후에야“음치로 변했던 성대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어둠은 누구에게도 에너지를 충전 받지 않고 스스로“어둠의 힘은 어둠 속에서 겨우 자리를 잡는다.”

3연은 “어둠속에선 눈보다 귀다”라고 함으로 어둠의 역할을‘청각적’관점에서 조명해준다. 어둠 속에서 청각기능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어둠이 될 수 있을까? 어둠이“풀벌레 소리를 투명하게 하”기에 낮에는 들을 수 없는 온갖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를 우리가 밤에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봄바람이“씨앗들의 이야기에 날개를 달아 주”었기에 해가 바뀌면 먼 들녘에도 노란 민들레가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어떠한 사물과 어떠한 권력도 결코 어둠을 없앨 수 없기에, 어둠 앞에서는 사물의 존재 자체도, 어떠한 인간의 편견과 차별의 벽도 허용하지 않기에“드디어 어둠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는 물체의 벽을 무너뜨린다.”

공간적 관점과 청각적 관점에서 본 어둠을 시각적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낮에는 빛에게 자리를 양보할 뿐 어둠은 결코 잠들거나 쉬지 않는다.

밝은 대낮에 어둠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손을 내밀면 어둠은 항상 눈썹에 매달려 있다”는 묘사에서 어둠은 눈을 깜박일 때마다 분주하게 눈썹 끝에 왔다 감을 알게 한다. “여름 날 숲길에서 만난 어둠은/ 나뭇잎 뒷면에서 반짝거리며/ 모든 생명을 어둠 밖으로 밀어내어” 잎사귀들에게 햇살을 먹이고 열매를 키워낸다.

우리가 암울한 세상에 허덕이다 쓰러져 밤을 맞이할 때“어둠은 계곡 물소리도 토막을 내고/나무와 나무 사이에 흐르는 바람도 토막을 내고/동강난 소리들을 하늘로 날려”보내고 적막의 이불에 뉘여 우리를 잠재운다. 어둠은 우리가 절망하지 않도록“우리들과는 아주 먼 공간”까지 우리를 데려가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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