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7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징
[김필영 시문학 칼럼](78)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징
  • 뉴스N제주
  • 승인 2024.01.1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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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박정원 시집, 꽃불, 2014<지혜사랑 099> 14쪽, 징

박정원

누가 나를 제대로 한방
먹여줬으면 좋겠다
피가 철철 흐르도록
퍼런 멍이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찡하게 맞았으면 좋겠다
상처가 깊을수록
은은한 소리를 낸다는데
멍울 진 가슴 한복판에 명중해야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는데
오늘도 나는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서쪽 산 정수리로 망연히
붉은 징 하나를 넘기고야 만다
징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모가지로 매달린 채
녹슨 밥을 먹으면서

뉴스N제주가 주최한 '나의 시 나의 인생' 문학특강 가을편이 19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뉴스N제주 스타디움(제주시 중앙로 253, 5층)에서 김필영 시인이자 평론가를 초대해 특강을 가졌다.
 김필영 시인이자 평론가

『사물의 본질을 성찰한 울음의 詩學』

우리가 폭력을 미워하는 것은 사랑, 공의, 지혜와 같은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남에게 폭력을 가하는 이가 있다면 지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박정원의 시에서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고 싶어 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읽는다.

詩는 첫 행부터 “누가 나를 제대로 한방 먹여줬으면 좋겠다, 피가 철철 흐르도록...”이라고 자학에 가까운 자기폭력을 소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는 행위라 볼 때 자신을 버리는 행위인데 이어지는 행간에서 “퍼런 멍이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찡하게 맞았으면 좋겠다.”라고 강력한 자기응징을 소망하고 있음은 섬찟하다.

그토록 강력한 자기 응징을 소망했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6행으로 이어지는 시의 중반에서 베일을 벗는다. 5행의 “찡하게 맞았으면 좋겠다”의 “찡”은 “징”의 하이퍼적 묘사라 볼 때, 처절한 자기 응징의 상황에서 화자는 이미 어느새 “징”으로 은유되어 있다.

하고 많은 사물 중 하필이면 “징”이 되고 싶었을까. 그것은 울고 싶을 때 울 수 없기에 징이 되고 싶은 것이다. 화자는 지난 삶의 회한으로 울고 싶어 겸허해진 마음으로 징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징”의 탄생은 우리의 탄생과 흡사하다. 78%의 구리와 22%의 주석이 하나가 되듯, 각기 다른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우리를 낳았다. 놋쇠를 불에 달구어 매질과 달굼을 반복하는 가운데 10개정도의 판을 겹쳐 두드리는 “우김저복”과정을 통해 형체가 만들어지듯, 우리의 생도 반복적인 단련과 실패에 대한 성찰과 징계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징이 완성단계에 이르면서 “담글질무개리”과정을 통해 꼬임과 뒤틀림을 벼름질하여 바로 잡듯, 우리도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반성과 전환과정을 통해 바른 사람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우리가 걸어온 길에서, 울음잡기를 마치고 소리의 높낮이와 울림과 떨림이 울려 퍼지는 징처럼 “징”다운 소리를 내며 살아왔을까. 첫 박을 치는 “징소리”의 강한 음이 타 악기와 배음관계를 이루면서 조화를 이루듯, 다른 사람과 더불어 얼마나 조화롭게 살아 왔을까.

“상처가 깊을수록 은은한 소리를 낸다는데, 멍울 진 가슴 한복판에 명중해야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는데” 수시로 마음을 다치며 한 없이 작아지는 자아, 메카니즘의 틈에 끼어 “오늘도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서쪽 산 정수리로 망연히 붉은 징 하나를 넘”겨야만 하니 “녹슨 밥을 먹으면서 제대로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니... “녹슨 밥”의 “녹”은 수고를 팔아 받는 소득인 녹(祿)인 듯도 하고 녹이 슬어 울림의 기능을 상실한 징 같은 우리들의 모습이다.

울고 싶어도 “녹슨 밥”이 목울대에 걸려 울지 못하고 살았기에, 때로는 절대 울어선 안 되기에, “징”이라도 되어 제대로 한 방 맞고 징징 울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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