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7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물의 심리학
[김필영 시문학 칼럼](76)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물의 심리학
  • 뉴스N제주
  • 승인 2023.12.3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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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박남희 시, 계간『시산맥』2017년 가을호. 254쪽, 물의 심리학

물의 심리학

박남희

시냇물은 흘러서 불안하다 하늘에는 은하가 흐르기 때문이다 별을 매달고 별을 버리며 시냇물은 흘러서 불안해진다 한곳으로 모은다는 것 모아서 흐르게 한다는 것의 불안을 어둠은 모른다 하늘과 땅을 뒤집으면 은하가 시냇물이 되고 시냇물이 은하가 되리라는 상상으로 어둠은 깊어진다 어둠은 안팎이 따로 없다 세상에 대하여 흑백논리나 불안을 가장하지 않는다

시냇물은 어둠 반대쪽으로 흘러서 불안하다 어둠 반대쪽에 빛이 있다는 착각으로 불안하다 그러다 돌연 방향을 틀어 빛의 반대쪽으로 흐를까 불안하다 사실 시냇물에게 빛과 어둠은 경사도 명암도 아니다 시냇물은 다만 어디론가 흐를 뿐이다

가난은 가난 쪽으로 흐른다 이상한 시냇물이다 가난끼리 뭉쳐서 별이 된다 은하가 된다 그 양 옆에 만날 수 없는 견우와 직녀 하나씩을 둔다 그리고 온몸으로 아프게 반짝여 강이 된다

그 강에 오늘도 누군가 투신을 한다

뉴스N제주가 주최한 '나의 시 나의 인생' 문학특강 가을편이 19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뉴스N제주 스타디움(제주시 중앙로 253, 5층)에서 김필영 시인이자 평론가를 초대해 특강을 가졌다.
김필영 시인

『현대인, 순리의 강물에 아프게 반짝이는 존재』

물이 낮은 곳으로 끝없이 흐르기 위해서는 흐르는 양에 비례하는 물이 높은 곳에 존재해야 한다. 그 순리를 과학적으로는‘물의 순환계’라 하며, 그 진리의 법칙으로 구름에서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신 빗물이 냇물로, 강물로, 바다로, 다시 바닷물이 증발하여 대기권으로 올라가 구름이 모여 빗물이 되어 물의 순환계를 이룬다. 우리가 사는 오늘 시인의 눈에 비친 물은 어떻게 흐르는가? 그‘물의 심리학’을 박남희 시인의 시안을 통해 들여다본다.

물은 투명하다. 우리 시야에 보이는 물은 주변사물의 색을 반사하며 우리의 망막에 포착된다. 시의 첫 연에 포착된 물은 시냇물이다. 그러나 그 시냇물의 흐름은‘불안’이라는 심리적 현상을 유발시킨다.

이 순리적으로 흐르는 시냇물은 사물 속에 존재하는 물이라기보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물이자 우리 생의 흐름이다. 시의 서두에 화자는‘물의 흐름’이 불안한 이유를“하늘에는 은하가 흐르기 때문이다 별을 매달고 별을 버리며 시냇물은 흘러서 불안해진다”는 것이라고 술회한다.

화자가 시냇물을 사유하며 하늘의 은하를 상상해 냄은 ‘흐름’이라는 현상이 시냇물과 은하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때 그 은하수에 흐르는 ‘별’과 시냇물에 흐름 속에 허우적대며 흐르는 ‘우리’는 동격이다.

화자가 그‘흐름’에서 불안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행간에서는 “별을 매달고 별을 버리며... 한곳으로 모은다는 것, 모아서 흐르게 한다는 것”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모으는 것’과 ‘버리는 것’이라는 괴리가 동일한‘흐름’속에 상존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한곳으로 모은다는 것, 모아서 흐르게 한다는 것의 불안을 어둠은 모른다”고 하므로 흘러야 하는 순리와 불안한 심리를 ‘어둠’이라는 현상을 불러들여 덮어버린다. 어둠 속의 존재들은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1연의 행간에 “하늘과 땅을 뒤집으면 은하가 시냇물이 되고 시냇물이 은하가 되리라는 상상으로 어둠은 깊어진다.”는 파격적 상상의 사유를 2연에서 밝혀준다. 우리의 생과 더불어 전개되는 ‘물의 흐름’이라는 것은 순리와 상식의 세계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세상의 흐름은 순리를 거슬러 흐르고 있다. 그렇지만 ‘어둠’에 덮여 드러나지 않는다.

“어둠 반대쪽에 빛이 있다는 착각으로 불안하다 그러다 돌연 방향을 틀어 빛의 반대쪽으로 흐를까 불안하다”고 함으로 현세상의 탐욕과 무관심과 이기심 같은 순리를 부정케 하는 비상식적‘물의 흐름’이 비참하고 불안하여‘하늘과 땅’을 뒤집는 상상에 이르게 된 것이다.“사실 시냇물에게 빛과 어둠은 경사도 명암도 아니”며 시냇물은 반드시 낮은 곳을 찾아 강으로 바다로 흐르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함을‘불안하다’고 은유하고 있다.

시의 종반에서 화자는 강물의 흐름이 불안하여도, 어둠이 덮을 수 없는 커다란 ‘흐름’ 하나를 밝혀준다. “가난은 가난 쪽으로 흐른다”는 폭로이다. 이 가난은 물질적, 정신적, 영적인 가난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가난끼리 뭉쳐서 별이” 된다고, “은하가 된다”고, “그 양 옆에 만날 수 없는 견우와 직녀 하나씩을 둔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강물을 바라볼 수 있는 이유를 마지막 연은 무거운 언어로 밝혀준다.

가난하여 힘겨울 때, 만날 수 없는 숙명이 은하수처럼 우리를 갈라놓을 때, 먼저 말하지 않았어도 투명한 강물 속으로 투신하는 이가 있음을, 그 강물에서“온몸으로 아프게 반짝”여 물비늘이 되는 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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