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73)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점화(點話)
[김필영 시문학 칼럼](73)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점화(點話)
  • 뉴스N제주
  • 승인 2023.12.1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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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문정영 시집, 그만큼<시산맥시인선 014>. 17쪽. 그만큼

점화(點話)

문정영

보고 듣지 못하는 그는 손가락에 눈과 귀가 있다.
상대방 손가락 위에 자기 손가락으로 점자(點字)를 쳐서 대화를 한다.
눈물 한 방울이 점자처럼 손등에 떨어지기도 한다.
보이거나 들리는 것은 화려함이 먼저라고 척추장애인 아내에게 배운다.
눈과 귀를 닫고 마음으로 보면 세상은 눈물방울보다 작다.
아내의 손끝에서 꽃향기와 별빛을 읽는 그는 부드러워지고 부드러워진다.
그는 불안과 고통에 이르는 것도 달팽이만큼 느리다.
일 년처럼 읽고 십 년처럼 느낀다.
문장이 단순해진 것은 느리게 가는 것들 적기 위해서이다.
그는 손가락으로 풀잎과 공기를 더듬어 쓰는 작가이다.
새벽의 연우(煙雨)가 막 깨어난 꽃잎을 감싸는 것처럼
손끝이 별빛에 가 닿는다고 쓴다.
그가 점화(點火)되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한밤중의 일이다.

뉴스N제주가 주최한 '나의 시 나의 인생' 문학특강 가을편이 19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뉴스N제주 스타디움(제주시 중앙로 253, 5층)에서 김필영 시인이자 평론가를 초대해 특강을 가졌다.
김필영 시인/평론가

『 점화(點話), 촉각으로 보는 시학(詩學)』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 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다큐멘터리영화 '달팽의 별'의 남자 주인공 시청각장애인이 한 말이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는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거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라고 했다니 더는 그를 시청각장애인으로 보는 것은 큰 실례일 것 같다. 그 사유를 문정영 시인의 시, 점화(點話)를 통해 들여다본다.

눈과 귀를 닫고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건 누구보다도 시인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시의 첫 행을 읽으면 눈을 뜨고 시를 쓰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첫 행에“보고 듣지 못하는 그는 손가락에 눈과 귀가 있다”고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남편, “상대방 손가락 위에 자기 손가락으로 점자(點字)를 쳐서 대화를”하는 척추장애자인 아내의 초월적 사랑의 표현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다.

눈멀고 귀먹은 남편의 품에 등을 기대고 사물의 형태와 빛깔과 소리를 손가락 끝으로 남편의 손등에 점자로 찍을 때, 둘 사이엔 거짓이 있을 수 없다.

아내의 손가락 끝이 남편의 눈이고 귀다. 그들의 신체적 대화는 고요하지만 마음의 울림은 웅장하다. “보이거나 들리는 것은 화려함이 먼저라고 척추장애인 아내에게 배운다.”손가락의 섬세한 노크는 패인 눈망울처럼 간절하지만 아내의 손끝에서 아주 느리게 마음의 동공으로 클로즈업되는 시야는 새벽하늘처럼 밝아온다.

그럴 때 감겨진 눈에서“눈물 한 방울이 점자처럼 손등에 떨어지기도 한다.”그 고요한 한 방울의 눈물은 마른 호수가 범람하는 것이다. 그런“눈과 귀를 닫고 마음으로 보면 세상은 눈물방울보다 작다.”

이 감상평을 쓰기 전 시인에게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을 묻지 않았다. 각기 다른 대상을 보고 사유했을지라도 상황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스쳤음이다. 이들 부부의 사연은 다큐멘터리‘달팽이의 별’(이승준 감독)로 만들어져 2011년 말 암스테르담 국제다큐 영화제에서 아시아권 최초로 대상을 받았고, 2112년 3월에 한국에서 개봉하였다.

한 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이들의 인터뷰는 달팽이만큼 느리게 진행되었다. 질문을 아내가 점화로 전달하면 남편이 육성으로 답했는데 손끝으로 느끼는 세계를 묻자, “손으로는 가짜 표정을 지을 수 없다. 손을 잡으면 마음이 느껴진다.”고 했다 한다.

손끝으로 만져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을 물었을 때, “나무, 꽃, 빗방울 같은 자연을 만질 때 마음이 환하게 열린다.”고 했다 한다. 사랑의 끈으로 이어진“아내의 손끝에서 꽃향기와 별빛을 읽”을 수 있게 되기까지 그는 “부드러워지고 부드러워”지려고 얼마나 칠흑 같은 밤을 지새웠을까.

“그는 불안과 고통에 이르는 것도 달팽이만큼 느리”지만“일 년처럼 읽고 십 년처럼 느”끼기에, 어린왕자와 같은 우주소설을 쓰기 위해“느리게 가는 것들 적기 위해서”문장을 단순하게 하여 마음에 도화지에 무수히“손가락으로 풀잎과 공기를 더듬”었기에“새벽의 연우(煙雨)가 막 깨어난 꽃잎을 감싸는 것처럼 손끝이 별빛에 가 닿”는 한밤중 아무도 모르게 점화(點火)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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