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80)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가을 꽃차
[김필영 시문학 칼럼](80)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가을 꽃차
  • 뉴스N제주
  • 승인 2024.01.2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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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송영희 시집, 마당에서 울다『시인동네 시인선』039, 44쪽, 가을 꽃차

가을 꽃차

송영희

볕 좋은 날

계관화라고도 불리는 맨드라미꽃을 땁니다.

여름내 타오르던 아찔한 빛깔

자줏빛 촉감이 손 안에서 촉촉합니다

어느새 뒤란 샘물은 차고 깊어

소금물 풀어 헹군 뒤 소쿠리에 펼쳐 놓으니

당신이 보낸 선물 보자기에 풀어 놓은 듯

적막한 마당이 꽃잎으로 화사한 집이 됩니다

이제 며칠 후면

저 부드러운 몸들이 바삭바삭 마르며 잠이 들겠지요

꽃잎들의 잠

나는 그 잠들이 예쁘고 슬퍼서

이렇게 꽃차를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그랬듯

우리 모두 언젠가는 알지 못하는 이별을 만나겠지요

그리고 긴 잠에 들겠지요

그리고 나는 저 수색이 붉디붉은 꽃차를 마시며

당신의 잠을 그리워하고 있겠지요

당신, 편안해?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잠’으로 은유된 부재의 회상을 통한 치유의 詩學』

생물은 생명유지를 위해 규칙적인 잠을 필요로 한다. 그 잠이라는 휴식을 통해 지친 몸의 활력을 회복하여 건강한 삶을 펼쳐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어나지 않는 잠도 있다.

아니 깨어날 수 없는 잠이 있다. 호흡이 멈춰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때, 남은 자는 긴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이 호흡을 멈추고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떠나갈 때, 남은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송영희 시인의‘가을 꽃차’를 마시며 사유해 본다.

시의 첫 연은, 어느 가을 “볕 좋은 날/ 계관화라고도 불리는 맨드라미꽃을” 따는 화자가 등장한다. 맨드라미꽃은 여름내 악천후에도 벼슬을 의젓하게 세우고 아찔한 빛깔로 여름을 태웠을 것이다. 그 맨드라미꽃을 따며 “자줏빛 촉감이 손 안에서 촉촉”해 오는 것을 느낄 때, 화자는 맨드라미꽃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적막 속에서 부재의 존재를 회상하게 된다.

맨드라미 꽃밭이 터를 잡은 마당이 있었을 것이고, 꽃씨를 뿌린 계절이 있었을 것이며, 꽃대에 잎이 돋아 붉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 마당 가 꽃밭을 바라보며 숨결을 공유한 존재가 있었을 것이기에, 행간에 시적 대상물로 등장한 ‘맨드라미꽃’은 단순한 화초 이상의 의미로서 지난 삶의 그리움의 촉수를 건드려주는 ‘회상의 발화(發花)’인 것이다.

2행은 정갈한 생화를 꽃차재료를 만드는 레시피를 적어 놓은 듯 맨드라미꽃보자기가 시선 가득 눈부시게 들어온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공간에서 꽃차를 만드는 화자의 자태는 고혹하다. 이제 “뒤란 샘물은 차고 깊어/ 소금물 풀어 헹군 뒤 소쿠리에 펼쳐 놓”은 맨드라미꽃을 보며 “당신이 보낸 선물 보자기에 풀어 놓은 듯”하다는 회상에서 독자에게 비로소 화자가 그리워하는 부재의 존재인 ‘당신’을 살며시 보여준다.

평소 선물을 자주 선사했던 당신이라는 절대적 존재는 맨드라미꽃 피어있는 마당을 화자와 함께 거닐었던 존재일 것이다. 소쿠리에 펼쳐 놓은 맨드라미꽃으로 인해 화자가 당신을 회상하는 시공간은 일시에 “적막한 마당이 꽃잎으로 화사한 집”으로 변하게 된다.

3행은 뒤란의 정갈한 샘물에 소금을 풀어 헹군 맨드라미꽃차 재료를 만드는 이유를 설명하는 넋두리 같으나 4연에서 ‘잠’이라는 소멸과 부재를 강조하기 위해 호흡을 고르는 연이다. 맨드라미꽃의 “부드러운 몸들이 바삭바삭” 말라가는 모습을 “꽃잎들의 잠”이라고, ‘잠’이라는 상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맨드라미꽃차를 만들며 마른꽃잎을 보는 화자의 시선과 심리의 흐름은 아린 드라마를 보는 듯 촉촉하다. 잠이 든 맨드라미꽃을 보는 독백에서 “나는 그 잠들이 예쁘고 슬퍼서/ 이렇게 꽃차를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라는 아픈 독백이 떠나 간 이를 아직 가슴 속에서 보내지 못한 애수의 물결로 밀려오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마지막 연에 이르러 화자는 비로소 우리의 사랑을 ‘영원한 잠’이라는 이별로 갈라놓아 가슴 저리게 부재의 존재를 그리워하는 자아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사랑하는 이와 우리를 영원히 갈라놓는 것이 ‘사별’이라는 시어는 행간 어디에도 없다.

당신은 마른 맨드라미꽃처럼 긴 잠을 자고 있을 뿐, 결코 ‘당신’을 보내지 아니하였기에, “저 수색이 붉디붉은 꽃차를 마시며 당신의 잠을 그리워”하며 당신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신, 편안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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